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96화: 백 번째 루프
보랏빛 심연의 아지랑이로 변한 마포의 지하 사무실.
가구가 사라지고 콘크리트 벽면마저 어둠 속으로 무너져 내린 왜곡된 아공간 속에서, 세 개의 불타는 안광을 지닌 '심연의 군주'의 거대한 정신체가 강우의 정면을 압박해왔다. 녀석이 뿜어내는 마력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시공간 그 자체의 인과를 짓이겨버리는 우주적인 폭풍이었다.
- 가련한 인과의 미아여. 네가 겪은 무수한 죽음의 고리들이 가소롭구나.
군주의 기이하고 묵직한 영혼의 속삭임이 강우의 뇌리를 직접 때렸다.
- 너는 평범한 마력 0.00%의 무능력자에 불과하다. 이 절대적인 시간 조율 권능은 네가 다룰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것이다. 당장 인과의 끈을 나에게 넘기고 소멸해라.
파아아앗――!
군주가 내뻗은 칠흑빛 손끝에서 강렬한 '차원 역행 펄스'가 강우의 전신을 뚫고 지나갔다.
그 순간, 강우의 머릿속에서 강제로 과거 루프의 기억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처음 강태훈의 배신으로 몬스터에게 목구멍이 찢겨 사망하던 순간부터 서대문 지하에서 자폭 쐐기와 함께 온몸이 불타 증발하던 순간, 태평양 해저에서 수압에 짓눌려 뇌세포가 압살당하던 그 처절하고 비참한 백 번에 달하는 죽음의 고통들이 생생한 감각과 환청이 되어 강우를 덮쳤다.
"아…… 윽……! 끄으으윽……!"
강우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영혼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백 번의 잔혹한 사망 기억의 총합이 뇌 주파수를 과부하로 터뜨려 가고 있었다. 뇌에서 피가 흘러내려 그의 눈을 붉게 물들였다.
- 보아라. 너의 영혼은 이미 상처투성이고, 죽음의 공포에 찌들어 말라 비틀어가고 있다. 그만 포기하고 편해져라.
군주의 붉은 세 안광이 탐욕스럽게 강우의 가슴 속에 깃든 회귀 권능의 에센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강우의 가슴팍에서 흐릿한 은빛 광선 가닥들이 뿜어져 나가 군주의 손가락 끝으로 감겨 들어갔다.
하지만 강우는 붉게 물든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은 고통 속에서도 광기 서린 집요함과 냉철한 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포기하라고?"
강우는 억지로 이빨을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그 백 번에 달하는 죽음 속에서 배운 것은 공포가 아니다. 녀석들의 약점과, 인과의 틈새와, 내 소중한 조력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걸어가야 할 완벽한 '승리의 루트'다!"
강우의 온몸에서 마력이 아닌, 백 번의 죽음을 견뎌낸 영혼의 절대적인 정신 장막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동 측정기에는 결코 잡히지 않는, 회귀를 거치며 연마된 우주에서 가장 질긴 절대 잔류 기억의 벽이었다.
파지직――!
강우의 절대 기억 장막이 대행자의 침투를 강하게 튕겨냈다. 빨려 들어갔던 회귀 권능의 가닥들이 다시 강우의 가슴 속으로 세차게 복원되었다.
- 이, 이럴 수가……! 일개 인간의 정신력이 군주인 나의 시공 침투를 막아서다니!
군주가 당황하며 격노했다.
- 그렇다면 시공간의 판때기 자체를 강제로 리셋해주마! '시간 왜곡 붕괴(Time Collapse)'!
군주의 세 안광이 한꺼번에 밝아지며, 마포 거점 아공간의 시간 축 자체가 유리 파편처럼 처참하게 갈라지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공간의 붕괴 속에서 강우의 손발이 인과율 파편이 되어 먼지처럼 부스러져 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단 5초.
강우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유지원의 단검을 잡았다. 자신의 영혼의 남은 모든 힘을 칼날 끝에 집중시켰다.
'시간이 뒤틀린다면, 나 역시 그 뒤틀린 틈새의 인과를 찔러 쪼개겠다.'
강우는 부스러져 가는 다리로 허공을 밟아 군주를 향해 돌진했다.
슈우욱――!
- 어리석은 짓을!
군주가 암흑 장막으로 강우를 소멸시키려 했으나, 마력이 없는 강우의 물리적인 돌진은 시간 붕괴 속에서도 0.1초의 인과적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군주의 안면 앞으로 바로 통과해 들어갔다.
강우는 온 힘을 다해 단검의 칼날을 군주의 이마 정중앙에 위치한 첫 번째 붉은빛, '시간의 안광'을 향해 찔러 넣었다.
팍――!
"크아아아악――!"
첫 번째 안광이 깨짐과 동시에, 군주의 거대한 정신체가 칠흑 같은 스파크를 일으키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깨진 시간 안광에서 폭발한 시간 왜곡 충격파가 마포 거점 아공간 전체를 삼켜버렸다.
콰아아아앙――!
강우의 시야는 거대한 은빛 대폭발과 함께 암흑 속으로 침잠했고, 시간의 균열 속에서 그의 의식은 다시금 먼지가 되어 사그라졌다. 강우가 백한 번째의 죽음과 함께 다시 어제로 루프할 것인가에 대한 숨 막히는 침묵이, 검은 심연 속에 길게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