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95화: 마지막 장기판
해저의 지옥이었던 '신들의 무덤' 공략이 끝난 지 사흘 만에, 한강우와 백현우, 유지원은 태평양의 해상 플랫폼을 떠나 서울 마포의 비밀 거점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마포의 골목길은 대격변의 기적적인 종료 소식에 활기찬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들은 평화를 얻어낸 기쁨에 축배를 들고 있었고, 낡은 3층 빌딩 지하 사무실의 철문 안쪽은 여전히 컴퓨터 연산 장치들의 나직한 웅웅거림 소리만이 고요하게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후우…… 역시 시끄러운 공항보다는 이 좁은 시궁창 지하실이 몸을 뉘기에 딱 좋군."
백현우는 구석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검을 거치대에 힘껏 꽂아 넣었다.
유지원은 강우에게 따뜻한 홍차를 타서 내밀며, 그의 붕대 감긴 목덜미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강우 씨, 정말 괜찮은 건가요? 의사가 최소한 일주일은 절대적인 침상 안정이 필요하다고 신신당부했잖아요. 굳이 이 지하실로 이렇게 빨리 복귀해야만 했나요?"
"시간이 없습니다, 지원 씨."
강우는 홍차를 받아 쥐며 나직하게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단안경에는 마포 상공의 실시간 잔류 마동 인과율 파형이 복잡하게 얽히며 깜빡이고 있었다.
"심연의 군주 본체가 뻗어낸 시공간의 마지막 끈이, 정확히 이곳 마포 지하실의 좌표를 조준해 압축되고 있습니다. 녀석의 소환 게이트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녀석의 정신체는 붕괴하는 게이트의 차원 역류 주파수를 타고 오늘 밤 자정, 이곳을 직접 습격할 예정입니다."
백현우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럼 내 대검을 다시 조율해 두어야겠군. 그 군주라는 녀석의 정수리에 공간 참격을 가차 없이 박아주마."
"아닙니다, 백현우 씨."
강우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군주는 물리적인 육체나 마력으로 침투하는 것이 아닙니다. 녀석의 목적은 제 뇌세포 속에 봉인된 '하루 전 회귀의 절대 권능' 인과율을 직접 침탈해 강탈하는 것입니다. 녀석은 제 영혼과 기억 속의 루프들을 강제로 파헤치며 저를 인과율 속에서 지워버리려 들 겁니다."
강우의 눈동자가 깊고 검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오직 저와 군주 본체 사이의 1대1 정신계 인과율 전쟁입니다. 백현우 씨의 공간 참격도, 지원 씨의 빙결 마력도 이 주파수 안에서는 무력한 거품일 뿐입니다. 만약 두 분이 이 장벽 안에 들어오신다면, 군주의 인과 동조 현상에 휘말려 영원히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유지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럼…… 강우 씨 혼자서 그 거대한 신적 존재와 영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건가요?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건가요?"
"두 분은 지상 방어망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군주의 파편이 강림할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마동 격차로 인해 마포구 전역에 차원 붕괴 충격파가 터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 폭발이 지상으로 튀어 올라 무고한 시민들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지상에서 삼중 마동 방어벽을 견고하게 유지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영혼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될 겁니다."
강우의 단호하고 슬픈 목소리에 유지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강우 씨……. 밖에서 지원 대원들과 함께 마포의 방어선을 목숨 걸고 지키겠어요. 절대로 안쪽의 결계 충격이 지상으로 흘러들지 않게 하겠어요."
"고맙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자, 거점 내부의 기계 장치 작동음마저 뚝 정지하며 쥐죽은듯한 정적이 내렸다.
백현우와 유지원은 마지막으로 강우의 손을 꼭 쥔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상의 방어선을 향해 철문을 열고 올라갔다.
달커덩――.
철문이 굳게 닫히고, 지하실에는 오직 한강우 혼자만이 남았다.
강우는 단안경을 천천히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그 옆에 유지원에게 받았던 낡은 단검 하나만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는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어 앉은 채, 지하실 벽면을 응시했다.
스으으으윽――.
밤 11시 59분 55초.
갑자기 지하실의 형광등 불빛이 꺼지며 암흑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거점의 시멘트 벽면과 콘크리트 바닥이, 물속에 퍼지는 보랏빛 물감처럼 기괴하게 일렁이며 공간 자체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벽이 사라지고, 그 너머로 수천만 광년 너머의 깊은 심연의 우주 공간이 입을 벌리는 듯한 기괴한 차원의 뒤틀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강우의 책상 맞은편 공중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연기들이 조밀하게 뭉쳐지더니, 마침내 핏빛 붉은 안광 세 개를 번뜩이는 '심연의 군주'의 처절하고 사악한 거대한 정신체가 서서히 형상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강우는 그 무시무시한 신적 위압감 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차갑게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오셨군요, 심연의 주인."
강우의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뒤틀린 시공간의 늪 속에 서늘하게 내리쳤다. 지구의 모든 운명을 가를 최후의 리셋 전쟁, 그 장엄하고 처절한 마지막 제6막의 서막이 마포의 어두운 지하실에서 마침내 그 거대한 첫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