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93화: 찢어진 인과
대행자의 코어가 관통당하며 발생한 은빛 광막과 마동 폭발은, 대성당 전체를 뒤덮으며 맹렬한 폭풍으로 돌변했다.
쿠구구구구――!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검붉은 심연의 마력 파편들은 성당의 석조 기둥과 제단을 차례대로 가루로 만들며 휘몰아쳤다. 강우는 대행자의 마지막 발악 폭풍에 휘말려 바닥을 수십 미터 굴러 기둥 밑에 부딪치며 거칠게 쓰러졌다.
그의 산소마스크는 깨져나갔고, 슈트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대성당의 바닥을 적셨다.
"강우 씨――!"
유지원이 비명을 지르며 냉기 차단막으로 폭풍을 쳐내고 강우를 향해 달렸다. 백현우 역시 억지로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가와 강우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강우의 깨진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앳되고 창백한 얼굴을 목격한 백현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너, 너였나?"
백현우의 목소리가 뼈아픈 충격으로 젖어 들었다.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인 자신과 세계 정상급의 감시관 헬레나, 그리고 전 세계의 기라성 같은 S급 초월자들을 손끝 하나로 부리며 전세계를 구원해 낸 그 위대하고 보이지 않는 설계자 '섀도우'의 진짜 정체.
그것은 마력이 전혀 없는, 평생을 무능력자라 멸시받으며 밑바닥에서 살아왔던 열아홉 살의 평범하고 수수한 고등학생, 한강우였다.
"이 어린 꼬맹이가…… 그 수많은 죽음의 고통과 무거운 체스판의 무게를 혼자 장막 뒤에서 짊어지고 있었다는 건가……?"
백현우의 거친 손이 떨렸다. S급 최강자로서 짊어졌던 자신의 무력함과, 이 소년이 겪었을 무수한 사망 루프의 피 냄새가 머릿속에서 폭발적인 경외감과 서글픔이 되어 소용돌이쳤다.
"정신 차려요, 강우 씨! 제발 눈을 떠봐요!"
유지원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빙결 치유 마력(극저온 동결 보존식 응급 처치)으로 강우의 상처를 얼려 지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우는 억지로 핏물 섞인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선명하게 인과의 실타래를 쫓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강우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공중에 매달려 찢겨 가던 군주 게이트 포탈을 가리켰다.
포탈은 대행자가 소멸하면서 붕괴하고 있었으나, 붕괴하기 직전의 최종 에너지가 코어 매트릭스를 타고 역류하여 지구 전체의 차원 장벽을 영구 파괴하려는 '2단계 자폭 충격파'를 전 세계로 전송하려던 참이었다.
성당 구석에 위치한 황동 코어 매트릭스(Core Matrix) 장치에서 붉은 번개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포효하고 있었다.
- 경고: 2단계 자폭 시퀀스 활성화. 지구 전역의 게이트 100여 개 강제 폭발까지 남은 시간 30초.
"저 코어의 마력 흐름을 동결해야 합니다……. 쐐기 때와는 다르게, 단검의 마석 전도선을 타고 흘러들어 가 코어 내부의 균열점 네 곳에 직접 극저온 냉기를 박아 넣어야 합니다."
강우는 자신의 손에 쥐여 있던 역류 전도 단검을 유지원에게 건넸다.
"지원 씨…… 당신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저를 믿고 찌르십시오."
유지원은 단검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에 맺혔던 눈물이 분노와 결의의 빙결 마력으로 얼어붙었다.
"……믿을게요, 강우 씨!"
유지원은 단검을 고쳐 쥐고, 광장 구석의 코어 매트릭스를 향해 도약했다.
그녀의 온몸에서 퍼런 절대 영도 마력이 폭풍처럼 일어나 단검의 칼날 끝으로 집중되었다. 유지원은 강우의 예언 지침대로, 코어 장치 표면에서 명멸하던 미세한 약점 틈새 네 곳에 차례대로 단검을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네 번의 강렬한 빙결 찌르기가 코어를 관통하는 순간, 끓어오르던 붉은 스파크가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이내 코어 매트릭스 전체가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 쩍쩍 갈라졌다.
와장창창――!
자폭 동력을 잃은 4층과 5층의 모든 고대 마동 장치들이 비명을 지르며 얼음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심연의 군주 소환 게이트 포탈 역시, 푸른 서리에 갇혀 차가운 얼음 조각이 되어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삐비비비빅――!
연합 헌터들의 단말기에서 일제히 안도의 경보가 울려 퍼졌다.
[알림: 전 세계 대형 게이트 120여 개 동기화 비활성화. 마력 역류 주파수 안정화 상태로 전환. 2단계 대격변 재앙 방어 성공.]
지구 전역을 지옥으로 만들려던 대격변의 날의 재림이, 설계자 한강우의 목숨을 건 현장 강림과 유지원의 분노 서린 동결 아래 완벽하게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지하 신전의 모든 굉음과 안개가 걷히고, 차가운 정적과 무너져 내린 고대 돌가루만이 연합군의 발밑에 뒹굴었다.
"우리가…… 이겼어."
장 피에르와 카토 등 쓰러져 있던 헌터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찢어졌던 하늘은 다시금 조용하고 어두운 해저의 물막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현우는 강우를 등에 들쳐 업었다. 소년의 몸은 기이할 정도로 가벼웠다.
"가자, 꼬맹이. 이제 장막 뒤로 돌아가 쉴 시간이다."
유지원과 백현우, 그리고 살아남은 세계 최강의 헌터들은 무너져 내리는 신들의 무덤을 뒤로하고, 구원받은 인류의 품을 향해 조용하고 장엄하게 퇴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