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92화: 그림자의 강림
5층 제단의 넓은 광장 위에는 처참한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다.
절대적인 물리 반사와 암흑 뇌전의 압도적 무력 앞에, 세계 최강을 자처하던 S급 초월자 헌터들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헬레나는 은빛 어깨 상처를 움켜쥔 채 숨을 헐떡였고, 공간 참격의 무적 백현우 역시 대검을 짚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신음했다.
"가련한 운명의 벌레들이여. 너희들의 하찮은 저항은 이로써 끝이다."
대행자의 사악한 핏빛 외눈에 탐욕스러운 빛이 일렁였다. 녀석은 쓰러져 있는 백현우의 심장을 향해 칠흑처럼 뾰족하게 벼려진 죽음의 창(Death Spear)을 높이 쳐들었다. 이 창이 내리꽂히는 순간, 연합군의 가장 큰 화력 카드인 백현우의 생명 신호는 영원히 꺼질 터였다.
스스스스――.
창끝에 무시무시한 암흑 물질이 회전하며 소멸의 소용돌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백현우는 억지로 대검을 들어 막으려 했으나, 전신 마력 회로가 꼬여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절망의 국면이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제단의 그림자 틈새로부터,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기척도 없는 한 존재가 소리 없이 안개처럼 기어 나왔다.
검은색 무마력 전술 슈트를 온몸에 두르고 산소마스크를 쓴 소년, 한강우였다.
대행자의 초감각 레이더망은 주변 수 킬로미터 내의 가장 미세한 마력 주파수마저 100% 탐지하여 카운터를 날렸지만, 마동 반응이 0.00%인 강우의 존재만큼은 허공의 먼지 조각으로 인지하여 완벽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마력이라는 절대적인 약점이, 이 절대적인 포식자의 영역 안에서는 유일한 신의 장난과 같은 스텔스(Stealth) 방패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우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은밀하게 녀석의 등 뒤, 2미터 반경 안으로 침투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유지원이 태성의 비밀 연구실에서 제작해 건네준 특수한 '마동 역류 전도 단검'이 들려 있었다. 칼날 끝부분에는 푸른빛의 고밀도 마석 배터리가 정밀 부착되어 있는 특수 병기였다.
'기회는 0.2초의 전력 공급 변환 타임. 녀석이 창을 내리찍기 위해 마력을 백퍼센트 칼날 끝으로 흘려보내는 바로 그 찰나.'
강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굳었다.
강우는 다리에 힘을 주어 대성당의 피로 젖은 바닥을 강하게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타앗――!
"……?!"
대행자가 자신의 촉수 바로 뒷덜미 부근에서 기이한 물리적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려던 바로 그 순간.
강우의 단검이 대행자의 척추 정중앙, 즉 머리 위 게이트로부터 마동 에너지를 공급받는 미세한 '주파수 수신 회로점'에 가차 없이 꽂혀 들어갔다.
팍――!
"크아아아악?!"
물리적인 강철 칼끝이 수신 회로를 관통하는 순간, 칼날 끝에 붙어 있던 고밀도 마석 배터리가 맹렬한 광막을 뿜어내며 대행자의 신경계 내부로 역류하는 펄스 폭풍을 주입했다.
치지직――! 콰아아앙!
대행자의 절대 방어 장막이 사방으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듯 조각나 공중으로 흩어졌다. 백현우를 노리고 있던 죽음의 창 역시 연기가 되어 허망하게 소멸했다.
"이, 이 불경한 벌레 놈이……!"
대행자는 마력이 감지되지 않던 보이지 않는 벌레에게 등 뒤를 찔렸다는 사실에 격노하며, 자신의 거대한 검은 손으로 강우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콰악――!
"윽……! 컥……!"
S급 괴수의 손아귀 압력에 강우의 목뼈가 으스러질 듯 짓눌렸다. 숨이 막혀오고 눈앞이 붉은 핏빛으로 변해가는 극도의 한계 상황.
하지만 강우는 그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손을 내뻗어 쓰러져 있던 백현우와 유지원을 가리키며 피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 지금입니다……! 녀석의 절대 방벽이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가슴 중앙의 붉은 보석 코어를…… 관통하십시오……!"
그 절규에 백현우와 유지원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옥의 사지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 보스의 목덜미를 잡고 늘어지는 무능력자 소년의 처절한 헌신에,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분노와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졌다.
"이 괴물 개새끼가아아아!"
백현우가 피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대검을 치켜들었고, 유지원 역시 전신이 하얗게 서리로 얼어붙을 정도의 절대 영도 냉기를 검신에 불어넣었다. S급 최강자 둘의 영혼을 깎아 먹는 듯한 최후의 광폭 합공이었다.
"공간 절단, 절대 영도 은빛 일섬!"
스으으으윽――.
하늘과 땅 전체가 세로로 길게 은백색 참격으로 찢겨 나갔다. 그 날카롭고 서늘한 공간의 칼날은 대행자의 가슴 정중앙에 박혀 있던 붉은 보석 코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콰구구구구구――!
코어가 관통당하자 대행자의 몸속에서 마동 역행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괴수는 고통에 찬 괴성을 지르며 쥐고 있던 강우를 바닥으로 내팽개쳤고, 강우는 돌바닥 위를 굴러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대행자의 칠흑빛 신형이 은빛 냉기 폭풍 속에 완전히 갇혀 갈라지며 소멸하는 대폭발의 광막이, 5층 신들의 제단 전체를 눈부시게 밝혀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