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90화: 최종 방어선
차원 그리드의 문이 열리며 연합군이 도착한 신들의 무덤 4층은,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불꽃이 타오르기 직전의 화약고와 같았다.
사방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암흑 물질(Dark Matter)로 가득 차 있었고, 차원의 틈새로 스며든 심연의 오염 기류는 헌터들의 강력한 마동 호흡 밸브를 산성으로 녹여버릴 듯 매캐하게 몰아쳤다.
공동의 저편, 수백 미터 크기의 제단 광장에는 기괴한 칠흑빛 판금 갑옷을 입은 수천 마리의 심연 군대, '어비스 나이트(Abyss Knight)' 군단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도열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심연의 눈의 최고 고위직 사제단 열두 명이 이상한 뼈 지팡이를 든 채 최종 소환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더러운 벌레들이 기어이 4층까지 올라왔구나."
대사제 '그레고리'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조소했다.
"하지만 이미 5층의 최종 제단에서는 심연의 군주님께서 지상으로 물리 강림하시는 강림 시퀀스가 90% 완료되었다! 4층을 영원히 폐쇄하는 '심연의 차단막' 결계를 가동해라! 이 벌레들을 어둠 속에 가두어 말려 죽이리라!"
웅웅웅웅――!
그레고리의 외침과 동시에, 4층 천장과 벽면에 박혀 있던 칠흑빛 석판 마석들이 검붉은 마력 레이저를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뻗어 나온 광선들이 제단으로 향하는 통로를 두꺼운 인과 차단 장막으로 가로막으려 했다.
결계가 완전히 완성되는 데 남은 시간은 단 2분. 만약 통로가 차단된다면, 연합군은 4층에 영원히 갇혀 소멸하거나 강우가 다시 죽음을 겪고 하루 전으로 회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국면이었다.
- 백현우 씨, 제 목소리 들립니까?
강우의 절대적으로 차가운 나직한 음성이 인이어를 때렸다.
강우의 눈동자 속에는 4층의 복잡한 마석 그리드의 위치와 왜곡 파동들이 삼차원 수식으로 연산되고 있었다. 이전 루프에서 결계에 갇혀 질식사했던 끔찍한 네 번의 사망 기록이, 강우에게 지금 이 결계의 유일한 무력화 루트를 일러주고 있었다.
- 4층 결계의 근원은 사제단이 아닙니다. 천장 12시 방향의 역고목 밑동, 그리고 벽면 3시, 7시, 9시 방향의 기둥 사이에 매설된 고대 전원 마석 노드 4개입니다.
강우의 단안경 신호가 네 곳의 좌표를 백현우의 전술 디스플레이에 선명하게 짚어냈다.
- 녀석들이 결계 연결을 시도하는 순간, 마석들 사이에 순간적인 마력 평형 상태가 유지되는 0.8초의 틈새가 발생합니다. 백현우 씨의 공간 절단을 부채꼴 모양으로 한 번에 수평 휘둘러 그 네 개의 마석 노드를 단 일격에 동시에 베어내십시오.
"하! 네 녀석의 지시는 언제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군!"
백현우가 광오하게 웃으며, 대검 '심연의 분쇄자'를 크게 휘둘렀다. 그의 신형이 제단을 향해 도약함과 동시에, 공간 참격의 극한의 비기가 펼쳐졌다.
"공간 절단, 백색 부채 일섬(Fan Slash)!"
스으으으윽――.
소리조차 나지 않는 얇고 거대한 백색 광막 참격이 공중을 휩쓸며, 강우가 지정한 네 곳의 마석 노드를 0.1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아앙――!
네 개의 메인 마석 노드가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났고, 사방을 가로막으려던 검붉은 차단막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흩어져 사라졌다. 결계 가동이 완전히 실패한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우리의 극비 결계 노드를 어찌 저토록 정확히 벤단 말이냐!"
그레고리 대사제가 비명을 지르며 격노했다.
- 결계가 깨졌습니다! 전원 돌입하십시오! 유지원 씨는 남은 사제단의 뼈 지팡이를 얼려 주문을 강제 차단하고, 헬레나 감시관과 장 피에르는 어비스 나이트의 전열을 붕괴시키십시오!
"돌격――!"
헬레나의 은빛 창 폭풍과 장 피에르의 황금빛 돌격 참격이 어비스 나이트의 단단한 갑옷을 가차 없이 깨부수며 길을 열었고, 카토 유이치의 번개 발도술이 제단 중앙에서 허우적대던 사제들의 목을 차례대로 날렸다.
스각――! 스각――!
유지원의 동결 마법이 남은 사제들의 뼈 지팡이를 전부 박살 내며 차원 제어 마력을 강제로 정지시키자, 제단 중앙의 공중으로 이어지는 은빛 나선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5층 최종 군주 강림 제단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후우…… 해냈군요, 강우 씨."
유지원이 가쁜 숨을 내쉬며 나선 계단을 바라보았다.
- 고생하셨습니다, 지원 씨. 그리고 대원 여러분. 이제 마지막 5층 제단만이 남았습니다.
강우의 목소리는 차가움을 넘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5층은 이 지구의 모든 운명을 가를 최종 결전의 장소이자, 이전 루프에서 강우가 백 번에 가까운 처절한 죽음을 반복하며 단 한 번도 완승을 거두지 못했던 미증유의 사지(死地)였기 때문이었다.
- 5층 최종 제단으로 진입하십시오. 심연의 군주 본체와의 최후의 전투를 개시합니다.
보이지 않는 황제의 조용한 최후 선언과 함께, 인류 최강의 연합군은 거침없이 5층의 어둠 속을 향해 그 마지막 계단을 굳건하게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