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84화: 예언자의 통제권
서울의 세 전선에서 일어난 S급 네임드 괴수들의 10분 동시 토벌 소식은, 붕괴하는 전 세계 방어선에 그야말로 거대한 전율과 충격을 선사했다.
"이게…… 정녕 가능한 교전 기록이란 말인가?"
GHA 미국 본부 최고 사령방은 혼이 빠져나간 듯 침묵했다. 조나단 벨몬트 사령관은 위성망 자폭에 이어, 자신들의 공식 지휘권을 무시한 헬레나 감시관과 태성 길드가 서울 전체를 피 한 터럭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수호해 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 세계의 여론도 걷잡을 수 없이 섀도우를 향해 쏠렸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각국의 주요 방어선을 지탱하던 정예 길드원들과 독립 헌터들은 GHA 본부의 배치 오류로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에서, 섀도우 넷이 복구되자마자 흘러나온 섀도우의 정밀한 예언 전술 가이드라인 덕분에 기적적인 생환과 승리를 거두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GHA 본부의 지시 명령 패킷을 스팸 처리하듯 휴지통에 처박아버렸고, 오직 섀도우가 전송해 주는 마력 주파수 경로만을 추종해 움직였다.
비공식적이었지만, 섀도우는 이미 전 세계 헌터들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지구 최후의 총사령관'으로 등극해 있었다.
서울 GHA 주둔지 사무실.
헬레나 감시관은 홀로그램 화면 너머로 일렁이는 그림자의 아지랑이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S급 특유의 거만함이나 차가운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섀도우. 전 세계의 헌터들이 본부의 통제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당신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있군. 당신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군대를 장막 뒤에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황제야."
헬레나의 차분한 평가에 섀도우는 조용히 기계적인 음성을 흘려보냈다.
- 저에게 지휘권은 목적이 아닙니다. 단지 인류가 멸망하는 그 최악의 인과율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그 도구 덕분에 서울은 구원받았지. 하지만 이 거대한 대격변의 기류가 이것으로 끝나는 것 같진 않군. 본부의 마력 탐지 기계들은 여전히 과부하로 미쳐 날뛰고 있어."
- 예. 지금 벌어진 S급 괴수들의 강림은 대격변 1단계에 불과합니다. 진짜 재앙인 2단계가 24시간 뒤에 시작됩니다.
강우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세계 지도의 한 좌표를 확대했다.
그 좌표는 육지가 아닌, 태평양 동쪽 해역에 위치한 초거대 던전 '신들의 무덤(Tomb of Gods)'의 입구였다.
- 심연의 눈 광신도들이 획책한 대격변의 최종 목적지는 각 도시의 파괴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마력 농도가 가장 강력한 '신들의 무덤' 내부 깊숙한 곳에서, 차원 장벽을 완전히 분쇄하고 심연의 군주 본체를 지상으로 물리 강림시키는 초대형 게이트웨이를 여는 것입니다.
강우의 눈동자가 깊고 싸늘하게 잠겼다.
- 이 2단계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지구의 대기 전체가 마물들이 숨 쉴 수 있는 오염 기류로 뒤바뀌며 인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절멸할 겁니다. 우리는 24시간 내에 '신들의 무덤' 내부로 진격해 최종 의식을 강제로 파괴해야 합니다.
"신들의 무덤이라니……! 거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흉포한 마동 재해가 소용돌이치는 A급 최상위 던전이다. 일개 길드나 주둔군의 무력으로는 진입하는 것조차 자살 행위야."
- 그래서 전 세계의 '최강자'들을 소집할 겁니다.
강우는 전술 패드를 조작해 여러 장의 작전 동의서를 전송했다.
그 서류의 수신인은 대한민국 최강의 거포 백현우를 시작으로, GHA 헬레나 감시관, 그리고 프랑스, 영국, 일본 등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 랭킹 10위권 내의 초월적인 S급 헌터들이었다.
- 섀도우의 예언으로 목숨을 건진 각국의 최강 헌터들이 이미 제 제안에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섀도우가 이끄는 '최종 진격대'의 칼날이 되어 신들의 무덤으로 모일 겁니다.
강우의 정교한 설계 하에, 그동안 흩어져 서로의 이권만을 위해 다투던 인류 최강의 물리적 무력들이 섀도우라는 이름의 깃발 아래 일사불란하게 집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판을 까는군."
헬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실소를 터뜨렸다.
"좋다, 섀도우. GHA의 통제권을 버리고 기꺼이 당신이 끄는 그 체스판의 말이 되어 주지. 최종 진격대로서 신들의 무덤 입구로 이동하겠다."
- 감사국과 태성 길드의 마동 수송선들이 이미 대기 중입니다. 이동하십시오.
통신이 끊기고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전 수십 번의 사망 루프를 통해, '신들의 무덤' 내부에서 백현우를 비롯한 최강의 헌터들이 차가운 시체로 변해 나갔던 끔찍한 기억들이 삼차원 그래픽처럼 선명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그 참혹한 패배의 역사는 오직 강우의 영혼만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체스판 위에서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강우의 차가운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보이지 않는 황제가 이끄는 인류 최강의 연합군이 지구 최후의 던전인 '신들의 무덤'을 향해 그 장엄한 진격을 시작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