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83화: 삼색의 불꽃
서울의 하늘을 찢어발긴 세 개의 균열은 그 자체로 생지옥으로 통하는 아가리였다.
"마물들이 쏟아진다! 사격 구역을 유지해라!"
남산 전선, 유지원의 차가운 호령과 함께 하늘을 향해 수천 개의 얼음화살이 빗발치듯 소용돌이쳤다. 날아내리던 날개 달린 이형의 비행 마물들은 깃털에 얼음이 달라붙으며 날개 짓을 멈추고 허공에서 돌덩이처럼 떨어져 지면에 부딪혀 박살 났다. 유지원이 이끄는 태성 길드의 마법대는 철옹성 같은 공중 빙결 장막으로 남산 상공을 완벽하게 덮어버리고 있었다.
동시에 여의도 한강공원 앞마당.
GHA 감시관 헬레나 폰 브라운이 이끄는 본부 정예 기동대는 군대식 정렬 대형을 취한 채 하늘을 향해 거대한 마동포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콰콰콰콰콰――!
"도망치지 마라! 대열을 이탈하는 자는 즉각 현장에서 사살하겠다!"
헬레나의 백금발 머리칼이 강풍에 휘날리며, 그녀의 등 뒤로 소환된 수십 개의 은빛 창들이 비처럼 하늘을 찔러 올렸다. S급 여제의 압도적인 지상 지배력이 여의도 하늘을 가득 메운 마물들을 걸레짝처럼 찢어발겼다.
그리고 마포 상공.
백현우는 혼자였다. 그는 낡은 아파트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대검을 느릿하게 한 바퀴 돌렸다.
"개떼처럼 많이도 기어 나오는군."
그가 공중을 향해 참격을 비스듬히 날릴 때마다, 하늘의 공간 자체가 거울처럼 쩍쩍 갈라지며 그 틈새로 들이밀던 마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공간 절단의 힘은 적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공평하게 지워버리는 절대적인 무력의 극한이었다.
하지만 진짜 재앙은 하늘에 몰려 있던 잡몹 마물들이 소멸한 직후에 시작되었다.
세 개의 균열이 일제히 고동치며, 심연의 군주 수하인 최상위 네임드 괴수 셋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의도 상공에서는 시커먼 벼락을 온몸에 두르고 강산성 점막을 흘리는 거대 뱀 형태의 괴수, '레비아탄의 파편'이 강림했다.
남산 상공에서는 눈보라 장막조차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타오르는 화염 지옥을 두른 악마 거구, '발록의 후예'가 내려앉았다.
마포 상공에서는 형체조차 명확하지 않고 칠흑 같은 그림자의 장막을 두른 이형의 사냥꾼, '섀도우 스토커'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크어어어어――!"
남산의 발록의 후예가 손을 내뻗자, 하늘에서 거대한 용암 화탄(Fireball)들이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유지원이 급히 형성한 절대 빙벽은 화탄에 닿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하얀 증기가 되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극상성의 뜨거운 화염 마력 앞에 태성의 방어선이 빠르게 무너지며 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냉기가…… 먹히지 않아요……!"
유지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동시에 여의도에서도 헬레나의 방어선이 레비아탄의 거대한 뇌전 포격에 차단막이 과부하 폭발을 일으키며 수십 명의 대원들이 튕겨 나갔다. S급 괴수의 막강한 파괴력 앞에 전선 전체가 도미노처럼 붕괴할 위기였다.
마포의 조용한 지하실.
강우의 눈동자는 수십 대의 모니터를 가로지르며, 삼차원 인과율 그래프를 오차 없이 추적하고 있었다. 그의 단안경 화면에는 세 괴수의 마동 파형과 약점 노드들이 선명한 기호로 수식화되어 실시간 연산되고 있었다.
강우에게 이 상황은 이미 스무 번이 넘는 죽음을 겪으며 완성된, 아주 익숙한 세 장의 체스판이었다.
"지원 씨, 무전 들립니까?"
강우가 마이크를 쥐고 나직하게 외쳤다.
- 예, 예! 강우 씨! 남산 방어선이……!
"당황하지 마십시오. 발록의 후예는 화염 마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심장 부근의 코어가 아닌 이마의 붉은 뿔 끝부분으로 인과 오버플로우가 흐릅니다. 그 뿔 끝부분을 향해 빙결 냉기를 집중 사출하십시오. 뿔이 얼어붙는 순간 녀석의 전신 화염은 차갑게 식어 내릴 겁니다."
- 뿔 끝이라고요? 알겠어요!
동시에 강우는 헬레나의 회선으로 말을 이었다.
"헬레나 감시관. 레비아탄의 뇌전은 3초 뒤에 여의도 63빌딩 피뢰침 쪽으로 유도됩니다. 뇌전이 피뢰침을 때리는 순간 녀석의 꼬리 끝부분의 마력 전도율이 0%로 떨어집니다. 기동대원들에게 꼬리 끝을 화력 집중 사격하라고 지시하십시오."
- 꼬리 끝이라고?! 알았다!
강우의 단호하고 명확한 지휘가 복구된 섀도우 넷을 타고 두 전선에 동시에 내리쳤다.
유지원은 강우의 말대로 뿔 끝을 노려 예리한 얼음창 레이저를 쏘아 보냈고, 헬레나는 63빌딩을 때린 뇌전의 틈새를 타 레비아탄의 꼬리 끝을 박살 냈다.
피이이이익――!
남산의 발록의 뿔이 얼어붙자 괴수의 거대한 몸을 덮고 있던 지옥의 불꽃이 거짓말처럼 연기가 되어 사그라졌고, 여의도의 레비아탄 역시 꼬리가 박살 나며 전신에 벼락이 역류해 괴성을 지르며 땅으로 추락했다.
단 한 번의 정밀한 예언 카운터에 전황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포 옥상.
백현우는 자신을 향해 섀도우 스토커가 뿜어내는 그림자 바늘 폭풍을 묵묵히 대검으로 쳐내고 있었다. 괴수의 몸은 안개와 같아서 대검을 휘둘러도 허공을 벨 뿐 상처를 입지 않았다.
- 백현우 씨. 괴수는 그림자가 아니라, 괴수가 딛고 선 그 아래 아파트 옥상의 콘크리트 그림자 그 자체에 본체가 숨어 있습니다. 허공을 베지 마시고, 괴수 발밑의 어둠을 향해 참격을 수평으로 가르십시오. 3, 2, 1…… 지금입니다.
강우의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들렸다.
"하! 그런 쥐새끼 같은 숨바꼭질이었나!"
백현우가 광오하게 웃으며, 괴수의 몸이 아닌 옥상 바닥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대검을 길게 수평으로 그었다. 공간 절단의 백색 칼날이 바닥의 그림자를 일직선으로 베고 지나갔다.
캬아아아악――!
허공에 떠 있던 안개 형태의 괴수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더니, 이내 그림자가 찢어짐과 동시에 전신이 붉은 피를 뿌리며 두 동강 나 무너져 내렸다.
서울의 세 하늘을 가득 메웠던 S급 네임드 괴수 셋이, 섀도우의 정교하기 짝이 없는 삼원 연립 체스 플레이 아래 단 10분 만에 동시 토벌되는 기적이 달성된 것이었다.
지휘관 한강우가 이끄는 그림자의 포고가, 서울의 불타는 하늘 위에 완벽한 대승의 삼색 불꽃을 화려하게 쏘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