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82화: 불이 켜진 넷
"……복구되었습니다!"
유지원의 떨리는 외침과 함께, 거무스름하게 노이즈가 끼어 있던 사무실의 모니터들이 일제히 푸른색 마동 주파수 빛을 내뿜으며 정상화되었다.
동시에 전 세계의 '섀도우 넷(Shadow-Net)' 서버 노드들이 차례대로 은빛 점등을 켜며 실시간 복구를 완료했다. 100만 명이 넘는 헌터들의 동시 접속 카운터가 폭발적으로 치솟았고, 먹통이었던 무전망에서 다급하지만 희망에 찬 각국 헌터들의 목소리가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 프랑스 전선 복구 완료! 섀도우 님의 전술 좌표대로 화염 장벽을 가동한다!
- 일본 지부 접속 성공! 섀도우 님, 저격포 조준을 완료했습니다!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 한국 노원 방어선 복구! 마물들을 계곡 안쪽으로 유인한다!
차단되었던 그림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지구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GHA 미국 본부 최고 작전사령부.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사령관 조나단 벨몬트는 홀로그램 전술 지도 위에서 붉게 점멸하던 통신 감시 위성들의 신호가 하나둘씩 검은색 '소실(Destroyed)' 경고로 바뀌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화면에는 우주 궤도에 떠 있던 수십억 달러 가치의 마동 통신 위성 8개가 연쇄적으로 과부하 폭발을 일으켜 우주 쓰레기로 변해가는 실시간 모니터링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섀도우가 위성 펄스에 강제 역류 코드를 심어 쏘아 보낸 마력 폭풍이 위성들의 코어 마석을 녹여버린 결과였다.
"섀도우가…… 섀도우가 쏜 마동 역류 주파수가 우리 위성들의 통제 서버를 완전히 장악해 과부하 자폭을 유도했습니다! 본부의 글로벌 전파망은 백퍼센트 복구 불가능합니다!"
기술 사관들의 절망적인 보고에 조나단 벨몬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소파에 쓰러졌다. GHA 본부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초국가적 통제 수단인 군사 위성망이, 정체불명의 정보원 '섀도우'의 단 한 번의 인과율 역공 아래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조직의 권위를 지키겠다고 저지른 미친 짓이, 오히려 자신들의 목줄을 완전히 끊어버린 참참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서울의 GHA 임시 주둔지 사무실.
감시관 헬레나 폰 브라운은 책상 위에 놓인 단말기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에 꽂힌 인이어 무전기를 통해 섀도우의 냉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벨몬트 사령관의 탐욕이 빚어낸 소란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헬레나 감시관. GHA 본부는 이제 더 이상 위성망을 통해 당신들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정말 괴물이군. 우주 궤도에 있는 군사 위성을 서울 마포의 지하실에서 해킹으로 자폭시키다니. S급 마법사 열 명이 매달려도 불가능한 인과율 연산이다."
헬레나의 목소리에는 이제 분노나 저항 대신, 뼈아픈 경외감이 가득 섞여 있었다.
- 대수롭지 않은 기술입니다. 다만 그보다 급한 일이 있습니다.
섀도우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톤을 가라앉혔다.
- 마동 펄스의 여파로 세계의 차원 장벽 붕괴 주기가 더 빨라졌습니다. 예정된 시간은 이제 단 24시간 뒤. 내일 오전 9시, 전 지구적인 대격변의 날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립니다.
"……24시간 뒤라."
헬레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대한민국 서울에는 남산, 여의도, 그리고 마포 상공에 초대형 차원 균열 세 개가 입을 벌릴 겁니다. 등장 마물은 각 구역당 수천 마리. 그리고 심연의 군주 수하인 최상위 네임드 괴수 셋이 일제히 진입합니다.
강우가 헬레나에게 최종 전술 동선을 송신했다.
- 헬레나 감시관은 본부의 S급 기동대를 이끌고 여의도 63빌딩 상공의 균열을 마크하십시오. 유지원 씨와 태성 길드는 남산의 균열을 얼려버릴 겁니다. 그리고 마포의 균열은 백현우 씨가 전담합니다.
"S급 네임드 셋을 세 구역에서 동시에 막아내라는 건가? 아무리 우리 무력이 강하다 해도, 동시 브레이크는 화력이 분산되어 극도로 위험하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마포 거점에서 전장 전체의 마력 격차를 실시간 제어하며 지원할 겁니다. 지시하는 약점 포인트만 정확히 공격하십시오.
알겠다. 내 부하들의 목숨을 믿고 맡기지.
헬레나는 무전을 끊고, 벨트의 검을 정돈했다. 이제 그녀는 섀도우의 완벽한 수하 장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격변 당일, 오전 8시 50분. 서울 마포 상공.
하늘은 마치 붉은 잉크를 쏟아부은 듯 불타오르고 있었고, 서울 상공 세 곳의 대기가 거대한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지며 보랏빛 마동 스파크를 사방으로 튀기고 있었다.
마포 비밀 거점의 옥상에 올라선 백현우는 대검을 어깨에 메고 불타는 하늘을 무심히 올려다보았다. 그의 코트 깃이 몬스터 떼가 몰고 오는 거센 피바람에 세차게 펄럭였다.
"드디어 시작이로군, 대격변의 재림."
백현우의 등 뒤로, 강우의 홀로그램 영사 신호가 나타났다. 강우는 지하실에서 모니터를 조작하며 옥상의 백현우와 실시간 인과를 조율하고 있었다.
- 백현우 씨. 준비되셨습니까?
"묻는 게 모독이다, 섀도우. 네놈이 길만 제대로 닦아준다면, 저 하늘 위로 기어 나오는 괴수 놈들의 대가리를 전부 쪼개서 한강 바닥에 처박아주마."
백현우가 광오하게 웃으며 대검을 굳게 쥐었다.
동시에 남산의 유지원과 여의도의 헬레나 역시 각자의 방어선에서 검을 뽑고 하늘을 쏘아보며 전투 태세를 마쳤다.
오전 9시 정각.
쩌어어어억――!
서울 하늘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세 곳의 하늘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며 은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심연의 포탈들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로 수천만 개의 핏빛 눈동자들이 번뜩이며 강림을 선포했다.
인류의 존망과 섀도우의 절대적 설계를 가름할 최후의 대서사시가, 서울의 불타는 하늘 아래 마침내 그 웅장한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