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80화: 북부 전선의 폭풍
쿠구구구구――!
대격변 2일 전의 오후, 마침내 서울 북부의 도봉산과 수락산 상공이 유리창이 깨지듯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 세 개의 대형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시커먼 마동 기류가 하늘을 검게 물들였고, 기괴한 골격과 핏빛 점막을 지닌 수천 마리의 마물 군단이 땅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방어벽 기동! 냉기를 집중하세요!"
유지원의 날카로운 지시와 함께, 태성 길드의 마법 기동대원들이 일제히 손을 뻗었다.
지면을 타고 급속도로 몰아친 백색의 서리는 도봉산 중앙 계곡 통로를 가로지르는 높이 10미터, 길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벽 방어선을 완벽하게 구축했다. 쏟아져 내리던 마물 군단은 난데없이 나타난 두꺼운 얼음 장벽에 가로막혀 우왕좌왕했고, 그 머리 위로 유지원이 소환한 거대한 눈보라(Blizzard) 폭풍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사격 개시! 한 마리도 얼음 장벽을 넘지 못하게 해라!"
동시에 도봉산 서쪽 계곡의 3번 거점에 매복하고 있던 GHA 본부 작전대원들도 움직였다. 감시관 헬레나의 지휘 아래, 그들은 강우가 예측한 정확한 타이밍에 퇴각하려던 마물들의 측면을 마동 포격으로 기습했다.
콰콰콰콰콰――!
"믿기지 않는군……. 섀도우 녀석의 배치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마물들의 퇴로와 사각지대가 완벽하게 물려 들어갔어."
전투를 지휘하던 헬레나는 소름 돋는 소름을 느끼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섀도우의 전술 배치는 마치 몬스터들의 행동 패턴을 미리 녹화해 둔 비디오를 보며 맞춤형 카운터를 치는 것처럼 무서우리만치 정교했다.
한편, 수락산 남쪽 입구 1번 거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던 산자락은 이미 거대한 핏빛 폭풍에 휩싸여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 폭풍의 중심에는 신장 5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거구의 몬스터, S급 돌격 대장 '아바돈의 발톱'이 서 있었다.
거대한 낫 모양의 부식성 발톱을 지니고 온몸에서 시커먼 독무를 내뿜는 괴수는 분노에 차 주변의 바위와 나무들을 무차별적으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어이, 뚱땡이 괴물 녀석. 네 놈이 아바돈인지 나발인지 하는 녀석의 발톱이냐?"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며 백현우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에 얹힌 대검 '심연의 분쇄자'가 칠흑 같은 마력 기류를 뿜어내며 윙윙거렸다.
캬아아악――!
아바돈의 발톱은 눈앞의 인간을 비웃듯 거대한 낫 발톱을 내리찍었다. 발톱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공기가 시커멓게 부식되며 녹아내렸다.
스각――!
백현우는 신형을 엽기적인 각도로 비틀며 발톱을 피했고, 동시에 대검을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올려쳤다. 공간을 세로로 찢어발기는 묵직한 참격이 괴수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튕겨 나간 것은 백현우의 대검이었다. 괴수의 가슴과 옆구리를 덮고 있던 칠흑빛 외골격 장갑은 백현우의 S급 공간 절단 참격마저 튕겨낼 정도로 기괴하게 조밀하고 단단했다.
"쳇, 껍데기 하나는 징하게 질기군."
백현우가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서며 혀를 찼다. 괴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을 벌려 고농도의 부식성 독액 폭풍을 백현우를 향해 사방으로 발사했다. 회피 공간이 없는 절체절명의 타이밍이었다.
- 백현우 씨, 우측 2시 방향으로 도약한 뒤 대검을 역방향으로 쥐십시오.
그때, 백현우의 귀에 꽂힌 전술 무전기 너머로 강우의 나직하고 냉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 괴수의 외골격 장갑은 심연의 인과율로 보호받고 있어 무식한 힘으로는 뚫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독액을 내뿜고 난 직후인 1.5초 동안, 목 밑 15센티미터 지점의 외골격 틈새가 마력 순환을 위해 일시적으로 0.2밀리미터 벌어집니다.
강우의 눈세포들은 모니터를 통해 괴수의 진동 주파수를 연산하고 있었고, 머릿속의 이전 루프 기억들을 헤치며 약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 제 카운트다운에 맞춰 공간 참격을 그 벌어진 틈새에 정확히 박아 넣으십시오.
"말은 쉽군, 섀도우! 하지만 날 믿어라! 0.1밀리미터 틈새라도 내 대검 끝으로 정확히 쪼개줄 테니!"
백현우는 강우의 지시대로 독액 폭풍이 덮치기 직전 2시 방향의 바위 기둥을 밟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슬아슬하게 독액을 피한 그의 눈에, 독액 사출을 끝낸 괴수의 목덜미 틈새에서 미세한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포착되었다.
- 1…… 지금입니다!
강우의 외침과 동시에 백현우는 공중에서 대검을 양손으로 고쳐 쥐고, 공간 자체를 통째로 오려내듯 갈라 치는 공간 절단의 비기(祕技)를 날렸다.
스으으윽――.
소리조차 나지 않는 백색의 얇은 일섬이 괴수의 목덜미 틈새를 관통했다.
쿠구구구구――!
그 찰나, 괴수의 거대한 외골격 장갑 전체에 거미줄 같은 은빛 균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괴수의 전신이 수천 개의 조각이 되어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 스러졌다. S급 돌격 대장의 허망한 소멸이었다.
"……성공이군."
백현우가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대검을 거두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강우의 정확한 설계가 없었다면 수십 번을 헛스윙하며 피로에 찌들었을 싸움이, 단 일격에 끝을 맺은 것이었다.
도봉산 계곡의 마물 군단 역시 유지원의 빙벽과 GHA의 완벽한 매복 협공에 휩쓸려 단 한 마리도 방어선을 넘지 못하고 전멸했다.
서울 북부 방어선 1차 대승. 아바돈의 발톱 토벌 완료. 아군 사망자 수: 0명.
전투의 결과를 통신 화면으로 보고받은 감시관 헬레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GHA 본부의 그 어떤 슈퍼컴퓨터 연산으로도 불가능했던 '무사고 완승'의 기적이, 오직 섀도우라는 이름의 단 한 명의 설계자의 손끝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게…… 진짜 섀도우의 예언의 힘인가……."
헬레나의 목소리는 경외감과 함께 두려움으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섀도우의 인과의 체스판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다가올 진짜 대격변의 전장을 지배할 유일한 구원의 빛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