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78화: 갈라지는 균열
인천 앞바다의 기적은 즉각적인 거대한 파문을 몰고 왔다.
GHA의 공식 시뮬레이션 지시를 무시하고 섀도우의 예언 지침을 따랐던 C급 길드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S급 아종 마물을 토벌했다는 소식은, 헌터 업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통째로 뒤흔드는 핵폭탄과 같았다.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서울 중구의 GHA 임시 한국 지부 사무실.
테이블을 내리치는 격렬한 굉음과 함께, S급 감시관 헬레나 폰 브라운이 격노했다. 그녀의 차가운 백금발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서슬 퍼런 마력 기류가 접견실의 집기들을 잘게 진동시켰다.
"공식 연합의 작전 명령을 어기고, 출처 불명의 브로커가 흘린 찌라시 정보에 의존해 전투를 치르다니! 게다가 그걸 버젓이 인터뷰에서 '섀도우 헌터님의 예언 덕분'이라고 떠벌리다니 미친 놈들 아닌가!"
헬레나의 곁에 선 보좌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태블릿을 건넸다.
"하지만 감시관님,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 세계의 중소 길드 연합과 비주류 헌터들이 섀도우의 예언서를 성경처럼 받들며 독자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섀도우가 암호화된 위성 주파수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섀도우 넷(Shadow-Net)' 무전 앱은 벌써 다운로드 수 1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당장 그 앱을 차단하고 섀도우라는 놈의 패킷을 강제 차단해라!"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의 분산형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우회하고 있어, GHA의 메인 서버 권한으로도 오리진 서버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보좌관의 보고에 헬레나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갔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 그것도 GHA 본부의 지휘권을 통째로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등장은 그녀로서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반역이었다.
"태성 길드다. 섀도우가 한국 감사국과 태성 길드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당장 태성의 길드장과 그 딸 유지원을 소환해라. 거절한다면 즉각 체포 시퀀스를 가동한다."
"알겠습니다, 감시관님."
GHA 본부 소속의 A급 및 B급 정예 기동수사대원 스무 명이 즉각 무장을 갖추고 서울 강남의 태성 길드 본사로 출동했다.
같은 시각, 태성 길드 본사 로비.
GHA 수사대원들이 은빛 배지를 가슴에 달고 무기를 드러낸 채 로비로 들이닥치자, 태성 길드의 방어 헌터들이 즉각 앞을 가로막았다. 접이식 방패와 화염 주문서들이 허공에서 일제히 전개되며 팽팽한 살기가 로비를 가득 채웠다.
"GHA 감시관실의 공식 체포 및 압수 수색 영장이다! 태성 길드의 길드장과 유지원 헌터는 즉시 조사에 응하라! 방해하는 자는 연합 헌터법 제18조에 의거해 반역자로 간주하겠다!"
GHA 수사대장의 으름장에 태성의 방어 대원들도 굳은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GHA라는 초국가적 권력 집단과 정면으로 총질을 벌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로비의 긴장감이 극에 달해, 누군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피바람이 불어닥칠 것 같은 그 찰나.
터벅. 터벅.
로비 중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가죽 코트를 걸친 한 남자가 무심히 걸어 나왔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칠흑처럼 어두운 묵직한 대검 '심연의 분쇄자'가 얹혀 있었다.
백현우였다.
"어이, GHA의 강아지들. 남의 길드 로비에 신발도 안 벗고 떼거리로 들이닥쳐서 짖어대는 건 무슨 가정교육을 받아서 그런 거지?"
백현우가 이빨을 드러내며 비죽 실소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간 전체가 찌글찌글하게 짓눌리는 듯한 압도적인 S급 마력의 위압감이 로비 전체를 휘감았다.
쿠우웅――!
"……백현우?!"
GHA 수사대장의 안색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세계 랭킹 50위권 내에 포진한 대한민국 최강의 괴물 헌터가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지 상상도 못 했던 터였다.
"백 헌터님! 이건 글로벌 연합 본부의 공식 영장 집행입니다! 아무리 S급이라 할지라도 연합의 법률을 방해한다면……!"
"시끄럽다, 꼬맹아."
백현우가 대검을 바닥에 가볍게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가벼운 터치였음에도 대리석 바닥이 수십 미터 갈라지며 일어난 충격파에, GHA 수사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들의 전신 차단막이 일시적인 마동 과부하로 노란 경고등을 깜빡였다.
"법률이니 뭐니 하면서 지껄이지 마라. 내 검 앞에서는 그딴 쇳조각 나부랭이보다 공간이 쪼개지는 소리가 훨씬 빠르니까. 헬레나 그 백금발 여자에게 전해라. 태성과 유지원 꼬맹이에게 손끝 하나라도 대는 날에는, 내 이 대검이 GHA 본부 건물을 세로로 반 토막 내어 줄 테니."
백현우의 광오하기 짝이 없는 경고에 수사대원들은 감히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켰다.
그때였다.
삐비빅――.
수사대장의 단말기로 GHA 아시아 지부로부터 긴급 취소 명령 패킷이 날아들었다.
[GHA 본부 긴급 명령: 태성 길드에 대한 모든 영장 집행 및 수사를 즉각 중단하고 전원 철수할 것. 발신자: GHA 아시아 지부장.]
"……철수 명령?!"
수사대장이 당황하며 단말기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단말기 화면 밑으로 섀도우가 전송한 추가 기밀 패킷이 한 줄 떠올랐다.
[섀도우의 메시지: 헬레나 감시관의 개인 계좌로 발할라 길드와 심연의 눈 지부장으로부터 유입된 불법 마석 비자금 송금 내역이 전 세계 언론사에 실시간 전송 대기 중입니다. 5분 내로 로비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해당 데이터는 폭로됩니다.]
"이, 이럴 수가……."
수사대장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섀도우의 정보망은 GHA 본부 핵심 감시관들의 가장 은밀한 약점마저 이미 쥐고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철수한다! 전원 후퇴!"
GHA 기동수사대원들은 백현우의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받으며 황급히 로비를 빠져나갔다.
로비 구석의 CCTV 카메라 렌즈 너머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강우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천천히 껐다.
"사냥개들의 발목을 묶는 건 이쯤 해두죠."
강우의 눈빛 속에, 다가올 대격변의 본진 격돌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한 최선의 전술 경로가 다시금 빛을 발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GHA의 허울뿐인 지휘권은 이미 섀도우의 정교한 덫 아래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