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75화: 심연의 소용돌이
태평양의 검푸른 바다 아래, 거대한 해양 심층수가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둠만이 지배하는 해저 4,000미터 깊이. 그칠 줄 모르는 칠흑 같은 수압 속을, 태성 길드의 특수 마동 잠수정 '블루 아크(Blue Arc)'가 은밀하게 미끄러지듯 하강하고 있었다. 잠수정 내부의 조종석에 앉은 강우는 모니터에 표시된 GHA(글로벌 헌터 연합)의 해상 탐지 주파수 맵을 냉정하게 주시했다.
"GHA의 감시 전함들이 해상에 격자로 도열해 있군요. 하지만 수심 3,000미터 아래의 수온 도약층(Thermocline) 때문에 그들의 소나와 마력 스캐너는 굴절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속도를 유지하며 17도 각도로 하강하면 감시망을 완벽하게 우회할 수 있습니다."
강우의 지시에 따라 잠수정을 조종하던 태성의 전문 조종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방향타를 조작했다.
조종석 뒤편에서 대검을 조율하고 있던 백현우가 입을 열었다.
"이 좁은 쇳덩어리 안에서 수만 톤의 수압에 짓눌려 죽는 건 사양이다, 섀도우. 네놈의 내비게이션만 믿고 가고 있으니, 길을 잃지 말라고."
"걱정 마십시오. 이미 일곱 번의 '이전 경로'를 통해 안전이 검증된 최적의 노선입니다."
강우의 무미건조한 답변에 백현우는 피식 실소했다. 그 '일곱 번의 이전 경로'가 사실은 강우가 이전 루프에서 잠수정이 압살당하는 끔찍한 죽음을 직접 겪으며 얻어낸 피비린내 나는 결과물이라는 것은 알 리 없었다.
스으윽.
잠수정이 해저 5,000미터 깊이의 거대한 해구 속으로 진입하자, 마침내 그들 눈앞에 기이하고 거대한 광경이 펼쳐졌다.
해저 협곡의 밑바닥에 지름 1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색 해저 소용돌이가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블랙홀처럼 주변의 바닷물과 마력을 빨아들이는 이곳이 바로 특수 A급 해상 게이트 '심연의 소용돌이'의 입구였다.
"진입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쿠구구구――!
잠수정이 소용돌이의 경계막에 닿는 순간, 엄청난 마력 왜곡 진동이 선체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내 차원 막을 통과하자마자 격렬한 흔들림이 거짓말처럼 멈추며, 눈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나타났다.
게이트 내부는 바닷물이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해저 공동 던전이었다. 천장 위로는 거대한 수막(Water Barrier)이 수백만 톤의 바닷물을 강제로 떠받치고 있었고, 던전 내부는 고대 신전의 폐허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돌기둥들과 넓은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치이익――.
잠수정이 신전 폐허의 공터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해치가 열리자 강우와 백현우, 유지원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과연…… 마동 중력장으로 공기가 보존되고 있군. 숨 쉬는 데는 문제가 없어."
백현우가 목을 풀며 대검을 짊어졌다.
그들의 눈앞, 신전 광장의 중심부에는 거대하게 우뚝 솟아오른 칠흑빛 석주, '최종 게이트웨이 쐐기'가 공중에 둥둥 떠서 회전하고 있었다. 크기만 해도 이전의 쐐기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쐐기 표면의 핏빛 룬 문자들은 주변의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며 붉고 검은 아지랑이를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쐐기 주변을 삼십 명이 넘는 고위 사제들과, 기괴한 촉수를 지닌 마물 군단, 그리고 GHA 제복을 입은 타락한 헌터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결국 쥐새끼들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구나."
제단의 높은 교단 위에 서 있던 광신도 대제사장 '크로노스'가 기분 나쁜 실소를 터뜨리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늦었다. 최종 쐐기는 이미 활성화되었고, 심연의 군주님께서 강림하실 통로는 완전히 열릴 것이다. GHA의 배신자 헌터들이여! 그리고 심연의 권속들이여! 저 건방진 벌레들을 찢어 죽여라!"
크로노스의 호령과 함께, 쐐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GHA 소속의 타락한 S급 경비대 헌터 셋과 백여 마리의 촉수 마물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쇄도하기 시작했다.
"S급 셋에 마물 부대라…… 제법 구색을 갖췄군!"
백현우의 눈에 광기 어린 투지가 불타올랐다.
"지원 꼬맹이! 저 마물 개새끼들의 움직임을 묶어라! S급 세 놈은 내 대검으로 쪼개서 회를 쳐줄 테니!"
"알겠어요, 백 헌터님!"
유지원이 두 손을 바닥에 짚자, 극저온의 냉기 폭풍이 대지를 덮쳤다.
"……빙결의 대재앙(Ice Apocalypse)!"
광장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던 마물들의 발밑부터 거대한 얼음 가시들이 솟구치며 그들의 육체를 꿰뚫고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몰려들던 마물 군단의 진격 속도가 급격하게 둔화하자, 백현우는 거대한 폭풍처럼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앙――!
백현우의 대검이 공간을 가를 때마다 S급 타락 헌터들의 방어막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지하 공동 전체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그야말로 세계 최강급 무력 충돌의 대단원이 해저 밑바닥에서 화려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전투의 소란 속에서, 강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채 단안경을 통해 최종 쐐기 주변의 에너지 흐름을 정밀 분석하고 있었다.
최종 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마력 방어막이 아니었다. 쐐기 하단의 네 귀퉁이에서 뻗어 나온 굵은 마동 파이프라인이 해저 바닥 깊숙한 마력 매듭지에 박혀 최종 쐐기에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하며 절대 장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공급선 네 개를 동시에 끊어내지 못한다면, 백현우의 아무리 압도적인 참격이라 할지라도 최종 쐐기에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백현우 씨! 유지원 씨! 제 목소리 들립니까?!"
강우가 전술 통신기로 다급하게 외쳤.
"쐐기에 무한 동력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네 개가 제단 사방의 귀퉁이에 박혀 있습니다! 이 네 개를 단 2초의 오차 내에 동시에 파괴해야만 최종 쐐기의 무적 장벽이 해제됩니다!"
"동시 파괴라고?! 난 지금 이 S급 세 놈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백현우가 검 격돌음 속에서 으르렁거렸다.
"제가 타이밍을 정확히 설계해 드리겠습니다. 백현우 씨는 공간 참격으로 동쪽과 서쪽의 라인 두 개를 한 번에 베어내십시오. 유지원 씨는 빙결 지연 마법을 사용해 남쪽과 북쪽의 라인을 2초 뒤 동시에 붕괴시켜 주셔야 합니다."
강우의 눈동자 속에서 형형한 인과의 설계도가 완성되고 있었다.
"작전을 시작합니다. 제 카운트다운에 목숨을 거십시오!"
인류의 운명을 건 해저 최후의 격돌, 그 절정의 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