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71화: 남겨진 불씨
지하 갱도의 요란한 폭발음이 걷히고 가평의 버려진 산자락은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가평 외곽 방어선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지원과 태성 길드의 최정예 타격대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쐐기가 파괴되는 충격으로 인해 공간의 균열이 발생하며 수십 마리의 F~D급 마물들이 차원을 찢고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서두르세요! 몬스터들이 민가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빙벽으로 길을 차단해야 해요!"
유지원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양손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면을 타고 뻗어 나간 서리는 순식간에 높이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벽을 형성하며 산비탈을 완벽히 가로막았다. 빙벽에 부딪혀 우왕좌왕하는 마물들을 향해 태성의 정예 헌터들이 화력 지원을 쏟아부었고, 전투는 단 20분 만에 아무런 민간인 피해 없이 완벽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새벽 3시, 마포의 비밀 사무실.
빛바랜 철문이 열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강우와 백현우가 걸어 들어왔다. 대검을 거치대에 내려놓은 백현우는 털썩 소파에 주저앉으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S급 헌터인 그 역시 시간 왜곡 결계에서 억지로 마력을 쥐어짜 내 공격을 성공시킨 여파로 인해 상당한 마동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왔어요, 강우 씨! 백 헌터님!"
미리 거점에 복귀해 따뜻한 수건과 음료를 준비해 두고 있던 유지원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외곽 방어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우가 고글을 벗으며 덤덤하게 물었다.
"완벽해요. 강우 씨가 예측한 위치와 시간대에 정확히 마물들이 튀어나왔어요. 태성 길드원들도 섀도우의 정밀한 예보 덕분에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토벌을 끝냈다며 감탄하고 있어요."
유지원은 강우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덧붙였다.
"하지만 가평 폐광 내부의 쐐기는 정말로 파괴된 건가요?"
"예. 백현우 씨의 활약 덕분에 코어까지 완전히 산산조각 냈습니다. 이 지역의 차원 오염 신호는 백퍼센트 소멸했습니다."
강우의 대답에 백현우가 피식 실소하며 차를 들이켰다.
"내 활약은 무슨. 네놈이 결계의 눈을 찾아 단검으로 쑤셔 넣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 검은 늪 속에서 꼼짝없이 말라 죽었을 거다. 마력이 전혀 없는 무능력자가 결계 속에서 나보다 빠르게 움직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
백현우는 강우의 굳은살 박인 평범한 손을 깊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네놈은 미래를 예견하는 걸 넘어서 인과율 그 자체를 장난감 다루듯 다루는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이전에 겪어본 것처럼 말이야."
백현우의 날카로운 지적에 강우는 그저 옅은 미소만을 지을 뿐, 대답을 흐렸다. 실제로 강우는 이전 수많은 루프에서 백현우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을 수십 번 겪으며 얻어낸 최적의 공식만을 대입했을 뿐이었다. 그 처절한 혈투의 역사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강우는 메인 모니터 앞으로 걸어가 다시 전 세계 마력 지도를 띄웠다.
가평의 쐐기가 소멸하면서 붉은 점 하나가 사라졌지만, 화면에는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 고동치고 있는 붉은 신호들이 선명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쉴 틈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강우가 화면을 가리켰다.
"가평의 쐐기는 심연의 눈이 아시아 대륙에 박아 넣은 여러 개의 전초기지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현재 스펙트럼 분석 결과, 아시아 전역과 미주 대륙을 포함해 최소 7개의 쐐기가 추가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제히 가동되는 날이 바로 그들이 예고한 '대격변의 날'의 재림입니다."
유지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7개나 더 있단 말인가요? 그럼 우리가 전 세계를 돌며 이 쐐기들을 전부 부수고 다녀야 하는 건가요? GHA가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전부 부술 필요는 없습니다."
강우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심연의 쐐기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이 중에서 마동 에너지 흐름의 중추 역할을 하는 '허브 쐐기' 두 개만 파괴하면, 나머지 쐐기들은 동력을 잃고 스스로 붕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허브 쐐기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서울에 숨겨져 있습니다."
"서울에요?!"
유지원과 백현우가 동시에 반문했다.
"예. 가평의 쐐기가 파괴되면서 에너지를 역류시키는 과정에서 서울 내부에 은폐되어 있던 상위 주파수의 위치가 짧게 노출되었습니다."
강우가 서울 지도를 대폭 확대했다. 붉은 마력 주파수의 진앙지는 다름 아닌 서울 서대문구의 한 유서 깊은 사립 대학교 캠퍼스 지하였다.
"신촌의 대학교 지하라고요? 그곳은 유동 인구가 수만 명에 달하는 서울의 복판이잖아요! 왜 그런 곳에 쐐기가 박혀 있는 거죠?"
유지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대학교 지하는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방공호와 복잡한 지하 배수로가 얽혀 있는 구역입니다. 대학교 설립 당시 기초 공사 과정에서 마력 차단 토양이 대거 덮이면서 감사국의 레이더망을 완벽히 피해 갈 수 있었던 거죠. 광신도들은 이 복잡한 지하 미로에 두 번째 쐐기이자 허브 쐐기를 구축했습니다."
그때였다.
삐비빅――!
강우의 개인 보안 단말기로 긴급 적색 통신 패킷이 도착했다. 보낸 이는 대한민국 감사국의 비밀 수사국장이자 강우(섀도우)와 태성 길드의 뒤를 비공식적으로 후원해 주는 조력자였다.
[긴급 통보: 서대문구 대학가 지하 구역에서 비공식 마력 오염 징후 발견. 감사국의 탐지 마석이 역방향으로 파괴되는 이상 현상 발생. 1급 기밀 등급으로 지정하여 자체 조사 중이나, 광신도로 추정되는 기괴한 로브의 인물들이 목격되었다는 제보 입수. 지원 요청함.]
"감사국도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강우가 단말기를 끄며 말했다.
"그들이 정식으로 감사팀을 투입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감사국 요원들이 들어가면 광신도들은 쐐기를 즉시 자폭시킬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서대문구 전체가 날아가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백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검을 쥐려 했으나, 강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백현우 씨. 이번 작전에는 빠져 주셔야 합니다."
"뭐? 왜 나를 제외하는 거지? 내 대검의 화력이 필요할 텐데?"
백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전 가평에서 지연 결계를 강제로 파괴하면서 백현우 씨의 마력 회로에 미세한 역행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지금 억지로 마력을 사용하면 영구적인 회로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24시간 동안은 절대적인 마동 안정이 필요합니다."
강우의 단호한 진단에 백현우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실제로 그의 팔뚝 아래 미세한 푸른 핏줄들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S급조차 눈치채지 못한 회로의 과부하를 무마력자인 강우가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쳇…… 귀신같은 녀석이군. 알았다. 이번엔 네 말대로 쉬지."
백현우가 아쉽다는 듯 다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강우는 유지원을 바라보았다.
"유지원 씨. 이번에는 유지원 씨와 태성 길드의 마법 기동대가 제 방패가 되어 주셔야겠습니다. 서대문 지하 쐐기는 빙결 마력의 절대 영도 냉기가 회로를 동결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입니다."
유지원의 얼굴에 긴장과 함께 강한 결의가 떠올랐다.
"알겠어요, 강우 씨. 저를 믿어주신 만큼, 태성의 최정예 동결 부대를 동원해 쐐기를 완벽하게 얼려버릴게요. 절대로 실패하지 않겠어요."
"준비하십시오. 한 시간 뒤에 출발합니다."
강우의 눈빛 속에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질 두 번째 결전을 향한 날카로운 설계의 빛이 형형하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