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7화: 죽음을 기록하는 소년
던전에 들어가기 전, 강우가 가장 먼저 구매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은밀하고 확실한 '자살 도구'였다.
"이게 가장 중요해."
강우는 뒷골목의 한 밀수 장비점에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주 작은 크기의 주사기를 샀다. 주사기 안에는 소량만 주입되어도 3초 이내에 심장을 마비시켜 고통 없이 확실한 죽음을 선사하는 특수 마비 독약이 들어 있었다.
어설픈 실패는 끔찍한 불구나 영구적인 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만약 던전 안에서 몸이 짓뭉개진 채 살아남아 포탈 밖으로 실려 나간다면, 병원 침대에 누워 24시간을 허비하게 될 터였고, 그렇게 되면 루프의 이점이 완전히 사라진다. 실패하는 즉시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 어제의 시점으로 세이브포인트를 되돌려야 했다.
"확실하게 죽어야, 확실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계산하는 그의 음울한 중얼거림에 무기점 주인조차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독약 주사기를 품 깊숙한 곳에 소중히 갈무리한 강우는 이어 경량 마력 보호대와 야간 투시 고글, 그리고 정교한 함정 탐지용 핀 세트를 구매했다. 마포구에 있는 F급 게이트 [버려진 하수도]의 입장권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F급 게이트는 대형 길드의 관리 대상도 아닐뿐더러, 푼돈만 내면 일반인이나 예비 각성자들도 '안전 서약서'를 쓰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연습용 사냥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오전, 마포구 외곽의 허름한 지하 보일러실 공터.
그곳에는 낡은 철문 모양을 한 일그러진 공간의 틈새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고정되어 있었다. F급 게이트 [버려진 하수도]의 입구였다.
"학생, 정말 혼자 들어갈 거야? F급이라도 마력이 전혀 없는 무능력자가 솔로 플레이를 하는 건 자살행위야."
입구를 지키던 협회 파견 경비원이 혀를 차며 말렸다. 하지만 강우는 이미 서명한 안전 포기 각서 서류를 내밀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간단한 약초 채집과 하수구 이끼만 조금 긁어오려고 합니다. 깊은 곳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쳇, 빚독촉에 시달리는 인생인가 보군. 조심해라. 아무리 F급이라도 하수도 쥐떼를 만나면 뼈도 못 추리니까."
경비원은 더는 말리지 않고 길을 열어주었다.
강우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푸른 빛의 경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스스스스…….
공간이 뒤틀리는 불쾌한 마력 파동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눈을 뜨자,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눅눅하고 어두운 지하 하수도의 전경이 나타났다. 벽면에는 군데군데 이끼가 자라나 있었고, 바닥에는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더러운 하수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뚝. 뚝.
천장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 소리가 좁은 하수도 통로에 울려 퍼졌다. 강우는 야간 투고글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가 녹색으로 선명하게 밝아지며 하수도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1층인가."
F급 게이트 [버려진 하수도]는 지하 4층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미로형 던전이었다. 나타나는 몬스터는 F급의 '하수도 거대 쥐'나 '오염된 슬라임' 정도였기에 일반적인 헌터들에게는 잡몹 수준이었지만, 마력 수치 0.00%의 무능력자인 강우에게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무서운 포식자들이었다.
강우는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하수도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공략 루트를 떠올렸다.
‘지하 1층에서 3층까지는 최단 경로로 돌파한다. 함정이 있는 구간과 몬스터가 밀집된 방은 철저히 우회한다. 진짜 목표는 지하 4층의 공터.’
바스락.
갑자기 저 앞 모퉁이에서 시뻘건 안광이 나타났다. 송아지만 한 크기의 하수도 거대 쥐였다. 강우는 즉시 마력 은닉 스프레이를 몸에 뿌리고 벽면에 바짝 밀착했다. 쥐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지만, 마력 반응도 없고 지독한 화합물 냄새만 풍기는 강우를 인지하지 못한 채 반대편 통로로 쪼르르 사라졌다.
"휴우……."
가슴을 쓸어내린 강우는 신속하게 발을 움직였다.
지하 2층, 그리고 지하 3층으로 통하는 비밀 계단을 차례로 발견하여 내려갔다. 회귀 전에 수많은 정보지에서 머릿속에 각인시켰던 던전 지도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마침내, 던전 진입 2시간 만에 지하 4층으로 통하는 마지막 통로에 도달했다.
지하 4층은 다른 층들과 다르게 물이 흐르지 않고 건조했으며,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대 로마의 지하 수로 같은 기이한 양식을 띠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히든 피스가 숨겨진 약속의 땅이었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의 타일이 미세하게 눌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딸깍.
"……앗!"
강우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되었다.
그가 밟은 것은 숨겨진 압력 발판이었다. 지도의 정보에는 없었던, 혹은 훼손되었던 무작위 함정 구역이었다.
슈우우우욱!
좌우 벽면에 뚫린 미세한 구멍들로부터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비와 부식을 유발하는 독가스였다. 피할 곳이 없었다. 가스가 기도로 밀려드는 순간, 강우는 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을 굴렀다. 피부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커헉! 끄으으……!"
눈앞이 급격히 흐려지고 폐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독에 중독되어 며칠 동안 썩어갈지도 몰랐다.
강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져 독약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자신의 목덜미에 주사 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피스톤을 끝까지 밀어 넣자,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1초. 2초. 3초.
심장이 미친 듯이 쥐어짜이듯 아파오더니, 이내 모든 감각이 정전되듯 꺼져버렸다.
스스스스…….
"하아아악!"
강우는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병실의 소독약 냄새와 하얀 천장, 그리고 창밖으로 내리쬐는 따스한 초여름의 햇살이었다.
"살아…… 났다."
강우는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심장이 멀쩡하게 뛰고 있었고, 독가스에 타들어 가던 피부도 매끄러웠다. 스마트폰을 켜 확인한 날짜는 다시 어제 오전이었다.
성공적인 리셋.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첫 번째 루프에서 겪었던 지하 4층 입구 함정의 정확한 위치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지하 4층 입구 타일의 좌측 세 번째 줄, 뒤에서 네 번째 타일. 그곳이 함정 스위치다."
강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죽음의 감각이 뇌에 미세한 두통과 함께 메스꺼움을 남겼지만, 소년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 정도 고통은 그가 평생 겪어온 무능력자로서의 설움과 굴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짐을 챙겼다.
두 번째 루프의 시작이었다.
소년은 어제와 똑같은 동선으로 장비를 사고, 똑같은 말로 경비원을 속이며 다시 하수도 던전으로 진입했다.
"이번엔 반드시 벽 너머로 간다."
죽음을 나침반 삼아 미래를 개척하는 소년의 발걸음이 다시금 어두운 수로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