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6화: 도약의 준비
게이트를 나온 강우는 협회 직원의 통제 구역을 벗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향했다. 가방 안에 든 세 개의 블러드 스톤 결정이 뿜어내는 마력은 비록 차단막에 막혀 있었으나, 강우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 만큼 묵직한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이걸 당장 처분해야 해."
블러드 스톤은 법적으로 거래가 금지된 광물이다. 공식 헌터 거래소나 옥션에 올렸다가는 출처 조사를 받게 되고, 강태훈의 사망 사건과 엮여 꼼짝없이 쇠고랑을 찰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무능력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범죄 혐의 앞에서는 가장 먼저 희생양으로 삼기 좋은 존재였다.
강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익명 보안 메신저인 '고스트(Ghost)'를 실행했다. 그리고 즐겨찾기에 등록되어 있던 한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블러드 스톤 상급 결정 3개. 직거래 원함. 위치는 영등포 뒷골목.]
답장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등급과 중량은?]
[상급 결정. 개당 약 300g 내외. 가공되지 않은 생석.]
[감정 후 즉시 현금 및 계좌 세탁 이체 가능. 30분 뒤 영등포 4가 폐공장 안쪽. 거래가는 개당 5천만 원. 동의하면 좌표 송신.]
개당 5천만 원. 세 개면 1억 5천만 원이다. 시세보다 조금 후려친 가격이었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장물을 급히 처분하는 뒷거래의 특성상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수락 메시지를 보냈다.
[동의함. 30분 뒤에 보지.]
강우는 낡은 후드티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영등포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밤늦은 시간의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강우는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과 하루 전, 강태훈의 발길질에 채여 괴물들의 먹이가 되었던 그 고등학생 한강우의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죽음이 나를 바꾸어 놓았군."
하지만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이 차가운 눈빛이야말로 무법천지 같은 이 각성자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무기였으니까.
약속 장소인 영등포 4가의 한 폐공장.
어두컴컴한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짙은 곰팡이 냄새와 녹슨 철제 냄새가 진동했다. 저 멀리 드럼통 위에 켜진 촛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와 그 뒤를 지키는 두 명의 경호원.
사내의 이름은 조칠성. 이 구역에서 오랫동안 장물과 불법 마석을 취급해 온 중간 책이었다. D급 헌터 출신으로, 각성자이기는 했으나 마력이 낮아 일찌감치 던전 공략을 포기하고 뒷골목 사업에 뛰어든 자였다.
"어이, 꼬맹이. 네가 연락한 그 짐꾼이냐?"
조칠성은 강우의 낡은 가방과 고등학생 특유의 앳된 체구를 보더니 코방귀를 뀌었다. 무능력자 짐꾼이 어디서 블러드 스톤을 훔쳤거나 주웠을 것이라 짐작하는 눈치였다.
"가져온 물건이나 확인하시죠."
강우는 가방에서 보관용 주머니를 꺼내 드럼통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의 지퍼가 열리자, 은은한 보랏빛 광채와 함께 훅 끼치는 생마력의 냄새가 공장 안을 채웠다.
조칠성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품에서 돋보기 모양의 감정 도구를 꺼내 결정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흠…… 확실히 순도가 높군. 결이 아주 깨끗해. D급 게이트 심층부에서 캔 건가? 꼬맹이치고는 제법 쓸 만한 물건을 건졌어."
조칠성이 결정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 물건, 최근에 실종 신고가 들어온 블랙 드래곤 길드의 강태훈 파티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친구들이 오늘 D급 게이트에서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는 강우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가격을 더 깎거나, 최악의 경우 물건을 거저 빼앗으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무능력자 고등학생 한 명쯤은 이곳에서 죽여 없애도 경찰이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강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차갑게 대꾸했다.
"강태훈 길드장이 실종된 던전은 '태성 길드'의 하청 구역이었습니다. 만약 그 던전에서 나온 장물이 저에게 있고, 제가 여기서 잘못된다면…… 이 사실이 태성 길드의 귀에 들어가도록 안전장치를 해두었습니다. 조 사장님도 태성의 추적을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뭐, 뭐라고?"
조칠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태성'이라는 이름은 뒷골목의 하찮은 장물아비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우의 태도가 너무나도 당당하고 막힘이 없어, 조칠성은 이 꼬맹이의 배후에 정말로 무언가 거대한 정보망이나 조력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강우의 배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사망 시 하루 전 회귀'라는 절대적인 인과율의 무기뿐. 설령 조칠성이 여기서 자신을 죽인다 해도, 어제로 돌아간 강우가 조칠성의 목을 따거나 협회에 신고하여 파멸시키면 그만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협박 따위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쳇, 뼈가 있는 꼬맹이군."
조칠성은 침을 뱉으며 뒤에 서 있는 부하에게 턱짓을 했다.
"이체해라. 1억 5천만 원. 꼬리 안 밟히는 안전한 가상 계좌로 넣어줘."
잠시 후, 강우의 스마트폰이 징 울렸다. 지정된 차명 가상 계좌로 정확히 1억 5천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다.
"거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물건이 있으면 연락하죠."
강우는 보관 주머니를 건네준 뒤 지체 없이 공장을 빠져나왔다. 조칠성은 멀어져 가는 강우의 뒷모습을 보며 낮게 욕설을 뱉었지만, 감히 사람을 붙여 미행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소년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탓이었다.
현금을 확보한 강우의 다음 행선지는 병원이었다.
장기 입원실 침대에 누워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차원 게이트가 열린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마력 중독 증후군'에 걸려, 매달 수백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해야만 겨우 생명을 연명할 수 있는 상태였다.
"엄마."
강우는 어머니의 메마른 손을 꼭 쥐었다.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과 병원비 연체 경고장이 날아올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강우는 원무과로 가서 연체된 병원비와 향후 1년 치의 치료비를 일시불로 납부했다.
"한강우 보호자님, 갑자기 이 큰돈을 어떻게……?"
원무과 직원의 놀란 질문에 강우는 그저 "아는 헌터 분에게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쓸쓸히 웃었다.
병원을 나온 강우는 골목길 구석에서 사채업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빚을 전부 송금하고 계약서 파기 확인서까지 문자로 받아냈다. 평생을 짓누르던 무거운 사슬이 순식간에 풀려나갔다.
하지만 강우는 만족하지 않았다. 돈은 일시적인 방편일 뿐, 이 세상에서 힘이 없다면 언제든 다시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를 시작해야 해."
강우의 목표는 단순한 짐꾼으로 생명을 연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 반응 0.00%의 무능력자 한계를 깨부수고, 스스로 각성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히든 피스(Hidden Piece)'가 필요했다.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회귀하기 전, 헌터들의 술자리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비공개 포럼 등에서 떠돌던 전설 같은 소문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F급 게이트 [버려진 하수도]. F급이라 초보 헌터들이나 훈련용으로 쓰이는 곳이지만, 그곳 지하 4층의 숨겨진 벽 너머에는 각성자의 마력을 흡수하여 무능력자에게 강제로 각성의 씨앗을 심어주는 '심연의 정수'가 잠들어 있다.’
소문은 무성했으나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숨겨진 방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특정 함정을 정확한 순서대로 작동시키고, 몬스터의 공격을 단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특정 위치로 이동해야만 숨겨진 문이 열리는 기믹이었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즉사하거나 던전이 붕괴하는 위험한 난이도.
따라서 일반적인 각성자들은 그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고, 무능력자들은 진입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우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실패하면, 죽고 다시 어제로 돌아와 성공할 때까지 반복하면 되니까.
"F급 게이트 [버려진 하수도]. 내일부터 공략을 시작한다."
강우는 가방을 고쳐 매며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동자에 새로운 목표를 향한 집념이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