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5화: 생존의 증명
보랏빛 광채가 동굴 안의 어둠을 부드럽게 몰아내고 있었다.
강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블러드 스톤 광맥 앞으로 다가갔다. 날것의 마력이 공기 중을 떠돌며 코끝을 자극했다. 무능력자인 그에게는 그 마력이 폐부를 찌르는 미세한 바늘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그런 통증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게 바로 강태훈이 목숨을 걸고 숨기려 했던 노다지인가."
블러드 스톤은 공식적으로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마력 광물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마력을 품고 있어 일반적인 가공은 어렵지만, 어둠의 루트를 거치면 연금술이나 금단의 마도구 제작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는 물건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광맥이라면 가치는 수십억 원을 호가할 터였다.
강우는 허리춤에서 단단한 채굴용 단검을 꺼내 들었다. 길드에서 굴러먹으며 배운 얄팍한 지식 중 하나가 바로 광물 채취법이었다.
서걱. 서걱.
강우는 광맥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마력의 흐름이 가장 약한 결을 따라 단검을 밀어 넣자,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한 크기의 블러드 스톤 결정이 툭 떨어졌다. 빛깔이 어둡고 붉은 기운이 강한 것이 최상급품이었다.
그는 준비해 온 특수 보관용 가죽 주머니를 열었다. 내부가 마력 차단 안감으로 덧대어져 있어 외부로 마력을 방출하지 않는 가방이었다. 무능력자 운반꾼들이 종종 불법적인 물건을 밀반입할 때 쓰는 필수품이기도 했다.
결정 하나를 조심스럽게 담은 강우는 멈추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욕심을 부려 광맥 전체를 캐갈 수는 없었다.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혼자서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무게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던전 밖으로 나갈 때 게이트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가장 밀도가 높고 순수한 결정으로 세 개만 가져간다.’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세 개라면 가방의 마력 차단막이 완벽하게 반응을 숨길 수 있는 한계치였고, 동시에 강우가 당장 필요로 하는 기초 자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서걱. 탁.
마지막 세 번째 결정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굳게 잠그자, 광맥 주변을 맴돌던 보랏빛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강우는 가방을 등에 멘 뒤 단검에 묻은 광물 가루를 털어내고 주위를 정리했다. 채굴 흔적을 바위 먼지와 흙으로 덮어 대충 위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나갈 시간이다."
강우는 왔던 길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대공동 바닥에는 여전히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고, 강태훈의 부하들이었던 헌터들의 시신은 블러드 울프들에게 참혹하게 뜯겨 나간 상태였다.
강우는 그들의 시신을 차가운 눈으로 잠시 응시했다. 시신들의 품을 뒤져 쓸 만한 물건이나 비상용 포션이 있는지 확인했다. 불쌍하다거나 끔찍하다는 감정은 회귀 이전의 죽음과 함께 이미 마모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나치게 침착한 손길로 D급 헌터 김진우의 품에서 비상용 MP 회복 포션 한 병과 신분증, 그리고 비상금 몇만 원을 챙긴 강우는 마침내 대공동의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동굴 통로는 고요했다. 강태훈 일당을 추적하느라 몬스터들이 대부분 입구 쪽으로 몰려간 덕분에 되돌아가는 길은 오히려 처음 들어올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강우는 벽면에 설치해 둔 간이 마력 신호기를 회수해가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출구 근처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서 거친 신음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헉…… 으아아!"
강우는 즉시 벽 뒤로 몸을 숨기고 랜턴을 껐다. 어둠 속에서 눈을 찌푸리며 전방을 주시하자,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기어가듯 출구를 향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강태훈이었다.
C급 헌터로서의 저력 덕분인지 블러드 울프들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몰골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한쪽 팔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뜯겨 나가 있었고, 허벅지에서는 시뻘건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 그가 지나온 자리에 길고 붉은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마력 갑옷은 진작에 깨져 흔적조차 없었다.
"살려…… 누가…… 제발……."
강태훈이 허공을 향해 피 묻은 손을 뻗었다. 그의 앞에는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푸른색 포탈이 불과 수십 미터 앞에 일렁이고 있었다. 저 포탈만 넘어가면 바깥에 대기 중인 응급 대원들과 길드의 지원을 받아 살 수 있을 터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스윽 하고 한 소년의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강태훈은 눈을 번뜩이며 그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실루엣의 주인공이 무능력자 짐꾼인 한강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너…… 너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물어보시려는 겁니까?"
강우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며 강태훈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는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딱 세 걸음 앞바닥에 주저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너, 이 개새끼…… 광음탄 던진 놈이 너였지? 네가 우리를……!"
"배신당해 죽는 기분이 어떻습니까, 강태훈 헌터님."
강우의 차가운 눈빛에 강태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평소에 자신들이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던 무능력자 고등학생의 눈빛이 아니었다. 수십 번의 죽음을 경과해 온 타락한 초월자나 가질 법한, 심연보다 깊고 어두운 안광이었다.
"으, 윽…… 살려다오. 강우야, 제발…… 내가 잘못했다. 돈을 원하나? 내 전 재산을 줄게. 계좌에 오천만 원이 있다. 비밀번호도 알려주마. 제발 저 포탈까지만 데려다다오……!"
강태훈은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흙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목숨 앞에서는 C급 헌터라는 지위도, 무능력자를 향한 멸시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강우는 가만히 품속에서 김진우에게서 얻은 비상용 포션을 꺼내 들었다.
"이거 필요하십니까?"
강태훈의 눈에 희망의 빛이 서렸다.
"어, 그래! 그거다! 그걸 주면 살 수 있어! 제발……!"
강우는 포션을 쥔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강태훈의 눈앞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풀었다.
스르륵. 쨍그랑!
포션 병이 바닥의 날카로운 돌에 부딪혀 깨지며 붉은 액체가 흙바닥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아…… 아아……!"
강태훈의 얼굴이 절망으로 하얗게 질려갔다.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강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래야 내 첫 번째 루프가 완벽하게 끝나니까."
강태훈을 살려 보낸다면 바깥세상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의 배후에 있는 길드 세력이나 사채업자들에게 강우의 존재와 블러드 스톤의 정보가 흘러 들어가는 순간, 강우의 평온한 일상은 완전히 종말을 고할 것이었다. 회귀를 통해 알아낸 최적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게이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어둠 속에 묻어야 했다.
"이…… 괴물 같은 새끼……!"
강태훈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강우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마력이 바닥난 C급 헌터의 움직임은 느려터진 거북이와 다를 바 없었다. 강우는 가볍게 몸을 옆으로 피해 단검을 흘려보낸 뒤, 강태훈의 손목을 밟아 짓뭉개며 단검을 빼앗았다.
"커헉!"
강우는 빼앗은 단검의 끝을 강태훈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원래라면 내 손으로 직접 끝장을 내야겠지만……."
저 멀리 통로 깊은 곳에서 다시금 늑대들의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피 냄새를 맡고 돌아오는 늑대 무리였다.
강우는 단검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일렁이는 푸른색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저들이 당신의 죄를 단죄해 줄 겁니다."
"강우야! 한강우! 가지 마! 살려줘! 제발! 으아아아악!"
뒤편에서 강태훈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수십 마리 늑대들의 포효가 귓전을 때렸다. 강우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푸른 빛이 강우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차가운 게이트의 마력이 몸을 통과하는 느낌과 함께, 눈앞의 시야가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스스스스…….
눈을 뜨자, 서늘한 초여름의 밤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게이트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헌터 협회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포탈에서 걸어 나오는 강우를 보고 급히 달려왔다.
"어이, 학생! 괜찮아? 안쪽 상황은 어떻게 됐어?"
강우는 일부러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며, 겁에 질린 고등학생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저앉아 몸을 부르르 떠는 연기는 이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 안쪽에…… 블러드 울프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헌터님들이 저를 대피시켰어요. 그분들은 아직 안에……."
"뭐라고? 블러드 울프 무리라고? 제길, 정보가 틀렸잖아! 야, 2조! 당장 진입 준비해!"
협회 직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무능력자인 한강우가 던전 안에서 무언가를 꾸몄을 것이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강우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은 비참한 짐꾼일 뿐이었다.
임시 천막에서 간단한 신원 조사를 마친 강우는 가방을 굳게 멘 채 통제 구역을 빠져나왔다.
밤거리를 걷는 강우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두운 골목길에 접어든 그는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202X년 X월 X일.
사망하기 전날이자, 회귀를 시작했던 바로 그 날의 밤이었다.
이로써 강태훈의 배신으로 맞이했던 비참한 죽음의 인과는 완전히 소멸했다. 강태훈 일당은 던전 내에서 몬스터의 습격으로 전멸한 것으로 처리될 터였고, 강우의 손에는 그들의 몰락과 함께 챙긴 막대한 밑천이 쥐어져 있었다.
"첫 번째 루프 종료."
강우는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보관용 주머니 속 블러드 스톤을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흐르는 보랏빛 마력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 돈이면 당장 어머니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자신을 옭아매던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은……."
강우의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또 다른 던전의 정보들이 떠올랐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이 무능력자라는 불합리한 껍데기를 깨부수고 진정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한 설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이정표 삼아 걸어가는 소년의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