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61화: 고요한 밤
대격변 D-1일.
정부는 섀도우의 경고와 감사국, 그리고 대형 길드들의 강력한 공동 성명을 받아들여 역사상 유례없는 '서울 한강 이남 특별 대피령'을 선포했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군과 경찰의 통제하에 한강 이북 및 지하 대방공호로 신속하게 대피했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테헤란로를 가득 채우던 차량들의 행렬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밤 10시. 대격변을 불과 두 시간 앞둔 서울 남부의 거리는 마치 유령 도시처럼 조용했다.
불 꺼진 빌딩 숲 사이로 흩날리는 차가운 바람 소리만이 대로를 쓸고 지나갔고, 사방에 쳐진 바리케이드 뒤로 헌터 연합의 군용 장갑차들과 무장 헌터들의 긴장 어린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영등포 게이트 앞 광장.
S급 헌터 백현우는 거대한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대검 '심연의 분쇄자'의 칼날을 조용히 천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붉은색 검신에 가로등의 희미한 주황빛이 반사되어 빛났다.
터벅, 터벅.
어둠 속에서 후드를 쓴 강우가 조용히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백현우 씨. 준비는 되셨습니까?"
백현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희미한 붉은 불꽃이 그의 거친 얼굴을 잠시 비추었다가 사라졌다.
"대검은 잘 벼려놨지. 섀도우, 내일 이 10개 구덩이가 일제히 다 터진다면 서울은 어떻게 되는 거냐?"
"연합의 방어선이 단 한 군데라도 무너지면 나비 효과로 인해 서울 전체가 마수들의 늪으로 소멸합니다."
강우의 대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냉정했다.
백현우는 담배 연기를 밤하늘로 내뿜으며 핏 웃었다.
"참 살벌하게도 말하는군. 기물이니 체스판이니 하면서 사람을 말처럼 굴리더니, 정작 네놈은 아무 마력도 없는 몸으로 내일 무얼 할 작정이지?"
강우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마력 측정기에는 감지되지 않는, 그러나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욱 조밀하고 강력하게 얽혀드는 그림자의 아지랑이가 손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가 이 10개 전선의 숨겨진 사각지대를 그림자로 끊임없이 돌며, 무너지는 방어선의 빈틈을 메울 겁니다. 제 목숨을 칩으로 던져서라도, 10개의 전선이 동시에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도록 강제 동기화시킬 겁니다. 백현우 씨는 오직 눈앞의 적을 찢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백현우는 강우의 차갑고도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S급 헌터로서 수많은 강자와 예언자, 괴물들을 보아왔던 백현우였지만, 이 마력 한 줌 없는 19세 고등학생 소년의 단단하고 초연한 정신력만큼은 볼 때마다 깊은 전율과 안도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좋다, 섀도우. 네놈이 내일 나를 어떻게 굴릴지 기대해보지. 실망하게 하지 마라."
백현우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며 대검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한 뒤, 어둠 속의 그림자로 스며들어 유유히 사라졌다.
같은 시각, 서초 게이트 앞의 임시 지휘 텐트.
유지원은 자신의 빙결 세검을 가슴에 얹은 채 눈을 감고 기도하듯 주머니 속의 무전기를 꼭 쥐고 있었다.
주변 요원들이 무기를 점검하며 긴장하는 소리가 요란했으나,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사흘 전 섀도우가 건네준 그 정교한 오더 시퀀스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섀도우…… 부디 내일 아무도 죽지 않게 해주세요. 당신조차도 말이에요."
그녀는 나지막이 읊조리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신림동의 낡은 옥탑방.
강우는 방 안의 모든 빛을 차단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피어오른 E등급 그림자 촉수 수십 개가 방 전체의 벽면과 바닥의 어둠과 끈적하게 동기화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강우는 전신의 핏줄이 뒤틀리는 극통을 묵묵히 견뎌내며, 자신의 육체의 그림자 친화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내일 10개 전선을 동시에 우회하려면, [그림자 보행]의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야 해. 영혼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상관없다."
째깍, 째깍, 째깍…….
스마트폰의 시계 바늘이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역사책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지구의 명운을 건 보이지 않는 황제와 심연의 광신도들의 대격변 전쟁이, 단 60분 뒤 서울 남부의 밤하늘 위로 그 잔인한 서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