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60화: 체스판의 진형
대한민국 헌터 사상 유례없는 긴급 회의가 강남의 태성 길드 본사 지하 10층의 극비 브리핑룸에서 열리고 있었다.
회의실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서울 한강 이남 전역을 비추는 3D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그 위로 영등포, 강남, 서초, 동작 등 10개 구역에 위치한 대형 게이트들의 좌표가 붉은색 해골 마크와 함께 점멸하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인물들의 면면은 대한민국 헌터계의 지배자들이었다.
감사국장, 태성의 길드장 유지태, 그리고 섀도우의 분석 데이터를 전달받고 마침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내 1위 길드 '한울'의 작전 사령관까지. 그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정교한 '서울 남부 대격변 작전 계획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섀도우라는 자가 홀로 작성해서 보낸 계획서란 말입니까?"
한울의 작전 사령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사흘 뒤 밤 12시, 이 10개의 대형 게이트가 0.1초의 차이도 없이 일제히 연쇄 붕괴를 일으키는 초대형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될 것임을 예견하셨습니다."
유지원의 단호한 대답에 감사국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10개 대형 게이트의 동시 브레이크라니…… 그건 서울의 절반이 마수들의 아가리 속에 떨어져 멸망한다는 소리잖아! 아무리 우리 길드 연합의 전력을 다 끌어모아도, 10군데의 전선을 동시에 완벽히 막아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섀도우 님의 설계입니다."
유지원이 홀로그램 패널을 터치했다.
화면 속의 붉은 좌표들 위로, 헌터 연합의 정예 요원들과 길드들의 부대 마크가 기묘한 체스판의 기물처럼 유기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섀도우 님께서는 각 게이트 내부의 마력 밀도 추이와 몬스터들의 특성을 100% 분석하여, 우리 연합 전력의 가장 최적화된 시너지 배치도를 완성하셨습니다."
- 영등포 B급 변이 게이트: 가장 흉포하고 강력한 S급 거대 마수가 튀어나올 핵심 전선. -> S급 은둔 헌터 백현우 단독 배치.
- 서초 게이트: 광범위한 이동 저지 및 군중 제어(CC)가 필요한 구역. -> A급 빙결 법사 유지원 팀장 및 감사국 정예 1조 배치.
- 강남 게이트: 파괴적인 물리 돌진 계열의 야수 떼가 쏟아질 구역. -> A급 방어 전사 박성태 및 태성 길드 정예 방패 요원 100명 배치.
"말도 안 돼! 아무리 예언자라 하더라도, 각 게이트에 튀어나올 몬스터들의 상세 기믹과 개체 수까지 미리 알고 헌터들의 스킬 시너지 조합을 짠다고?! 이건 시뮬레이션을 수천 번은 돌려본 컴퓨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해!"
한울의 사령관이 테이블을 탁 치며 불신을 표했다.
그때, 회의실의 메인 스피커에서 징 소리와 함께 변조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 "그 시뮬레이션을, 제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돌려두었습니다."
섀도우의 목소리였다.
그의 등장을 감지한 유지태 길드장과 감사국장 등이 일제히 자세를 고쳐잡았다.
- "한울의 사령관님. 당신이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흘 뒤 밤 12시, 강남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몬스터들은 외피가 강철처럼 단단한 '대지 귀갑 저격수' 500마리입니다. 이들은 번개 속성의 타격 공격에 극도로 취약하죠. 당신들의 정예 번개 마법사 30명을 박성태 팀장의 방패진 바로 뒤에 배치해 두지 않으면, 강남은 돌입 5분 만에 불바다가 될 겁니다."
섀도우는 한울 측이 기밀로 분류해 둔 정예 마법사들의 상세 프로필과 스킬 쿨타임 데이터까지 정확하게 읊조리며 쐐기를 박았다.
- "의심하며 시간을 낭비하기엔 서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제 지시대로 헌터 연합의 연대 편성을 시작하십시오. 이 체스판의 말들이 1미터라도 어긋나는 순간, 서울은 멸망합니다."
무전기 저편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위압감은 회의실의 모든 거물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유지태 길드장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섀도우 님의 뜻대로 진행한다. 태성 길드 전원은 지금 이 순간부로 섀도우의 지휘하에 전권을 양도한다. 한울 역시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군말 없이 따라라."
"……알겠습니다. 섀도우의 시나리오대로 병력 이동을 개시하죠."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길드 초월 통합 지휘권이, 한 명의 무능력자 섀도우의 손끝에 온전히 쥐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 시각, 신림동의 낡은 옥탑방 오피스텔.
방 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오직 모니터 세 대의 푸른빛만이 강우의 땀방울 맺힌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강우의 양손은 키보드 위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며 10개 게이트의 지맥 동조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정하고 있었다.
"이 배치가 실패하면, 나는 사흘 뒤 밤에 10개의 지옥을 돌며 무수히 자살해야 해."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10개 구역의 동시 브레이크. 만약 한 구역이라도 뚫려서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면, 회귀를 하더라도 과거의 시간선 자체가 왜곡되어 리셋이 불가능해진다.
단 한 번의 도전으로, 10개의 전선을 동시에 완벽하게 막아내야만 하는 기적의 시나리오.
강우의 눈동자 속에서 푸른 마력의 배선도들이 어지럽게 일렁였다.
"완벽하게 뚫어낸다. 내가 가진 모든 죽음의 기록을 걸고서."
보이지 않는 황제의 손끝 아래, 세상을 구할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체스판의 기물들이 운명의 디데이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