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45화: 예언자의 소문
태성 길드 본사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 부길드장 최현준의 체포 극은 대한민국 헌터 업계의 권력 지도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태성의 1인자이자 길드장인 유지태는 감사국과 공조하여 최현준 라인의 이사진과 부패 세력을 단 일주일 만에 완벽히 정화했다. 태성 길드는 명실상부한 청렴하고 투명한 대한민국 최고 길드로 다시 태어났으며, 감사국 1조 팀장 유지원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
사관학교 폭주 던전에서의 무결점 구출, 그리고 태성 본사의 무적 방벽을 단 10초 만에 무력화시킨 신기에 가까운 전술 지휘.
하지만 정작 헌터 업계의 고위직들과 정보 기관들이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유지원 팀장의 뒤에…… '진짜'가 있다."
"마력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던전의 주파수와 결계 시스템을 제어하며 미래를 100% 설계하는 그림자."
"예언 능력자인가? 아니면 시스템 측정 불가 판정을 받은 특수 능력자인가?"
세간에서는 그 정체불명의 조력자를 '섀도우', 혹은 '어둠 속의 예언자'라 부르며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남긴 정보 한 줄, 설계도 하나가 거대 길드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 마포의 한 한적한 고깃집.
치이익――.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불판 너머로 유지원이 조심스럽게 소주잔을 채웠다.
그녀의 앞에는 후드 모자를 벗어 던지고 편안한 셔츠 차림을 한 강우가 앉아 있었다. 강우는 집게를 들고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었다.
"이런 평범한 식당에서 만나도 괜찮은 겁니까? 유지원 팀장님은 이제 거의 연예인급 유명인사일 텐데요."
강우가 툭 던지듯 말했다.
유지원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세요. 감사국의 특수 인지 저해 아티팩트를 켜두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평범한 남매나 친구 사이로 보일 테니까요."
그녀는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강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마력, 무능력자.
마력 측정기에 감지조차 되지 않는 평범한 고등학생 한강우.
이 수수한 소년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섀도우'라는 사실을, 만약 헌터 협회 회장이나 최현준이 알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강우 씨, 인터넷 포럼 봤나요? 다들 당신을 '측정 불가의 대예언자'라고 부르고 있어요. 헌터 사관학교 생도들 사이에서는 당신이 던전 내부를 투시하는 천리안을 가졌다는 소문까지 돌더군요."
강우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유지원의 앞접시에 올려두었다.
"예언이라니, 허무맹랑한 소리죠. 전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경험'하고, 그것을 머릿속에 상세히 기록해 둘 뿐입니다.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한 일이라 칭찬으로 들리진 않지만요."
유지원의 안색이 슬며시 어두워졌다.
사망 시 하루 전 회귀.
죽음의 물리적 고통과 공포를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발동하는 가혹한 각성 권능. 강우가 그 완벽한 예지 같은 설계를 내놓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며 차가운 바닥을 굴렀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유지원의 가슴이 저려왔다.
"강우 씨…… 이제 조금 쉬어도 되지 않나요? 최현준도 체포되었고, 태성도 안정되었으니 당분간은 위협이 없을 텐데요."
강우는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과율은 멈추지 않습니다. 최현준이 무너진 공백을 노리고 더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요. 그리고…… 며칠 뒤 강남 한복판에서 역대 최악의 균열이 발생할 겁니다."
"균열이라고요? 강남에?"
유지원이 흠칫 놀라 물었다.
"A급 던전 [얼어붙은 나락]. 아직 던전 관리국에는 안전한 C급 전조 현상으로 보고되어 있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입니다. 지맥 내부에서 마력이 역류해 B급을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A급 최상위로 변이할 던전입니다. 공략 시기를 놓치면 강남 전역이 빙결 지옥으로 변하는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겁니다."
유지원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A급 던전 브레이크는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미증유의 대재앙이었다.
"태성과 감사국이 합동으로 공략 팀을 꾸려야겠군요. 강우 씨, 그 던전 공략도 설계해 주실 수 있나요?"
강우는 불판의 불을 끄며 유지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던전은 단순한 공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몬스터들의 기믹이 매 분마다 무작위로 뒤바뀌는 최악의 변칙 던전입니다. 한 번의 설계만으로는 통하지 않아요. 제가 직접…… 공략 팀의 현장 고문 겸 운반꾼으로 동행해야 합니다."
"동행이라고요?! 하지만 거긴 A급 던전이에요! 강우 씨는 마력이 없는데 진입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요!"
유지원이 다급하게 만류했다.
강우는 후드 모자를 다시 깊게 눌러쓰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현장에 있어야만, 대원들이 죽어 나가는 실시간 변수를 겪고 '리셋'하여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 목숨을 칩으로 던져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입니다."
그의 냉정한 어조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일부터 태성 길드장님을 통해 공략 대리 조교 모집 공고를 내십시오. 제가 지원해서 들어갈 테니, 특별 고문직으로 결재만 해두시면 됩니다."
강우는 고깃값을 불판 옆에 내려놓고 슬며시 몸을 돌렸다.
"모레 아침에 뵙겠습니다, 유지원 팀장님. 이번 판은…… 저조차 몇 번을 죽어야 할지 모르는 진짜 지옥이 될 겁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지는 강우의 뒷모습을 보며, 유지원은 술잔을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보이지 않는 황제, 섀도우.
그가 스스로를 사지로 던져 넣으며 완성할 다음 체스판, A급 던전 [얼어붙은 나락]의 서늘한 서막이 강남의 밤하늘 위로 차갑게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