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44화: 추락하는 거인
오후 2시 14분 50초. 태성 본사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
"마도 전송 아티팩트, 마력 충전율 95%! 곧 차원 전송 관문이 열립니다!"
최현준 부길드장의 심복 비서가 다급하게 보고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둥근 고리 모양의 거대한 전송 아티팩트가 푸른색 스파크를 내뿜으며 공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 장치가 작동하면 최현준과 그의 정예 헌터들은 감사국의 감시망을 피해 미리 섭외해 둔 해외의 안전 가옥으로 즉시 순간이동할 수 있었다.
최현준은 피비린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지상 광장에서 대치 중인 감사국 수사대와 경찰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유지원, 유지태. 너희가 아무리 나를 몰아세워 봤자 나를 잡을 순 없다. 이 장막이 켜져 있는 한, 너희는 손가락만 빨며 내가 탈출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테니까."
이지스 마도 방벽의 노란색 결계막이 펜트하우스 유리에 은은하게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오후 2시 14분 58초.
"충전 완료! 전송을 개시합……!"
그 순간이었다.
위이이이잉――――― 툭.
천하를 지켜줄 것처럼 웅장한 진동음을 내뿜던 이지스 마도 방벽의 노란색 결계막이, 마치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듯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순간에 완전히 꺼져버렸다.
"……어?!"
최현준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동시에 펜트하우스 천장의 조명등과 전송 아티팩트의 스파크가 이상 고전압 스파크를 튀기며 콰앙! 하고 폭발하듯 꺼져버렸다. 지하 3층에서 강우가 실행한 마력 배선 역류 바이패스 장치가 상층부의 모든 마도 전기 회로를 일시 과부하 시켜 강제로 차단해버린 탓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전송 장치가 왜 꺼져?!"
최현준이 비명을 지른 그 찰나.
오후 2시 15시 02초.
콰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펜트하우스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강화 유리창들이 일제히 박살 나며 안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 대기하고 있던 감사국 특수 타격 헬기에서 강하한 유지원과 A급 정예 타격 요원들이 와이어를 타고 유리창을 깨부수며 강습해 들어온 것이었다.
지옥에서 온 서리바람처럼, 유지원의 발밑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차가운 한기가 펜트하우스 바닥을 덮치며 순식간에 은빛 얼음판으로 만들었다.
"전원 제압해라!"
유지원의 날카로운 호령과 함께 감사국 요원들이 경악에 빠진 사설 경비 헌터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했다.
"으, 으악! 감사국이다!"
"방벽이 어떻게 깨진 거야?! 막아!"
사설 헌터들이 허겁지겁 무기를 뽑아 들었으나, 이미 마도 장비가 전력 차단으로 무력화되고 갑작스러운 강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감사국 정예 요원들의 일격에 낙엽처럼 쓰러졌고, 다리는 바닥의 얼음에 붙들려 움직이지 못했다.
"유지원……!"
최현준은 얼굴이 흙빛이 된 채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유지원을 향해 돌진했다. B급 각성자인 그 역시 나름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성을 잃은 그의 공격은 너무나 단순했다.
서걱!
유지원은 가볍게 몸을 틀어 최현준의 단검 궤적을 흘려낸 뒤, 세검의 손잡이로 최현준의 턱을 강하게 가격했다.
퍽!
"컥!"
최현준이 비틀거리며 피를 뱉어냈다. 유지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오른팔을 꺾어 바닥에 짓눌렀다. 검끝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 송곳이 최현준의 옷자락을 바닥에 단단히 박아 고정시켰다.
철컥!
마력의 흐름을 완벽히 차단하는 묵직한 마력 억제 수갑이 최현준의 손목에 채워졌다.
"끝났습니다, 최현준 부길드장. 아니, 이제 부길드장이라는 칭호도 끝이군요."
유지원의 서늘한 목소리가 펜트하우스의 난장판 속에 울려 퍼졌다.
최현준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유지원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유지원…… 네년 뒤에 숨어서 이 모든 판을 짜는 그 쥐새끼가 누구냐? 그놈이 아니었다면 내 방벽이 꺼질 일도, 전송 장치가 고장 날 일도 없었어! 그놈의 정체가 뭐냔 말이다!"
유지원은 짓눌려 있는 최현준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당신 같은 탐욕스러운 자에게는 평생 허락되지 않을 이름이죠. 평생 그 감옥 안에서 섀도우라는 이름의 공포에 떨며 살아가십시오."
"으아아악! 죽여버리겠다! 유지원! 그 쥐새끼도 내 손으로 찢어 죽일 거야!"
최현준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으나 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펜트하우스 내부의 전투는 불과 5분 만에 완벽한 감사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유지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서진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서울 도심의 하늘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주머니 속의 무전기를 살포시 쥐었다.
'섀도우, 보고 있나요? 최현준을 잡았어요. 당신이 짜둔 체스판의 왕이 마침내 쓰러졌어요.'
그녀는 응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시각, 빌딩 1층 로비의 혼란스러운 틈을 타 평범한 배관공 조끼를 입은 강우가 로비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의 귀에 꽂힌 일반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최상층의 통신망을 도청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현준의 비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자, 강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옅은 실소를 지었다.
"체크메이트다, 최현준."
태성 길드를 좀먹던 가장 거대한 해충이 박멸되었다.
이제 태성 길드는 유지원의 아버지인 유지태의 단독 지휘 아래 급격한 정화 과정을 거칠 것이며, 감사국 역시 헌터 사관학교와 태성 길드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어 더욱 강력한 입지를 굳히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 모든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역사책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이름 없는 무능력자가 있었다.
강우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강남 대로를 걸어갔다.
제3막의 첫 번째 폭풍이 지나가고, 더 광활한 세상의 판도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