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37화: 시작된 폭주
오전 9시 55분. 사관학교 지하 [시뮬레이터 던전 B-3]의 진입 광장.
웅장한 철제 게이트가 서서히 열리며 기괴한 푸른색 마력 파동을 뿜어냈다. 게이트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거대하고 음산한 숲과 석조 폐허가 뒤엉킨 복합형 인공 던전이었다. 비록 인공적으로 제어되는 게이트였지만, 생도들의 훈련을 위해 실제 던전과 100% 동일한 마력적 환경이 모사되어 있었다.
"A반 생도들, 진형 유지해라! 이번 모의 훈련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다. 감사국과 거대 길드들의 인사들이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고 있다!"
교관의 호통에 군기가 바짝 든 생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들의 선두에는 감사국 특별 강사이자 감독관인 유지원이 서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가죽 아머를 걸친 채 허리에 얇은 세검을 차고 있었다. 겉으로는 더없이 차분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그녀의 귓가에 꽂힌 감사국 전용 기밀 마도 인이어에서는 미세한 정전기 음이 들리고 있었다.
치지직――.
'주파수 동조 완료. 유지원 씨,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섀도우의 나지막한 음성이었다. 유지원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들려요. 준비는 끝났어요.'
'좋습니다. 훈련 시작 후 정확히 30분 뒤에 시스템이 다운될 겁니다. 첫 30분 동안은 일반적인 C급 난이도로 보일 테니 자연스럽게 행동하십시오. 저 역시 조교 백업 요원으로 던전의 사각지대에 진입하겠습니다.'
통신이 끊겼다. 유지원은 눈동자를 굳히며 생도들을 이끌고 게이트 너머의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시각, 던전 통제실.
통제실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던전 내부의 상황이 수십 개의 모니터에 비치고 있었다. 최강민 교무처장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최 처장님,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그의 심복인 통제실 팀장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좋아. 10시 30분 정각에 전원을 내리고, 현성 마도구에서 납품한 불량 촉매를 과부하시켜라. 게이트의 외벽 차단 결계를 봉쇄하고 내부의 마력 농도를 B급 상위로 증폭시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부에 있는 생도들이 정말로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심복의 목소리에 미세한 망설임이 묻어났다. 최강민은 찻잔을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헌터가 되려는 자들이 던전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게다가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현장 통제를 소홀히 한 감사국의 유지원 팀장에게 돌아갈 거다. 태성 길드의 최현준 부길드장님이 뒤를 봐주신다는데 뭐가 두렵나?"
최강민은 주머니에서 두둑한 골드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낄낄거렸다.
"기적처럼 영등포 대참사를 막아내서 세간의 영웅이 된 유지원이, 제 모교인 사관학교 생도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무능한 헌터로 추락하는 순간을 똑똑히 보게 될 거다."
오전 10시 30분.
던전 내부의 인공 폐허 구역.
생도들은 조를 나누어 몬스터로 설정된 C급 '강철 고블린' 떼를 무난하게 소탕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역시 모의 던전이라 그런가 쉬워."
"그러게. 유지원 선배님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해!"
생도들이 자만심에 가득 차 미소를 짓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윙―――――――――!
갑자기 사방의 공기가 거칠게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던전 전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하늘을 메우고 있던 마법 장벽의 푸른 빛이 시꺼먼 암적색으로 번쩍이더니, 이내 툭 하고 꺼져버렸다.
스스스스…….
사방의 바닥과 벽면에서 시커먼 지옥의 유황 냄새와 함께,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고 폭발적인 마력 파동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어?! 마력이 왜 이러지?!"
"시스템 모니터가 안 켜져요! 통제실과의 통신 단절!"
"게이트가…… 게이트 입구가 닫히고 있어요!"
생도들이 비명을 질렀다. 저 멀리 던전 진입로의 거대한 철문이 시꺼먼 마력 장벽에 가로막혀 굳게 닫히고 있었다. 강제로 탈출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작동시키려 했으나, 생도들의 아티팩트는 먹통이 된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교관님! 아티팩트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통제실! 응답하라! 통제실!"
동행했던 교관마저 패닉에 빠져 무전기를 흔들어댔다.
쿠구구구구궁――!
그때, 던전 깊은 곳의 석조 신전 잔해 뒤편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튀기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들의 기괴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어어어어어억!
"……!"
유지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는 존재들.
그것은 C급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온몸이 단단한 강철 가시로 뒤덮인 B급 몬스터 '가시 지옥 멧돼지'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맹독 침을 쏘아대는 B급 '침묵의 가고일' 떼였다.
그 숫자가 얼핏 봐도 수십 마리에 달했다. 미숙한 생도들로 구성된 훈련 파티가 상대하기에는 명백한 재앙이었다.
"다들 침착해라! 진형을 유지하고……!"
교관이 비명을 지르며 칼을 뽑아 들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밀려오는 마수들의 기세에 묻혀버렸다. 생도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고, 대열은 한순간에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유지원의 인이어에서 섀도우의 냉정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울렸다.
'시작되었군요. 유지원 씨, 지금 당장 우측 3시 방향의 부서진 석탑 구역으로 생도들을 유인하십시오.'
'석탑 구역이라고요? 거기는 막다른 길인데요?'
'그늘이 깊게 진 막다른 길이지만, 던전의 마력 스트림이 분산되는 유일한 사각지대입니다. B급 가시 멧돼지들은 시각이 퇴화해 마력의 흐름을 쫓아 돌진합니다. 그곳에 진형을 구축하면 놈들의 파괴적인 돌진 공격을 원천 봉쇄할 수 있습니다.'
섀도우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안도감을 느끼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이 있었다.
유지원은 즉시 검을 뽑아 들고 허공으로 얼음장 같은 빙결 참격을 날렸다.
콰아아앙!
빙결 참격이 지면을 얼리며 돌진하던 가시 멧돼지 두 마리의 다리를 단숨에 묶었다.
"전원 내 목소리에 집중해라!"
유지원의 맑고 강인한 목소리가 던전에 쨍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내 지시를 따른다! 방패병들은 우측 3시 방향 석탑 잔해 구역으로 퇴각하여 바리케이드를 쳐라! 마법사들은 공중의 가고일들의 시야를 가릴 광막 마법을 캐스팅해라! 감사국 팀장 유지원의 이름을 걸고, 너희를 단 한 명도 죽게 두지 않는다!"
그녀의 압도적인 마력 파동과 단호한 카리스마에, 겁에 질려 있던 생도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아왔다.
"예, 예! 이동합니다!"
생도들은 유지원의 엄호를 받으며 신속하게 3시 방향 석탑 구역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한편, 던전의 깊은 그림자 속.
조교들이 매는 보조 백팩을 멘 강우는 벽면의 그림자를 타고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던전 중심부의 대형 마력 동력실을 향해 있었다.
"최강민, 너희의 이 조잡한 음모를 박살 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강우의 눈앞에 인공 게이트의 핵심 마력 배선반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현성 마도구의 불량 아티팩트가 붉은색 과부하 스파크를 내뿜으며 마력을 폭주시키고 있었다.
강우는 품에서 마력 바이패스 칩을 꺼내 들었다.
"다만, 이번 루프에서 끝내려면 조금 더 완벽한 덫이 필요하겠지."
그는 싱긋 웃으며 바이패스 장치를 배선반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폭주하는 던전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손길이 기계 장치의 신경망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