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35화: 보이지 않는 손
대재앙의 흔적이 가시지 않은 영등포의 거리는 여전히 분주했다. 길가에 방치된 마수의 사체들이 길드 수거 차량에 실려 나갔고, 부서진 보도블록과 찌그러진 차량들을 정리하는 청소부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에는 공포보다 안도감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역사상 전례 없는 '트리플 브레이크'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없었다는 기적이 그들의 가슴을 채운 덕분이었다.
강우는 평범한 환자용 겉옷을 걸친 채 병원 로비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른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로비 한쪽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의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강우야!"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 이선옥이 강우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너 팔은 왜 그래? 다친 거니? 엄마는 괜찮으니까 얼른 의사 선생님한테 가 봐!"
강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어머니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대피하다가 가볍게 넘어진 것뿐이에요. 의사 선생님이 뼈는 이상 없고 며칠 붕대만 감고 있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보다 엄마는 정말 괜찮으신 거죠? 가슴이 답답하거나 놀라진 않으셨어요?"
"엄마는 정말 멀쩡해. 난동이 시작되자마자 간호사들이 다가와서 VIP 병동 대피로로 안전하게 안내해 줬단다. 이상하게 우리 병동만 대피 동선이 완벽하게 짜여 있는 것 같았어. 다른 병원들은 난리가 났다는데 말이야……."
강우는 슬며시 시선을 내렸다.
그 대피 동선 역시 강우가 첫 번째 루프의 참혹한 기억을 바탕으로 유지원에게 신신당부해 병원 측에 강제로 심어둔 양방향 루트였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
강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이 손끝을 통해 전해지자,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감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독약을 목에 찔러 넣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처절한 고통이, 마침내 완전한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병실로 올려보낸 강우는 홀로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시원한 이슬바람이 옥상 광장을 쓸고 지나갔다. 하늘에 찢어졌던 차원의 틈새들은 이제 흔적도 없이 메워져 있었다. 하지만 강우의 머릿속은 벌써 다음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등포 트리플 브레이크가 이 정도로 싱겁게 끝난 이상, 세상은 이변을 조사하려 들겠지."
세계의 인과율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대형 재앙이 너무나 평화롭게 종결되자, 언론과 정부 기관은 '기적의 방어선 설계'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헌터 포럼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 [영등포 방어선 짠 사람 누구냐? 헌터 학회 일동이 단체로 멘붕함.]
- [게이트 폭발 타이밍이 말이 안 됨. 붕괴 10분 전에 던전을 터트려서 상쇄시킨다고? 이건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 [감사국 1조의 유지원 팀장이 주도했다던데, 뒤에 숨겨진 흑막이나 초고위 예언 능력자가 있는 게 확실함.]
강우는 스마트폰 화면을 쓸어내리며 차갑게 혼잣말을 뱉었다.
"날 찾으려고 혈안이 되겠군."
무능력자인 그가 이 거대한 게임의 판도를 흔드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헌터 협회나 대형 길드의 연구소 지하 감옥에 갇혀 해부당할 것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정보 브로커, '섀도우'의 가면을 더 단단하게 써야 했다.
강우는 다크웹의 암호화 포럼에 접속했다.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특수한 인과율 해킹 패킷을 이용해 국가헌터관리공단의 감시망을 우회했다. 그리고 '섀도우'라는 닉네임으로 새로운 비공개 채널을 개설했다. 이 채널은 오직 유지원의 개인 단말기와만 연동되는 절대적인 보안 채널이었다.
지이잉.
메시지를 전송하자마자 거의 실시간으로 유지원의 답장이 돌아왔다.
[섀도우. 마침내 연락이 닿았군요. 지금 감사국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강우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한 손으로 빠르게 타자를 쳤.
[태성 길드 내부의 동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당신의 경고가 맞았어요. 아버지가 이끄는 태성 길드의 주류 세력에 반대하는 부길드장 최현준 라인이 움직이고 있어요. 이번 영등포 브레이크 때 지원이 늦었던 이유도 그들이 의도적으로 대기 명령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라는 물증을 확보했어요. 그들은 영등포가 붕괴해 아버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를 바랐던 거예요.]
유지원의 메시지에는 깊은 분노와 배신감이 서려 있었다.
국내 3대 길드 중 하나인 '태성'.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헌터들의 탐욕과 이권 싸움으로 얼룩진 더러운 시궁창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고한 시민 수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 게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강우는 눈동자를 빛내며 답장을 보냈다.
[최현준은 꼬리에 불과합니다. 그 배후에는 헌터 사관학교의 고위 간부들과 장비 납품 비리 세력이 얽혀 있습니다. 그들이 태성을 집어삼키고 나면, 다음 차례는 국가 각성자 감사국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겁니다.]
[……사관학교까지 얽혀 있다고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 거죠?]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정보의 출처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미래입니다. 그들은 다음 주에 있을 헌터 사관학교 모의 던전 훈련에서 사고를 가장해 당신을 제거하려 할 겁니다. 유지원 팀장님이 사라지면, 길드장인 아버지는 날개를 잃는 셈이니까요.]
스마트폰 너머로 유지원의 다급한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죠? 훈련을 취소해야 하나요?]
[아니요.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십시오. 도망치면 그들은 다른 음모를 꾸밀 겁니다. 차라리 독이 든 잔을 기꺼이 들이키고, 그 독을 역으로 그들의 목구멍에 쏟아붓는 것이 제 방식입니다.]
강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제가 설계한 동선대로 움직이십시오. 이번에는 유지원 씨 본인이 그들의 목을 칠 사냥꾼이 되는 겁니다.]
메시지를 전송한 강우는 단말기의 접속 흔적을 영구히 파괴하는 스크립트를 실행했다. 폰의 온도가 순식간에 올라가며 메인보드가 조용히 타들어 갔다. 그는 뜨거워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옥상 아래의 영등포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무능력자 한강우.
마력도 없고, 지위도 없는 밑바닥 인생.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력한 권능을 쥐고 있었다. 죽음을 지표 삼아 미래를 조율하는 자.
"이제 체스판의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강우의 눈동자 속에서 어둠이 짙게 일렁였다.
제2막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무대가 막을 내리고, 더 거대하고 노골적인 권력의 각축장인 제3막 '무능력자의 게임 판도'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는 생존자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절대적인 설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