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15화: 새로운 판의 시작 (1막 완결)
블랙 드래곤 길드의 몰락이 불러온 후폭풍은 생각보다 거셌다.
길드가 공중분해되면서 사채업자들에게 묶여 있던 수많은 채무자가 하루아침에 빚을 탕감받았고, 불법 게이트 밀수 혐의에 연루된 관련자들이 줄줄이 헌터 협회 타격대에 연행되었다.
특히 블랙 드래곤의 배후로 지목된 대형 길드 '태성'의 일부 이사들은 감사국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꼬리자르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여의도에 위치한 국내 3대 길드 중 하나인 '태성' 길드의 본사 빌딩.
초고층의 화려한 집무실 안, 한 여성이 창밖의 한강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A급 빙결 계열 각성자이자 태성 길드장의 외동딸, 유지원이었다.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길드 내에서 강력한 실전 무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유지원 팀장님, 요청하신 블랙 드래곤 길드장 피살 사건의 예비 보고서입니다."
비서가 정중하게 서류철을 내밀었다. 유지원은 서류를 넘겨받아 꼼꼼히 훑어보았다.
"참혹하네. C급 각성자를 포함한 4명의 헌터가 마력 회로가 완전히 붕괴하거나 물리적으로 심장이 파괴되어 즉사했다라……."
유지원의 차가운 푸른빛 눈동자가 좁혀졌다.
"단순히 원한 관계에 의한 청부 살인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현장에 남은 마력 흔적이 거의 없거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하다고 되어 있네요. 마력을 은폐하는 특수 고유 권능을 지닌 암살자이거나, 아니면……."
"혹시 다른 대형 길드에서 보낸 해결사일 가능성도 보고서에 추가해 두었습니다."
"아니요, 대형 길드의 해결사라면 흔적을 이렇게 깔끔하게 지우지 못해요. 오히려 협회의 눈을 피하고자 엄청나게 오랜 기간 준비한 설계자의 짓이겠죠. 그리고 폭로된 비리 장부의 정교함을 봐요. 길드의 내부 고발자 수준이 아니에요. 누군가 블랙 드래곤의 목줄을 쥐고 완벽하게 뒤흔들었어요."
유지원은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재미있네.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그 '설계자'를 한번 추적해 봐요. 어쩌면 우리 길드 내부의 썩은 고름을 짜내는 데 도움이 될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팀장님."
비서가 퇴장하자, 유지원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밤하늘은 화려했지만, 그 아래 도사린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시각. 강우는 강남의 한 고급 개인 오피스텔에 앉아 있었다.
조칠성에게 받은 1억 5천만 원과 임만수의 금고에서 챙긴 무기명 채권, 현금 등 그가 확보한 유동 자산은 이미 7억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일반적인 고등학생이나 평범한 무능력자로서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금이었다.
강우는 책상 위에 노트북과 여러 개의 대포폰을 늘어놓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몰락으로 사채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겠군."
강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미끄러졌다.
임만수의 USB에서 확보한 태성 길드의 비리 임원 명단과 뒷세계 불법 게이트의 동선들이 모니터 화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타났다.
강우는 이제 단순한 던전 짐꾼 한강우가 아니었다.
그는 뒷세계의 정보 시장에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할 새로운 정보 브로커이자, 보이지 않는 설계자 '섀도우(Shadow)'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죽음을 통해 미래를 미리 보고 최적의 경로를 설계하는 그의 초월적인 권능은 정보 전쟁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절대적인 치트키였다.
띠링.
귓가에 상태창 알림음이 울렸다.
[사용자의 활약으로 인과율이 크게 변동되었습니다.]
[고유 권능 '사망 시 하루 전 회귀(EX)'의 정신 피로도 누적 저항 수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스킬 '심연의 손길(F)'의 마력 밀도가 강화됩니다.]
강우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아지랑이를 바라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더 응집력이 높고 차가운 마력이 촉수 모양으로 뿜어져 나와 허공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이 정도면 D급 헌터 서너 명은 정면 승부로도 단숨에 찢어발길 수 있겠군."
무능력자로 태어나 멸시받고, 배신당해 죽음을 맞이했던 소년.
죽음의 루프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가며 완성한 첫 번째 복수극은 블랙 드래곤 길드의 완전한 파멸로 막을 내렸다. 소년을 옭아매던 현실의 빚과 족쇄는 모두 재가 되어 사라졌고, 어머니의 건강도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그릴 거대한 체스판의 첫 번째 폰(Pawn)을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게이트의 근원, 그리고 이 썩어빠진 각성자 중심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강우는 대포폰 하나를 집어 들고, 뒷세계의 유명한 정보 브로커 채널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블랙 드래곤의 배후, 태성 길드의 비리 임원 명단 거래 가능. 판매자는 '섀도우'.]
메시지를 송신한 강우는 폰의 전원을 끄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도시가 마치 그가 설계한 거대한 게임 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움직여라, 말들아."
소년의 나지막한 독백과 함께, 첫 번째 막이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제 1막 완결. 2막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