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하면 하루 전으로 회귀합니다

12화: 타협의 끝, 심판의 시작
"이, 이 빌어먹을 새끼가……!"
임만수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애송이를 반으로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단 한 줌의 두려움조차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굳건하고 당당하여 섣불리 주먹을 휘두를 수 없었다.
"길드장님, 놈의 폰을 확인했습니다. 정말로…… 암호화된 메일 서버가 구동 중이고 카운트다운이 돌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2분 14초입니다!"
부하 헌터가 식은땀을 흘리며 임만수에게 강우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 안에는 붉은색 숫자가 매 초마다 가차 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발송 예정 리스트에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 감사국, 주요 언론사의 특별 취재부, 그리고 상위 길드 '태성'의 감찰부 이메일 주소까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제길……!"
임만수는 이빨을 득득 갈았다.
저 메일이 발송되는 순간, 블랙 드래곤 길드는 끝장이다. 협회의 조사가 시작되면 탈세와 불법 사채, 불법 게이트 채굴 등의 혐의로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의 배후에서 뒷돈을 받아 챙기던 태성 길드의 이사 역시 꼬리를 자르기 위해 임만수를 비밀리에 암살하려 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원하는 게 뭐냐."
임만수가 불꽃을 뿜을 듯한 눈으로 강우를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
"첫째, 이 거추장스러운 쇠사슬과 수갑을 푸십시오."
강우의 차분한 목소리에 임만수는 턱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부하들이 서둘러 열쇠를 가져와 강우의 수갑과 발찌를 풀어주었다.
강우는 자유로워진 손목을 가볍게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손가락을 몇 번 움직였다.
[보안 드라이브 발송 시간이 15분 뒤로 연장되었습니다.]
"15분의 시간을 더 드렸습니다. 이제 두 번째 요구 사항입니다."
강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임만수를 내려다보았다.
"당신들이 불법 사채업을 통해 옭아매고 있는 수백 명의 채무 서류와 신체 포기 각서 원본을 모두 이 방으로 가져와 제 눈앞에서 불태우십시오. 컴퓨터에 저장된 백업 데이터 역시 영구 삭제해야 합니다."
"이 미친 새끼가! 그게 우리 길드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데 그걸 다 날리라고?!"
임만수의 부하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강우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임만수만을 바라보았다.
"선택은 길드장님의 몫입니다. 길드의 자산을 지키고 감옥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깨끗하게 빚을 탕감해주고 길드장 자리를 유지하시겠습니까? 시간이 얼마 없군요."
임만수는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 지경이었다. 무능력자 꼬맹이에게 이 정도로 휘둘려 본 적은 평생 없었다. 극도의 굴욕감이 뇌리를 찌르고 있었지만, 목숨줄이 잡힌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가져와."
임만수가 신음하듯 뱉어냈다.
"길드장님! 하지만……."
"가져오라면 가져와, 이 머저리 자식들아!"
임만수의 호통에 부하들이 혼비백산하며 밀실 안쪽의 금고실로 달려갔다. 잠시 후, 누런 종이 상자 서너 개가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수많은 채무자의 인적 사항과 피 묻은 지장이 찍힌 신체 포기 각서 원본 서류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강우는 바닥에 놓인 드럼통을 가리켰다.
부하들이 떨리는 손으로 라이터를 켜 서류에 불을 붙여 드럼통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시키던 악마의 계약서들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컴퓨터 백업 데이터 역시 강우가 지켜보는 앞에서 완벽하게 포맷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요구입니다."
드럼통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강우의 차가운 얼굴을 비추었다.
"위로금조로 5억 원을 내 차명 가상 계좌로 입금하십시오. 1분 이내로."
"5억……! 네 이놈!"
임만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미 블러드 스톤까지 빼앗긴 마당에 생돈 5억까지 뜯기다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강우의 눈빛은 일말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완고했다.
"……보내줘라."
임만수가 결국 패배를 선언하듯 고개를 숙였다.
부하가 급히 태블릿을 이용해 강우의 가상 계좌로 5억 원을 이체했다. 이윽고 강우의 폰으로 이체 완료 알림이 떴다.
모든 요구 조건이 충족되었다.
강우는 스마트폰을 켜서 메일 예약 발송 시스템을 완전히 종료하고 삭제했다.
"거래가 성사되었군요. 비리 장부 메일은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임만수의 입가에 비열하고 잔혹한 미소가 서서히 떠올랐다.
"그래……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 꼬맹아."
스우우우…….
임만수의 몸 주위로 끈적하고 짙은 푸른색 마력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C급 각성자의 마력 파동이 지하 밀실의 공기를 무겁게 내리눌렀.
"비리 장부 발송은 취소됐고, 내 서류들은 재가 됐지. 이 방에서 일어난 일을 아는 건 오직 우리뿐이다. 5억 원? 그 차명 계좌의 돈은 네놈이 죽으면 다시 회수하면 그만이야."
임만수가 거대한 도끼 모양의 마력 무기를 소환해 들었다.
"무능력자 주제에 감히 이 독니 임만수의 목을 죄려 해? 네놈을 산 채로 살가죽을 벗겨서 고기반죽으로 만들어 주마!"
부하 세 명 역시 무기를 꺼내 들며 강우를 포위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인한 사냥을 앞둔 포식자의 희열이 가득했다.
하지만 강우는 그 무시무시한 마력의 압박 속에서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한숨을 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임만수 길드장님. 내가 장부 폭로라는 '법적'인 해결책만 준비해 왔을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강우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움켜쥐었다.
"진짜 복수는 이제부터입니다."
스스스스…….
지하 밀실 바닥에 짙게 깔려 있던 어둠이, 강우의 부름에 응답하듯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의 그림자들이 기이하게 요동치며, 날카로운 가시와 촉수의 형상으로 솟구쳐 올랐다. 임만수와 부하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마력 반응 0.00%의 무능력자가 결코 부릴 수 없는, 심연의 강력한 어둠 마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