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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베테랑, 고교 야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5화

40세 베테랑, 고교 야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40세 베테랑, 고교 야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5화: 뛰는 발보다 먼저

잠실구장 더그아웃 바닥이 스파이크에 긁히는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백승진은 포수 장비의 가슴 보호대를 한 번 당겼다. 맞은편 불펜에서 최현우가 마지막 캐치볼을 끝내고 있었다. 공은 낮았다. 어제보다 팔이 부드럽게 나왔지만 강두식 감독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첫 이닝만 본다.”

강두식이 현우에게 말했다.

“공이 뜨거나 팔꿈치가 찌르면 바로 내린다. 버티겠다는 소리 하지 마.”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선발 자리를 걸고 먼저 반박했을 얼굴이었다. 대신 그는 승진을 봤다.

“신호는?”

승진은 오른손 검지를 접었다.

“이거 보이면 바로 마운드 내려와요. 아픈 건 숨기지 말고요.”

“공이 안 가면?”

“그건 내가 받으면서 판단할게요.”

김태섭이 글러브를 끼며 끼어들었다.

“상대 1번 하나 막겠다고 내야를 다 흔들 거냐?”

“다 흔드는 게 아니라 한 자리씩만 바꿀 겁니다.”

승진은 그라운드를 가리켰다.

“번트 자세 나오면 3루수는 두 걸음만. 유격수는 2루를 비우지 마요. 1루수도 너무 깊게 들어오지 말고요.”

태섭의 눈썹이 올라갔다.

“두 걸음으로 번트가 잡혀?”

“번트를 잡는 게 먼저가 아니에요. 2루를 비우면 저쪽이 원하는 대로 됩니다.”

승진은 동해고 1번 타자 서진호를 바라봤다. 타석 근처에서 몸을 풀던 그는 스트레칭을 끝낸 뒤에도 발끝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훗날 프로에서 투수들을 지치게 하던 발이었다. 그러나 지금 승진이 믿을 수 있는 건 기억이 아니라 눈앞의 움직임뿐이었다.

“저 선수는 리드폭 넓힐 때 오른발부터 튀어요. 투수 첫 호흡에 뜁니다.”

태섭이 코웃음을 쳤다.

“몸 푼 것만 보고 그걸 다 알아?”

“모르면 오늘 보고 배우면 되죠.”

승진은 현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는 서두르지 마요. 발 빠른 주자는 빨리 던지는 투수보다 급해지는 투수를 좋아해요.”

현우가 공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느리게 던지라는 말은 아니지?”

“몸이 먼저 가게 던지라는 말이에요.”

현우는 한 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공이 높아지면 네 손가락부터 보겠다.”

강두식이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서진호는 첫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배트를 짧게 잡았다. 단순히 공을 맞히려는 자세가 아니었다. 번트와 강공 사이에서 수비를 망설이게 하려는 자세였다.

승진은 미트를 바깥쪽 낮게 댔다.

초구.

현우의 직구가 미트 끝에 꽂혔다.

팡.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자 서진호는 곧바로 배트를 돌렸다. 억지로 만든 파울이었다. 공의 높이를 확인하려는 스윙.

두 번째 공도 같은 곳이었다.

이번에는 타구가 3루 쪽 파울 라인 밖으로 굴렀다.

관중석에서 동해고 응원단의 북소리가 빨라졌다. 두 스트라이크가 되면 보통 타자는 좁아진다. 하지만 서진호의 발은 오히려 더 가볍게 움직였다.

승진은 세 번째 사인으로 낮은 느린 공을 냈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아직은 아니다.

그는 바깥쪽 낮은 직구로 다시 바꿨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왼발이 짧게 떨어지고 가슴이 늦게 열렸다. 공은 낮게 출발했다.

서진호가 배트를 밀어 냈다.

딱.

타구는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3루수와 유격수 사이의 흙을 핥듯 굴렀다. 유격수가 몸을 날렸지만 글러브 끝을 스친 공은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내야안타.

서진호는 1루를 밟자마자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베이스를 한 번 크게 돌아본 뒤 귀루하면서도 고개는 계속 현우에게 향해 있었다.

승진은 공을 받아 들고 서진호의 발을 봤다.

첫 리드폭은 평범했다.

포수가 공을 돌려주는 순간 두 번째 리드폭이 커졌다. 오른발 앞꿈치가 흙을 파고들었다.

“한 번 봐요.”

승진이 사인을 내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켰다.

현우가 고무판에서 고개를 돌렸다. 견제구는 던지지 않았다. 서진호가 급하게 1루로 돌아갔다.

한 번 더.

승진은 공을 받자마자 일어났고 이번에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현우가 공을 쥔 채 호흡을 멈추자 서진호의 오른발이 먼저 움찔했다.

그 짧은 움직임을 본 현우의 입가가 굳었다.

“봤죠?”

승진이 마스크 뒤에서 물었다.

현우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해고 2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배트를 앞으로 세운 채 3루수 쪽을 한번 흘겨봤다.

번트다.

청원고 3루수가 본능처럼 앞으로 뛰려 했다. 승진은 왼손을 아래로 눌렀다.

두 걸음.

그 이상은 안 된다.

유격수에게는 2루 베이스 쪽으로 몸을 붙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태섭은 잠시 승진을 노려보다가 한 발 물러나 2루 쪽에 섰다.

현우가 세트 자세에 들어갔다.

서진호의 몸이 낮아졌다.

승진은 몸쪽 높은 직구 사인을 냈다. 번트에 손을 대려면 가장 불편한 높이였다.

현우의 왼발이 고무판을 눌렀다. 그는 평소처럼 급히 팔을 끌어내리지 않았다. 몸이 앞으로 간 뒤 팔이 따라왔다.

그 순간 서진호가 뛰었다.

동해고 2번 타자는 배트를 내밀었다가 높은 공에 놀라 손목을 틀었다.

툭.

공이 배트 위에 맞고 홈플레이트 앞쪽으로 떠올랐다.

“내 거야!”

승진이 마스크를 벗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공이 떨어지기 전에 글러브에 담았다. 1루 쪽으로 한 번 몸이 쏠렸지만 그는 던지지 않았다.

2루.

태섭이 베이스를 밟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승진의 송구가 가슴 높이로 날아갔다. 태섭은 공을 받자마자 서진호의 슬라이딩을 피하며 발을 베이스에 붙였다.

“아웃!”

심판의 팔이 올라갔다.

서진호는 흙을 털어내며 2루심을 바라봤다.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청원고 내야의 위치를 하나씩 확인했다.

승진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동해고가 노린 건 희생번트 하나가 아니었다. 3루수와 1루수를 깊게 끌어내고 텅 빈 2루로 주자를 보내는 것. 그 익숙한 길을 청원고가 먼저 막았다.

2번 타자는 1루로 달려 나갔다. 번트는 살았다. 그러나 가장 빠른 주자는 사라졌다.

청원고 더그아웃에서 짧은 함성이 터졌다.

태섭이 글러브를 들어 보이며 외쳤다.

“두 걸음이 그 두 걸음이었냐?”

승진은 마스크를 다시 썼다.

“말했잖아요. 베이스를 비우지 말라고.”

동해고 3번 타자가 들어섰다. 그는 배트를 짧게 잡고 홈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붙었다. 낮은 공을 끌어당길 준비였다.

승진은 미트 아래쪽을 두드렸다.

낮은 직구.

현우의 첫 공이 바깥쪽 아래에 꽂혔다.

팡.

타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낮은 공을 확인한 눈이었다.

승진은 같은 사인을 한 번 더 냈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두 번째 공이 손에서 빠져 미트 위로 솟았다. 승진은 팔을 뻗어 간신히 잡았다.

볼.

강두식이 더그아웃 난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펜 쪽의 김태섭도 모자를 고쳐 썼다.

승진은 공을 던져주지 않고 마운드로 걸어갔다.

현우의 숨이 평소보다 짧았다. 왼팔을 만지는 버릇은 없었다.

“아파요?”

“아니.”

“그러면?”

현우가 홈플레이트 쪽을 힐끗 봤다.

“빨리 끝내려고 했어.”

승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전과 달랐다. 아픈 팔을 감추려고 괜찮다고 하는 목소리와 조급해서 공이 뜬 목소리는 다르다.

“그럼 더 늦춰요.”

“타자가 기다리잖아.”

“몸을 늦추라는 게 아니에요. 손을 늦추라는 거예요. 공은 안 늦어요.”

현우의 시선이 승진의 손으로 내려갔다. 전날 불펜에서 들었던 말이었다.

승진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여기까지 참았다가 던져요. 높게 가면 제가 바로 손가락 접을게요.”

“알았어.”

현우는 짧게 답하고 고무판으로 돌아갔다.

승진은 바깥쪽 낮은 곳에 미트를 댔다. 직구 사인.

현우의 왼발이 흙을 짚었다. 가슴이 너무 빨리 열리지 않았다. 공은 타자의 무릎 바깥으로 낮게 파고들었다.

팡.

스트라이크.

동해고 3번 타자의 앞발이 한 박자 늦게 멈췄다.

승진은 똑같은 곳에 미트를 댄 채 느린 공 사인을 냈다.

현우가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 팔을 올렸다.

공은 직구와 같은 길로 출발했다. 타자는 낮은 직구를 기다리던 몸을 먼저 열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속도가 빠진 공이 배트 아래로 파고들었다.

딱.

타구가 2루수 정면으로 굴렀다.

2루수가 잡아 1루로 던졌다.

“아웃!”

1회 초가 끝났다.

승진은 현우에게 다가가 공을 건넸다. 현우는 공을 받지 않고 먼저 물었다.

“아까 높은 공 하나 던졌다고 손가락 접을 줄 알았는데.”

“통증이 아니었잖아요.”

“내가 말 안 했으면?”

“그럼 내가 묻고 내렸죠.”

현우가 피식 웃었다.

“진짜 포수 맞네.”

“이제 알았어요?”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강두식이 승진 앞을 막아섰다. 그의 눈은 현우의 팔보다 먼저 승진의 마스크로 향했다.

“다음 이닝도 네가 받아.”

“알겠습니다.”

“현우 공이 하나라도 죽으면 바로 말해.”

“예.”

강두식은 더 말하지 않고 물러났다. 태섭은 아직도 2루 베이스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불만이던 얼굴이었다.

“다음에도 두 걸음이면 되는 거냐?”

승진은 헬멧을 받아 들었다.

“상대가 같은 길로 오면요.”

그때 동해고 더그아웃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감독이 포수와 3루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둘의 시선이 동시에 승진에게 향했다.

포수 마스크를 쓴 자신을 향한 시선이었다.

승진은 헬멧 턱끈을 조였다.

서진호의 발은 막았다.

이제 동해고는 그의 발을 묶으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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