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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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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고쳐진 죽음

차이준은 장부를 펼쳤다.

그 안에는 사람 이름과 날짜, 그리고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어떤 문장은 검은 잉크로, 어떤 문장은 붉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

차이준 - 2016.04.12 - 연인 선아의 추락을 막음

대가: 어머니의 기억 소실

강도현 - 2019.08.18 - 강윤재의 사고를 대체

대가: 본인 사망

윤재는 그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글자는 잔인할 정도로 단정했다. 형의 죽음이 한 줄짜리 기록이 되어 있었다.

“거짓말.”

윤재의 목소리는 자신도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낮았다.

차이준은 조용히 말했다.

“믿고 싶지 않겠죠.”

“형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말하면 당신이 그 선택을 막으려 할 테니까.”

“당연히 막지!”

윤재의 외침이 사물함 복도에 부딪혀 돌아왔다. 몇 개의 문이 덜컹거렸다. 서연이 윤재의 팔을 잡았지만, 그는 뿌리치지 않았다. 잡혀 있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차이준은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2019년 8월 18일, 열여섯 강윤재는 독서실에서 나와 사거리로 뛰어갔습니다. 이유는 사소했습니다. 형과 싸웠고, 사과하려고 했죠. 그때 음주 차량이 인도로 돌진했습니다. 원래 당신이 죽었습니다.”

윤재의 기억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형과 싸운 기억은 있었다. 도현이 윤재의 게임기를 팔아먹었다고 오해했고, 윤재는 형에게 다시는 얼굴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 날 사과하려 했던 기억은 없었다. 그 기억은 형이 대신 죽으면서 사라진 것일까.

“도현 씨는 정오 이동을 한 번 썼습니다. 전날 당신이 자신에게 경고한 뒤, 그는 나를 찾아왔고, 방법을 물었습니다.”

윤재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럼 내가 형을 죽인 거잖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가 과거로 가서 말했으니까 형이 당신을 찾아갔고, 그래서…….”

“아니요.”

차이준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단호해졌다.

“당신은 이미 그 전에도 왔습니다. 여러 번.”

윤재는 말문이 막혔다.

서연이 대신 물었다.

“여러 번이라니요?”

차이준은 윤재의 손등을 가리켰다.

“검은 선은 사용 횟수만 표시하지 않습니다. 겹친 윤재들의 흔적입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수정들이 이미 당신 안에 쌓여 있습니다.”

도식이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 윤재 선배가 첫 윤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 말은 기괴했지만 맞았다. 윤재는 자신이 원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 미래의 윤재 같은 남자, 형의 유품 상자에 생긴 붉은 봉투, 차이준이 자신을 알고 있던 이유. 모든 것이 하나의 결론을 향했다.

윤재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다.

차이준은 장부를 윤재 앞에 밀어 놓았다.

“이 굴레는 후회를 먹습니다. 정확히는 ‘바꾸고 싶은 순간’을 가진 사람에게 경계의 문을 엽니다. 처음은 공짜입니다. 작은 인과의 변화를 맛보게 하죠. 그다음부터는 현실이 균형을 맞춥니다.”

“균형?”

“누군가 늦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늦습니다. 누군가 다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 다칩니다. 죽음은 특히 무겁습니다. 죽음을 밀어내려면 같은 무게가 필요합니다.”

윤재는 형의 이름이 적힌 줄을 다시 보았다.

“형은 나 대신 죽었고.”

“예.”

“그럼 내가 형을 살리려면 내가 죽으면 되는 거야?”

서연이 즉시 말했다.

“강윤재.”

차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윤재는 웃음 비슷한 숨을 내뱉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답이 생겼기 때문일까. 형을 살리는 방법. 자신이 원래 죽었어야 했다면, 자리를 돌려놓으면 된다.

서연은 그의 표정을 보고 더 세게 팔을 붙잡았다.

“그런 생각 하지 마.”

“내가 뭘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아.”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도식도 말했다.

“선배님, 이거 그렇게 단순하게 바꾸면 또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윤재는 두 사람을 보았다. 서연과 도식.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에서 이렇게 깊게 들어올 줄 몰랐던 사람들. 자신이 죽으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형을 살리는 대신, 지금의 관계들은 사라질까.

차이준이 장부를 덮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도현 씨가 당신에게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한 이유.”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전화를 받으면, 도현 씨가 넘기지 못한 후회가 당신에게 완전히 연결됩니다. 그래서 지금 보관실이 열린 겁니다. 이제 당신은 새로운 서약자가 됐습니다.”

“서약자?”

“서약의 중심. 현실이 당신의 후회를 기준으로 재배열됩니다.”

사물함 하나가 저절로 열렸다. 안에는 낡은 학생증이 놓여 있었다. 열여섯 윤재의 학생증이었다. 사진 속 윤재는 무표정했고, 학생증 뒤에는 피 묻은 영수증이 붙어 있었다. 날짜는 2019년 8월 18일.

윤재가 손을 뻗자 서연이 막았다.

“만지지 마.”

그러나 학생증은 스스로 날아오르듯 윤재의 손에 붙었다. 순간, 잊힌 기억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형과 싸운 날. 독서실.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뛰어가던 길. 비틀거리던 트럭.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밀치는 감각. 형의 목소리.

야, 강윤재.

살아.

윤재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서연이 그를 안았다. 도식은 차이준에게 소리쳤다.

“그만해요!”

차이준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보관실 벽면의 모든 사물함에 붉은 숫자가 떠올랐다.

12:12

그리고 가장 큰 사물함, 맨 끝의 검은 문 위에 문장이 나타났다.

최종 서약 가능

대가: 서약자의 현재

윤재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그 문장을 읽었다. 형을 살릴 수 있다. 어쩌면. 그러나 대가는 이제 자신 하나의 죽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의 현재.

서연, 도식, 엄마, 지호, 그리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모든 하루.

윤재는 처음으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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