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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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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현재를 잃는 값

정오 보관실 밖으로 나오자, 캠퍼스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맑았다. 일기예보에도 비는 없었다.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뛰어다녔고, 우산을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서로 다른 계절에서 온 것처럼 뒤섞였다. 어떤 학생은 반팔 차림으로 떨었고, 어떤 학생은 겨울 코트를 입은 채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시간이 접힌 캠퍼스는 더 이상 은근히 이상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윤재는 도서관 계단에 앉아 손등을 내려다봤다. 검은 선은 팔꿈치 가까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선이 닿은 피부는 통증보다 더 낯선 감각을 냈다. 그 아래에 다른 기억들이 꿈틀거리는 느낌. 여러 명의 강윤재가 같은 몸 안에서 뒤척이는 것 같았다.

서연은 그의 옆에 앉았다.

“괜찮냐고 물으면 거짓말하겠지.”

윤재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응.”

“그럼 물어볼게. 지금 뭐 하고 싶어?”

“형을 살리고 싶어.”

서연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윤재는 대답이 늦었다.

“너희도 안 잃고 싶어.”

도식이 계단 아래에서 쓰게 웃었다.

“둘 다 하고 싶다는 게 제일 어렵죠.”

윤재는 인정했다. 예전의 그는 하나만 생각했다. 시험을 잘 보고 싶다. 도식을 구하고 싶다. 형을 살리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하나의 소원만 듣고 움직이지 않았다. 소원을 이루는 순간, 그 주변의 다른 것들이 찢어졌다.

차이준은 보관실 안에 남았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최종 서약은 한 번뿐입니다. 서약자의 현재를 대가로 내면, 가장 무거운 후회 하나를 다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가 사라진다는 건 당신이 쌓은 관계와 기억, 바뀐 세계의 모든 연결이 해체된다는 뜻입니다.”

도식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그럼 모두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차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원래라는 건 없습니다. 가장 강한 후회가 새 원본이 될 뿐입니다.”

윤재는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래라는 건 없다. 그렇다면 형을 살려도, 그것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 세계에서 서연은 윤재를 모를 수도 있고, 도식은 애초에 같은 학교에 없을 수도 있다. 엄마는 도현을 잃지 않았지만 윤재를 다른 방식으로 잃었을 수도 있다.

비가 점점 거세졌다.

서연이 말했다.

“나는 네가 형을 포기하라고 말할 권리 없어.”

윤재는 그녀를 보았다.

“대신 네가 스스로를 벌주려고 선택하는 건 말릴 거야.”

“벌주는 거 아니야.”

“정말?”

그 질문은 정직했다. 윤재는 곧장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형이 자신 대신 죽었다는 기억이 돌아온 뒤, 윤재의 마음 한구석에는 단순한 계산이 생겼다. 내가 죽었어야 했다. 그러니까 돌려놓아야 한다. 그건 사랑일까, 속죄일까. 아니면 형의 선택을 지워 버리는 또 다른 이기심일까.

도식이 우산을 하나 펼쳐 세 사람 위로 어설프게 씌웠다.

“선배님, 방법이 하나 더 있을 수도 있잖아요.”

“무슨 방법?”

“이 금기 자체를 깨뜨리는 거요. 계속 후회를 먹고 사람들한테 대가를 물린다면, 형님도 차이준 선배도 피해자잖아요. 최종 서약으로 누군가를 살리는 게 아니라, 이걸 시작한 순간을 막으면?”

윤재는 도식을 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고를 대신 맞은 것 같은 죄책감의 대상이던 후배가, 이제는 윤재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말하고 있었다.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차이준이 처음 사용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장부 첫 페이지를 봐야 해.”

“차이준은 안 보여줬어.”

“그럼 보여 달라고 해야지.”

윤재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서연다운 말이었다. 시간의 균열과 죽은 사람의 전화와 현실 붕괴 앞에서도, 그녀는 결국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자고 했다.

“안 보여주면?”

서연은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훔쳐야지.”

도식이 작게 박수를 쳤다.

“누나, 생각보다 과격하시네요.”

“너도 공범이야.”

그 짧은 농담 사이로 윤재는 숨을 돌렸다. 현재를 잃는 것이 두려워졌다는 건, 현재가 소중해졌다는 뜻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과거를 바꾸는 능력보다 현재에 남은 사람들을 믿고 싶어졌다.

세 사람은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지하 자료실 문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벽에는 낡은 게시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2016년 학교 축제 포스터가 꽂혀 있었다.

포스터 아래쪽에 작게, 누군가 검은 펜으로 적어 둔 문장이 있었다.

첫 후회는 축제의 마지막 날에 열렸다.

차이준의 첫 기록은 2016년 4월 12일이었다. 동생의 추락을 막음. 학교 축제와 날짜가 겹쳤다. 윤재는 포스터를 떼어 냈다. 뒤편 벽지 사이에서 작은 종이 조각이 떨어졌다.

그것은 낡은 사진의 일부였다.

사진 속에는 젊은 차이준과 처음 보는 여학생이 있었다. 여학생은 난간 위에 서 있었고, 차이준은 아래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사진 가장자리에는 또 다른 손이 찍혀 있었다. 손등에 검은 선이 없는, 깨끗한 손.

서연이 사진 조각을 받아 들고 말했다.

“차이준 이전에 누가 있었어.”

윤재는 포스터의 날짜를 확인했다.

2016년 4월 12일.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중앙광장 축제.

“그날로 가야겠네.”

도식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또 과거 가는 거예요?”

윤재는 손등의 검은 선을 내려다봤다. 이제 누르기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충동이 아니었다. 형을 살리기 위해 무작정 달려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서연과 도식을 보았다.

“혼자 안 갈 거야.”

서연이 눈썹을 올렸다.

“같이 갈 수 있어?”

“모르지. 근데 이 장치가 후회를 기준으로 문을 연다면, 내 후회만 쓰지 않으면 돼.”

도식이 천천히 이해했다.

“우리 셋의 후회를 겹친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이준은 혼자였고, 형도 혼자였어. 그래서 대가를 혼자 뒤집어썼어. 우리는 다르게 해보자.”

서연은 잠시 말없이 윤재를 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해. 최종 서약을 혼자 맺지 않겠다고.”

윤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약속할게.”

도식도 어색하게 손을 얹었다.

“저도요. 사실 아직 무섭긴 한데, 입학 명단에서 사라지는 건 더 싫어서요.”

그 순간, 세 사람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지직거리며 푸르스름한 노이즈를 뿜기 시작했다. 기기 액정 표면에 검붉은 얼룩 같은 핏자국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붉은 숫자가 아른거렸다.

12:12

그리고 매캐한 연기와 함께 타는 듯한 종이 냄새가 진동하며, 액정 표면을 잠식하듯 기묘한 글귀가 일렁였다.

공동 계약자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윤재는 서연과 도식을 보았다. 둘 다 겁먹은 얼굴이었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이번엔 윤재 혼자의 엄지가 아니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뜨거워진 액정 화면을 꾹 눌렀다.

도서관 벽이 종이처럼 접혔다. 빗소리가 멀어지고, 축제 음악이 그 자리를 채웠다. 솜사탕 냄새, 스피커의 잡음, 사람들의 웃음소리. 2016년 4월 12일의 중앙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광장 시계탑 아래, 손등이 깨끗한 누군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네.”

그 사람이 말했다.

“이번 윤재는 친구들을 데려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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