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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6화

12:12

12:12

6화: 죽기 하루 전의 형

과거는 먼지 냄새가 났다.

윤재가 눈을 떴을 때, 그는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방에 있었다. 벽에는 오래전에 떼어 버린 아이돌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수능특강 문제집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휴대폰은 손바닥보다 작아 보였고, 액정에는 2019년 8월 17일 12시 12분이 찍혀 있었다.

몸이 달랐다.

윤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휘청했다. 키가 조금 작고, 어깨가 가벼웠다. 손목에는 고등학생 때 차던 싸구려 시계가 있었다. 거울 속 얼굴은 열여섯의 강윤재였다. 여드름 자국, 덜 자란 턱선,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기 전의 눈.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12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그랬듯 짧았다.

방문을 열자 거실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오늘 늦게 들어와.”

윤재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도현은 현관 앞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흰 티셔츠에 검은 셔츠를 걸친 모습. 사고 당일 영정사진 속 얼굴보다 하루 젊은 얼굴. 너무 생생해서 윤재는 순간 말을 잃었다.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너 왜 그렇게 봐?”

윤재는 달려가 형의 팔을 붙잡았다.

“형.”

“왜. 돈 없어.”

그 말투까지 그대로였다. 윤재의 목이 막혔다. 울 시간이 없었다.

“내일 저녁에 밖에 나가지 마.”

도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뭔 소리야?”

“내일 6시 43분. 우리 동네 사거리. 형 사고 나.”

거실에 있던 엄마가 부엌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윤재야, 무슨 말이야?”

윤재는 형의 팔을 더 세게 잡았다.

“나 믿어. 제발. 내일은 집에 있어. 아니, 오늘부터 집에 있어. 어디 가지 마.”

도현은 윤재의 손을 떼어 냈다.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머리를 쥐어박았을 텐데, 이번엔 표정이 심각했다.

“너 또 악몽 꿨어?”

“악몽 아니야.”

“그럼 예언자야?”

“형!”

윤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엄마가 놀라 다가오려 했다. 그때 현관문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올 사람 있어?”

엄마가 물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윤재는 문틈으로 보이는 그림자를 보았다. 키가 큰 남자의 실루엣. 그의 오른손등에는 검은 선이 있었다.

차이준.

윤재는 본능적으로 현관문을 막았다.

“열지 마.”

도현이 낮게 말했다.

“비켜.”

“형, 저 사람 알아?”

“너랑 상관없어.”

그 말이 더 무서웠다. 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외장하드의 사진은 우연히 찍힌 것이 아니었다. 도현과 차이준은 만난 적이 있었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윤재의 시야 가장자리에 붉은 숫자가 깜빡였다.

08:43

남은 시간이었다.

윤재는 빠르게 말했다.

“형, 저 사람 손등에 검은 선 있지. 정오에 사라진 사람이라 불렸지. 형한테 뭘 하자고 했어? 내일 사고랑 관련 있어?”

도현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아?”

엄마가 둘을 번갈아 봤다.

“도현아?”

문밖에서 남자가 말했다.

“강도현 씨. 시간이 없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젊지도 늙지도 않았다. 윤재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았다. 처음은 공짜라고 속삭인 목소리와 비슷했다. 아니, 그보다 더 또렷한 원본 같았다.

도현은 문을 열었다.

윤재가 막으려 했지만 어린 윤재의 몸은 형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문밖에는 졸업앨범 속 남자, 차이준이 서 있었다. 그는 사진보다 훨씬 지쳐 보였다. 눈 밑은 검고, 손등의 선은 팔목을 넘어 소매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차이준은 윤재를 보자 미세하게 눈을 크게 떴다.

“너는…….”

윤재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나 알아요?”

차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도현에게 말했다.

“내일을 막으려면 오늘 결정해야 합니다.”

도현은 윤재를 뒤로 밀었다.

“밖에서 얘기해요.”

“안 돼!”

윤재는 형의 셔츠를 붙잡았다. 도현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윤재야. 방에 들어가.”

그 목소리는 윤재가 기억하는 형의 마지막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사고 당일, 형은 윤재에게 전화했다. 윤재는 독서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게임 영상을 보고 있었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재중 하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형, 내일 나한테 전화하지?”

도현의 어깨가 멈췄다.

“6시 31분에 전화해. 내가 안 받아. 그러니까 이번엔 지금 말해. 왜 전화했어?”

도현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는 윤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

“너 진짜 누구야.”

그 질문과 동시에, 윤재의 남은 시간이 3분으로 줄었다.

차이준이 한 걸음 다가왔다.

“강윤재 씨.”

윤재의 이름을, 7년 전의 차이준이 불렀다. 윤재는 온몸이 굳었다.

“당신이 여기 오면 안 됐습니다.”

“당신이 형한테 뭘 했어?”

“살리려고 했습니다.”

차이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실패했습니다. 수없이.”

도현이 낮게 말했다.

“이준 씨.”

차이준은 윤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 형의 죽음은 원인이 아닙니다. 결과입니다. 고치면 더 큰 것이 무너집니다.”

윤재는 이를 악물었다.

“다들 왜 고치지 말래? 죽는 건 형인데.”

“당신이 이미 고쳤기 때문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윤재의 시야가 뒤틀렸다. 남은 시간은 00:21. 도현이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윤재야, 내일 내가 전화하면…….”

00:12.

“절대 받지 마.”

00:08.

윤재는 형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도현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받으면 네가 시작돼.”

세상이 하얗게 찢어졌다.

윤재는 중앙도서관 지하 자료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연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고, 도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뒤로 물러나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현재 시간이 떠 있었다.

12시 24분.

윤재의 손등 검은 선은 손목을 지나 팔 안쪽으로 한 뼘이나 번져 있었다.

그리고 부재중 전화가 하나 와 있었다.

발신자: 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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