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화: 형의 마지막 하루
강도현은 윤재보다 여섯 살 많았다.
윤재가 초등학생일 때 도현은 대학생이었고, 윤재가 중학생일 때 도현은 군대에 갔다. 형은 늘 조금 먼 사람이었다. 집에 있으면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과자를 먹었고, 밖에 나가면 동네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인사했다. 윤재의 기억 속 도현은 완벽한 형이 아니었다. 잔소리가 많았고, 윤재의 게임기를 마음대로 쓰고, 빌려 간 돈을 자주 잊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쉽게 착해진다.
도현이 사고로 죽은 뒤, 집 안에서 형의 단점은 사라졌다. 엄마는 “네 형은 책임감이 강했어”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도현이는 뭐든 끝까지 했지”라고 말했다. 윤재는 가끔 속으로 반박했다. 형은 설거지를 끝까지 한 적도 없는데. 그러나 그 반박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 형의 유품 상자 깊숙한 곳에서 ‘고치지 마’고 적힌 낡은 사진 한 장이 발견됐다.
윤재는 사진을 확대했다. 도현의 옆에 선 흐릿한 남자는 얼굴 윤곽이 어딘가 익숙했다. 지금의 윤재와 닮았지만, 더 마르고 눈빛이 깊었다. 스물셋의 윤재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다. 손등의 검은 선은 선명했다. 손목을 지나 팔 안쪽까지 올라간 검은 금.
사진 배경은 낯익은 골목이었다. 윤재의 본가 근처, 오래된 문구점 앞. 도현이 죽은 사고 현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이다.
윤재는 사진의 흔적을 살폈다.
촬영 시간: 2019년 8월 17일 12:12.
형이 죽은 날은 8월 18일 오후 6시 43분이었다.
윤재는 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시가 넘었지만 서연은 두 번 만에 받았다.
“무슨 일 있어?”
그녀는 잠이 덜 깬 목소리였지만 놀라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이런 전화를 받을 줄 알았다는 듯.
“사진을 찾았어. 형이랑, 나 같은 사람이 찍힌 사진.”
“너 같은 사람?”
“미래의 나인지, 다른 사람인지 모르겠어. 손등에 선이 있어.”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혼자 있지 마. 지금 갈게.”
“이 시간에?”
“너 혼자 두면 또 뭘 누를지 모르잖아.”
윤재는 대꾸하지 못했다. 서연의 말은 너무 정확했다. 그는 이미 정오가 오면 다시 과거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형의 마지막 하루로 갈 수 있을까. 7년 전까지 정신이 이동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제까지만 가능한 걸까.
규칙을 모른다는 사실은 위험했지만, 윤재에게는 더 위험한 유혹이었다.
새벽 1시 40분, 서연은 윤재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후드집업 위에 얇은 코트를 걸친 차림이었다. 손에는 편의점 커피 두 캔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진 앞에서 오래 말이 없었다.
“이 사람.”
“나 같지?”
“응. 그런데 좀 이상해.”
“뭐가?”
“널 닮은 게 아니라, 네가 이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아.”
윤재는 무심코 자신의 손등을 봤다. 검은 선은 잠잠했다.
서연은 형의 오래된 상자 속에 들어있던 낡은 외장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해 파일들을 확인했다. 평소 민속학과 고전 설화에 심취해 온갖 옛날 전설과 주술에 관한 야사를 읽기 좋아했던 문예창작학과 전공자답게, 그녀는 텍스트에 나타난 기묘한 징후를 알아차리는 눈이 누구보다 날카로웠다.
“사진 파일의 이미지 자체는 합성이나 편집 흔적이 없어 보여.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
“뭔데?”
“이 파일의 속성에 남은 수정된 날짜와 시간 정보가 이상해. 수정일이 오늘 정오 12시 12분으로 되어 있어. 그것도 디지털 수치가 아니라, 붉은 낙인 같은 기묘한 문양들이 파일 메타데이터 옆에 핏빛으로 덧칠해져서 흐릿하게 번져 있고, 심지어 수정 시간의 초 단위가 음수(-)로 떨어져 있어.”
윤재는 숨을 멈췄다.
“말이 안 되잖아. 그 외장하드는 몇 년 동안 상자 속에서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7년 전에 멈춘 물리적인 디바이스인데, 그 안의 디지털 데이터 수정일 정보가 오늘 정오 12시 12분에 가해진 기이한 주술적 인과에 의해 강제로 갱신된 거야. 게다가 액정 화면 너머로 희미하게 타버린 한지와 고서 특유의 서늘한 향이 나.”
12시 12분.
그 숫자는 이제 우연을 가장한 협박처럼 느껴졌다.
서연은 의자를 돌려 윤재를 마주 봤다.
“윤재야. 너 지금 형을 살릴 생각이지.”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으면 당연히 하고 싶겠지. 나라도 그럴 거야. 그런데 도식이 대신 지호가 다쳤어. 시험 하나 바꾸는 데도 사람이 다쳤는데, 7년 전 죽음을 바꾸면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럼 그냥 두라고?”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다들 그렇게 말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형이 운이 나빴다고. 근데 운이 아니면?”
윤재는 사진 속 형을 가리켰다.
“저 사진이 진짜면, 누군가 형한테 경고했거나 형을 이용했거나, 아니면 내가 이미 실패한 거야. 내가 뭔지도 모르고 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는 거라고.”
서연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래도 지금은 정보가 부족해.”
“정보는 과거에 있어.”
그 말은 변명이자 진심이었다.
정오가 오기 전, 윤재와 서연은 도식에게도 사진을 보냈다. 도식은 5분 뒤 전화를 걸어 왔다.
“선배님, 저 이 사람 알아요.”
윤재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누군데?”
“정확히는 본 적 있어요. 우리 학교 중앙도서관 지하 자료실에서요. 거기 졸업앨범 옛날 거 있잖아요. 이 얼굴, 2019년 앨범에서 본 것 같아요.”
“우리 학교 학생이었다고?”
“이름은 기억 안 나요. 근데 별명이 있었어요.”
도식은 잠깐 숨을 골랐다.
“정오 선배.”
윤재와 서연은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오전 11시 30분, 세 사람은 중앙도서관 지하 자료실에서 만났다. 오래된 졸업앨범은 먼지 냄새와 함께 서가 맨 아래 칸에 꽂혀 있었다. 도식은 기억을 더듬어 2019년 문예창작학과 앨범을 꺼냈다.
페이지를 넘기던 서연의 손이 멈췄다.
사진 속 남자는 외장하드의 흐릿한 얼굴과 같았다. 이름 아래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차이준.
비고란에는 누군가 연필로 작게 낙서를 해 두었다.
12:12에 사라진 사람
그 순간 도서관 스피커에서 정오 알림음이 울렸다. 윤재의 손등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검은 선이 맥박쳤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끈적한 피가 배어 나오는 듯한 주술적 환영과 함께 화면이 일그러지며 켜졌다. 그 스며 나온 붉은 안개 속에서 글귀가 일렁였다.
인과를 고치시겠습니까?
액정 너머로 서늘한 쇠 냄새와 비릿한 핏자국이 비쳤고, 목적지가 시뻘건 진액처럼 번지며 함께 떠 있었다.
2019.08.17 12:12
형이 죽기 하루 전.
윤재는 서연이 손목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가지 마.”
그러나 윤재의 엄지는 이미 화면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