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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4화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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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

“강윤재! 정신 차려, 강윤재!”

고막을 찢는 듯한 외침과 함께 차가운 감촉이 뺨을 때렸다. 윤재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일그러진 서연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도서관 지하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곰팡이 냄새와 서늘한 냉기. 조금 전 보았던 그 거대한 서고와 검은 코트의 남자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굳게 잠긴 보관실 철문만이 윤재를 비웃듯 서 있었다.

“너……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문 앞에 서서 굳어버리더니, 불러도 대답도 없고……!”

서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공포가 서려 있었다. 윤재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 얼마나 그러고 있었어?”

“딱 12분. 시계가 12시 12분을 가리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넌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안 했어.”

12분. 과거로 돌아갔던 시간과 현실에서 사라졌던 시간이 정확히 일치했다. 윤재는 황급히 자신의 오른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아.”

단발마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손목을 지나 팔꿈치 근처까지 뱀처럼 기어 올라온 검은 낙인이, 이제는 피부 위로 불길한 박동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자라나는 기생물 같았다.

“이게 뭐야? 윤재야, 너 팔이 왜 이래?”

서연이 경악하며 윤재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윤재는 반사적으로 팔을 뺐다. 낙인이 닿은 부위가 타는 듯이 뜨거웠다.

“만지지 마. 위험해.”

“설명해. 지금 당장. 지호가 들었다는 소리, 네 팔에 새겨진 이 기괴한 선, 그리고 방금 네가 보고 온 것들까지 전부 다.”

서연의 눈빛이 다시 차갑고 예리하게 빛났다. 그녀는 더 이상 방관자로 남을 생각이 없었다. 윤재는 마른침을 삼키며 지하 복도의 벽에 몸을 기대었다.

“지하 보관실 안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어. 차이준이라고 했나.”

윤재는 자신이 본 '정오 보관실'과 그곳에 꽂혀 있던 무수한 이름의 책들, 그리고 남자의 경고를 쥐어짜듯 털어놓았다. 대가는 미정이며, 이 선이 심장에 닿으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거라는 잔인한 예언까지.

서연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윤재의 팔에 새겨진 낙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손소독제를 꺼내 자신의 손을 닦았다. 그녀가 극도의 긴장을 해소할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공동 계약.”

“뭐?”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인과야. 네가 방금 한 말이 사실이라면, 넌 지금 네 영혼을 깎아서 과거를 사고 있는 거라고.”

서연이 윤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도 같이 가. 그 보관실인지 뭔지 하는 곳에. 너 혼자 두면, 넌 분명히 선을 넘을 테니까.”


서연의 단호한 선언은 윤재에게 구원이자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누군가와 이 끔찍한 비밀을 공유한다는 안도감보다, 서연까지 이 뒤틀린 인과에 휘말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다.

“안 돼. 이건 내 문제야. 너까지 위험해질 필요 없어.”

“이미 늦었어, 강윤재. 지호가 사고 나기 직전에 들었다는 그 목소리, 그리고 네가 바꾼 현실을 목격하고 있는 나. 우리 모두 이미 그 ‘거래’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서연은 윤재의 반대를 단칼에 잘라내며 휴대폰을 꺼냈다.

“일단 지호한테 가보자. 걔가 들었다는 목소리, 더 자세히 확인해야 해. 그리고 도식이도.”

두 사람은 학교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 안에는 도식이 지호의 침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지호는 손목에 하얀 깁스를 한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오셨어요?”

도식이 일어나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윤재는 지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자신이 도식을 구하기 위해 희생시킨 또 다른 친구.

“지호야, 좀 어때?”

서연이 다정하게 물었지만, 지호의 반응은 예상외로 차가웠다.

“괜찮아요. 손목만 좀 나갔지 뭐. 근데…… 좀 이상해요.”

지호가 왼손으로 협탁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깁스 때문에 서툰 동작으로 갤러리를 연 지호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 말이에요. 이거 진짜 우리가 찍은 거 맞아요?”

사진 속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윤재, 서연, 도식, 그리고 지호. 대학 축제 때 찍은 듯 뒤편에는 화려한 조명이 번쩍였고, 네 사람은 어깨를 맞댄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윤재는 사진을 보자마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기억에 없었다. 자신은 지호와 저렇게 친근하게 사진을 찍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도…… 기억 안 나.”

도식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서연 역시 사진을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랑 지호는 어제 복도에서 처음 통성명한 사이잖아. 그런데 이 사진은…… 최소한 몇 달 전은 되어 보이는데?”

“그쵸? 저도 이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사진 속 저는 엄청 행복해 보여요. 마치 이게 ‘진짜’ 제 기억인 것처럼.”

과거를 수정하면 현재의 사건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바뀐 현재가 모순 없이 존재할 수 있도록, 세상은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까지 덧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덧칠은 불완전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억이 심어졌고, 누군가에게는 원래의 기억이 남았다.

윤재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달았다. 12:12의 힘은 단순히 시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작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바로 그들의 뒤틀린 기억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윤재의 방은 유난히 적막했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책상 위에 놓인 전공 서적들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은 이미 유리창에 금이 가듯 조금씩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윤재는 침대 밑 깊숙한 곳에서 낡은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7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 강도현의 유품이었다. 평소라면 차마 열어보지 못했을 상자였지만, 오늘 본 그 기괴한 사진과 도서관 지하의 서고는 그를 형의 흔적으로 이끌었다.

상자 안에는 형이 쓰던 일기장, 낡은 필름 카메라, 그리고 몇 장의 인화된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윤재는 떨리는 손으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

상자 가장 안쪽, 두꺼운 전공 서적 사이에 끼워져 있던 붉은 봉투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봉투 겉면에는 형의 필체로 날카롭게 적힌 글자가 있었다.

[ 정오 보관실 : 12:12 ]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형도 알고 있었다. 7년 전의 형 역시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현상을 목격했던 것이다.

윤재는 숨을 멈춘 채 봉투 속의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형 도현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지금의 윤재와 무서울 정도로 닮은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아니, 닮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의 자신, 혹은 또 다른 평행세계의 자신일지도 모르는 ‘강윤재’였다.

하지만 가장 윤재를 경악게 한 것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진 속 형의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손등. 거기에는 지금 윤재의 팔을 갉아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검은 낙인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심지어 그 선은 남자의 목덜미를 지나 얼굴까지 타고 올라와 있었다.

윤재는 사진을 뒤집었다. 빛바랜 인화지 뒷면에는 형의 다급한 필체로 단 한 문장이 휘갈겨져 있었다.

‘윤재야, 절대 고치지 마.’

고치지 말라니. 무엇을? 형의 죽음을? 아니면 이 어긋난 인과 전체를?

그 순간, 방 안의 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윤재는 자신의 팔을 감싸 쥐었다. 형의 경고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는 이미 두 번이나 과거를 고쳤고, 대가는 이미 징수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그 종이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도서관 지하가 아닌,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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