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49화: 12분 뒤의 세상
삑. 삑. 삑.
강의실 벽면에 걸린 벽시계가 12:11에서 12:12로 바뀌었다.
윤재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연필을 쥔 손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하고, 가슴 속의 검은 선들이 날뛰었을 시간. 하지만 윤재의 몸에는 그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슴팍은 고요했고, 공기는 따뜻했다.
그리고 12분이 더 흘렀다.
12:24.
정오의 제단으로 통하던 그 기적의 12분이 완전히 지나갔지만, 세상은 아무런 뒤틀림도, 시간 왜곡의 폭주도 일으키지 않았다. 윤재는 주머니 속의 낡고 멈춰버린 진짜 시계를 만져보았다. 초침은 영원히 멈추어 있었지만, 윤재의 삶은 시계 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의 굴레는 완전히 끊어졌다. 지각을 막을 수도 없고, 시험 문제를 고쳐 만점을 받을 수도 없으며, 사소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12분을 되돌려 완벽한 척 가장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윤재는 그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홀가분했다.
“아, 늦었다! 선배님, 빨리 뛰어 가야 해요! 12시 반에 학생회 회의 시작이란 말이에요!”
복도 저편에서 가방을 고쳐 매며 도식이 헐떡이며 소리쳤다. 윤재는 씩 웃으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먼저 뛰어라, 도식아!”
두 사람은 복도를 미친 듯이 달렸다. 예전 같았으면 굴레를 돌려 시간을 벌어 유유히 걸어갔겠지만, 지금은 땀을 뻘뻘 흘리며 넘어질 듯이 복도를 질주하는 과정 자체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실수를 하고, 늦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다리가 뻐근하도록 달리는 매 순간의 육체적 움직임이 그에게 진정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학생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연이 팔짱을 낀 채 그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또 지각이야? 진짜 1분 1초를 아낄 줄 모른다니까.”
서연의 타박에는 애정이 섞여 있었다. 비록 인과율이 제자리를 찾으며 어색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평범한 일상의 시간 속에서 다시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함께 걸으며 지워졌던 인연의 끈을 조금씩 다시 옭아매고 있었다. 억지 인과율의 조작이 아닌, 하루하루 쌓아가는 진짜 마음으로 말이다.
“미안해, 서연아.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윤재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하자, 서연은 붉어지는 볼을 감추며 핏하고 웃었다.
윤재는 학생회실 창문 너머로 눈부시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과거로 도망쳐 매일 똑같은 ‘정오의 12분’을 맴돌던 소년은 이제 없다. 실수를 해서 부끄러워하고, 후회 속에서 한숨을 쉬더라도, 그 모든 불완전한 찰나를 소중하게 품고 내일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청년만이 그곳에 서 있었다.
매 분 매 초가 다시없이 귀하고 소중했다. 그것은 12분의 기적보다 훨씬 더 위대한, 평범한 인간에게 허락된 진정한 시간의 축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