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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형의 묘비 앞에서
“선배… 선배님!”
희미하게 멀어져 가던 윤재의 의식 속으로 다급한 서연의 외침과 도식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무덤 같은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윤재는 현실의 하얀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곁에서는 서연과 도식이 그의 젖은 오른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기억을 되찾았음을 증명하는 뜨거운 눈물과 안도의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내가 살아 있는 거지?”
윤재가 메마른 목소리로 묻자, 도식이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장부의 연쇄가 깨지면서 인과율이 정화되었어요. 그리고 누나와 제가 선배님에 대한 인과관계의 기억을 완전히 복구해 낸 순간, 선배님의 존재의 흔적이 이 세계선에 다시 고정된 겁니다. 우리가 선배님을 기억해 냈기 때문에, 선배님은 소멸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어요.”
윤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던 기이한 째깍거림은 이제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인과율의 정상화. 장부의 힘으로 억지로 뒤틀렸던 형의 운명은 7년 전 그날의 정상적인 결과로 고정되었다. 7년 전 교통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났던 형의 자리는, 이제 현실의 어긋난 틈새에서 벗어나 원래 있어야 할 차가운 묘비 아래로 온전히 안착한 것이었다. 형은 마침내 그 가혹한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고요한 안식을 맞이했다.
며칠 후.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쓸쓸한 가랑비가 묘역 전체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윤재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형의 묘비 앞에 섰다. 그 옆에는 검은 우산을 든 서연과 도식이 묵묵히 윤재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묘비에는 단정하고 정갈하게 형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이자 형, 강도현. 이곳에 잠들다.]
윤재는 묘비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예전의 윤재라면 이 상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시간을 돌릴 방법을 찾으며 절규했을 것이다. 죽음을 부정하고 도망치는 것이 형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윤재는 가랑비에 젖어 드는 형의 이름을 어루만지며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형, 이제 미안해하지 않을게.”
윤재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다.
“형이 나에게 준 이 소중한 목숨… 매 순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갈게. 과거로 돌아가서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고, 아픔이 오면 아픈 대로 마주하면서 내일을 맞이할게. 그러니까 형도 그 어둡고 차가운 금기의 제단 속 기억은 다 잊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어.”
윤재의 가슴속을 찌르던 차가운 검은 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따뜻한 형의 사랑과 숭고한 기억만이 굳건한 마디가 되어 채워져 있었다.
비 내리는 묘비 앞, 윤재는 마침내 가슴속에 맺혀 있던 오랜 체증과 눈물을 비와 함께 흘려보내며, 평생을 옭아맸던 형의 죽음을 가슴속에 깊고 온전하게 묻었다.
그것은 긴 어제를 끝내고, 새로운 오늘을 시작하기 위한 진정한 이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