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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잃어버린 기억의 복구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상처 위에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과 같았다.
인과율이 완전히 맞춰지는 과정에서 수개월의 시간이 훌쩍 흘러 캠퍼스에는 어느덧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굴레가 멈춘 캠퍼스는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었다. 정오가 되어도 시간이 멈추지 않았고, 하늘은 맑았다. 도식은 전공 수업을 들었고, 서연은 학생회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 한구석에는 씻기지 않는 거대한 이질감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었다.
“어라…?”
주말을 맞아 자취방 서랍을 정리하던 서연의 손길이 멈추었다.
낡은 노란 우산 옆, 책상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작은 카드지갑 하나. 지갑을 열자 낡은 캠퍼스 커플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사진 속에서 서연은 활짝 웃으며 누군가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서연의 옆에 서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는 남학생의 얼굴 부분은 잉크가 쏟아진 것처럼 심하게 얼룩져 있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두근, 두근.
지갑을 쥔 서연의 심장이 다시 한번 아프게 요동쳤다.
서연은 얼룩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문질렀다. 순간,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이명과 함께 깨진 거울 조각 같은 기억의 단편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서연아, 넌 내일을 살아가야 해.”
“기억해 줘. 내가 널 사랑했던 그 평범한 오늘을….”
“윤… 재….”
서연의 입술 사이로, 자신도 모르게 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강윤재.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지워졌던 뇌 속의 신경회로가 폭발하듯 연결되며 잃어버린 인과율의 기억들이 해방되었다. 자신을 위해 괴수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고,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던 한 청년의 온전한 얼굴이 사진 위로 선명하게 겹쳐졌다.
“윤재야…!”
서연은 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같은 시각, 동아리방에서 지난 의식의 잔해와 낡은 서약의 텍스트 파일들을 정리하려던 도식의 노트북 화면에 기이한 주술적 낙인이 꿈틀거리며 떠올랐다.
- 봉인 해제: 숨겨진 경계
12_12 - 금기의 흔적 복구 중...
도식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굳어졌다. 스스로 형태를 복원해 가는 화면 속 텍스트의 글귀 한가운데, KANG YUN-JAE라는 이름과 함께 자신을 금기의 저주로부터 구하기 위해 타오르는 제단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던 당시의 주술적 흔적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윤재 선배님….”
도식은 안경을 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기억의 홍수 속에서,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소멸을 선택했던 선배의 숭고한 얼굴이 마침내 온전하게 복원되었다.
학관 뒤편 벤치에 앉아 있던 차이준 역시 자신의 품에 안긴 가죽 장부 표지(이제는 평범한 빈 종이가 된)를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기어이 기억해 내는군… 잔인한 세계 속에서도 말이야.”
그들은 마침내 기억해 냈다.
비록 강윤재라는 존재가 세계의 공식 기록에서는 삭제되었을지언정, 그들이 공유했던 그 뜨겁고 절망적이었던 시간과 사랑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문신으로 복구되어 그들의 현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