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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모든 후회의 집합
금기의 심장에 닿기 직전, 세상이 암전되었다.
윤재가 내리친 시계 파편이 심장의 결계에 닿은 순간, 파괴음 대신 질퍽하고 끈적한 소리가 이명을 뚫고 들어왔다.
금기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수조 리터의 검은 잉크가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윤재와 서연, 그리고 온 제단의 잔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윤재는 어둡고 깊은 잉크의 심연 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숨이 막히지 않았지만, 뇌리와 영혼을 파고드는 수천만 명의 아우성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 그 길로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한 번만, 단 1분만이라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부가 7년 동안, 그리고 수 세기 동안 수확해 온 인류의 온갖 후회와 탄식의 기운이 윤재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그 무거운 절망의 무게에 윤재는 정신을 잃어갔다.
잉크의 어둠 속에서 수많은 환영이 나타났다.
형이 죽지 않고 자신과 서연이 다정하게 대학을 졸업하는 세계, 부모님이 건강하게 웃고 있는 세계, 아무런 고민도 후회도 없는 완벽하게 통제된 낙원.
장부는 윤재에게 속삭였다.
‘여기 남아라. 이 후회의 바다 속에서 네가 원하는 모든 고쳐진 현재를 살아가라. 과거를 고치는 기쁨만을 누려라.’
윤재는 까무러치기 직전의 의식 속에서, 차갑게 젖어 있던 서연의 따뜻한 손길을 떠올렸다.
그리고 도식의 맑은 미소와, 자신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7년을 버틴 형 도현의 뺨에 흐르던 눈물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후회와 상실이 있었기에 비로소 반짝였던, 진짜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아니… 틀렸어.”
윤재는 잉크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후회의 심연을 가르고 울려 퍼졌다.
“후회가 없는 삶은 진짜가 아니야.”
“아픔과 상실을 겪고, 후회하며 흘리는 눈물이 있기에 우리는 더 나은 내일로 걸어갈 수 있는 거야.”
“과거에 갇혀 매일 똑같은 12분을 반복하는 건… 그저 죽은 시간 속을 기어 다니는 시체일 뿐이야!”
윤재의 선언과 함께, 그의 손바닥에서 핏빛으로 웅웅거리던 시계 파편이 눈부신 적색 태양처럼 폭발했다.
가슴 속 검은 점에 누적되어 있던 마지막 인과율의 힘이 그의 심장을 희생 삼아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로 화했다.
붉은 빛의 폭풍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어둡고 질퍽한 후회의 쓰나미를 정면으로 정화하며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눈부신 내일이 필요해!”
윤재는 소리치며 후회의 바다를 뚫고 솟구쳐 올랐다.
그의 하반신은 이미 완전히 투명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가슴팍까지 빛의 가루로 바스러지고 있었지만, 그의 오른손 끝에 쥐어진 시계 파편은 마침내 톱니바퀴의 벽을 뚫고 붉게 요동치는 금기의 심장 정중앙을 매섭게 찔렀다.
콰아아아아아앙-!
세상의 모든 후회의 목소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소멸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