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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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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도식의 희생

서연이 건넨 따뜻한 노란 우산 아래에서 윤재는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서연의 믿음은 기적처럼 도식에게도 닿았다.

서연의 눈물과 윤재가 건넨 USB 메모리 속의 텍스트 파일들을 본 도식은, 밤새 동아리방 책상 앞에 앉아 넋을 잃은 채 화면의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자신의 핏빛 낙인의 흔적, 그리고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천재적인 주문의 흔적들.

“이건… 제가 쓴 진언이 분명해요. 하지만 전 이런 걸 배운 적도, 쓴 적도 없어요.”

민도식은 안경 너머로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가에 빗물 같은 눈물이 고였다.

“제 뇌가 진언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제 손가락이… 영혼이 이 금기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어요. 선배님 말이 맞았어요. 저도 이 말도 안 되는 장부의 인과율 속에 얽혀 있던 공범이자 동료였던 겁니다.”

민도식은 키보드를 두드려 백업된 데이터의 락을 해제하고 보관실의 최종 진입 경로를 열었다.

“보관실 문이 열렸어요. 지금 당장 도서관 지하로 가야 해요!”
도식의 외침에 세 사람은 밤비를 뚫고 대도서관 지하의 폐쇄된 보일러실로 달려갔다. 굳게 잠겨 있던 두꺼운 철문을 밀쳐 열자, 어둠 속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정오 보관실의 제단이 나타났다.

그 제단에 접근하자, 피어오르는 핏빛 낙인과 장부의 최후 수호자들이 뿜어내는 기묘한 왜곡 현상은 절망적이었다. 봉인 직전의 장부는 파수꾼의 주언이 깨진 상태에서 마지막 발악으로 시스템을 통해 경계를 붕괴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오늘 밤 12시 12분에 온 세계의 인과율이 소멸되어 사라질 터였다.

“금기의 방으로 진입해야 해요. 그 ‘금기의 심장’을 부수면 모든 게 끝나지만… 장부의 복원 본능이 심장을 감싸고 있어서 접근조차 못 할 겁니다. 누군가 제단에서 장부의 인과율의 기운을 직접 받아내고, 금기의 공격을 몸으로 유인해야만 해요.”

민도식이 제단의 붉은 주술의 실타래를 자신의 손목에 감았다.

“내가 할게.”

윤재가 민도식의 손을 낚아챘다.

“안 돼, 민도식아. 넌 이미 이전 굴레에서 소멸할 뻔했어. 내가 대신할게. 넌 서연이랑 여기서 탈출해.”

민도식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윤재의 손을 조용히 떼어냈다.

“선배님, 제단을 지탱할 수 있는 건 저뿐이에요. 이 금기의 진언을 이해하고, 장부의 저주의 흐름을 우회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저 같은 ‘침입자’뿐이라고요. 기억은 잃었어도… 제 손이 그 방법을 알고 있어요.”

“도식아! 안 돼!”

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지만, 제단 주위로 결계처럼 기이한 장벽들이 솟아올랐다.

도식의 손끝부터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흐려지기 시작했다. 장부의 결계가 그를 금기 내부의 영구적인 제물로 박제해 가두려는 주술이 시작된 것이었다.

“선배님… 누나… 미안해하지 마세요.”

도식의 목소리가 주술적 메아리처럼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아요. 항상 혼자였던 아싸 신입생인 줄 알았는데, 저한테 목숨을 걸어준 멋진 선배님과 누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돼서… 참 다행이에요. 그러니까 제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마세요.”

도식은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 남은 한 손으로 제단에 다시 한번 손을 뻗어 결계를 맺었다.

“가세요! 선배님! 이제 저 금기의 심장이 완전히 폭주하기까지 12분 남았어요!”

도식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이 검은 연기로 완전히 화하여 제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오직 그가 먹다 남긴 컵라면 용기와 낡은 안경만이 남아 쓸쓸히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도식은 금기를 고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둠의 제단에 감금한 채, 영원한 금기의 망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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