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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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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외로운 싸움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세상.

윤재는 캠퍼스 한구석 벤치에 앉아 텅 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 하늘에는 미세한 그물망 같은 균열이 가끔씩 은빛으로 번쩍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현실의 인과율이 임계점에 달해 붕괴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전조증상이었다.

‘나를 잊었어도 상관없어. 이대로 두면 결국 이 세계 자체가 붕괴할 테니까.’

윤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망에 주저앉아 있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는 가슴을 누르는 차가운 검은 점의 박동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12:12의 무한한 굴레를 가능하게 하고, 이 비극을 만들어낸 장부의 금기인 ‘정오 보관실’을 현실에서 영원히 소멸시키는 것.

하지만 이전처럼 금기를 풀어내던 도식도, 그의 곁을 지키며 격려해 주던 서연도 없었다. 도서관 지하는 흔적도 없이 폐쇄되었고, 차이준은 독자적인 방법으로 장부를 차지하기 위해 윤재의 동선을 방해하며 방관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혼자 싸워야 하는 전쟁이었다.


윤재는 먼저 도서관의 정보검색실로 향했다. 학생회장의 직권을 이용해 야간 사용 권한을 얻은 뒤, 도식이 예전에 조사하고 백업해 두었던 민속학적 텍스트 파일과 자료들을 몰래 추적하기 시작했다.

도식은 기억을 잃었지만, 컴퓨터 서랍 한구석에는 장부의 금기의 잔해를 분석했던 비밀 자료가 담긴 USB 드라이브와 백업 파일들이 기이한 핏빛 낙인이 찍힌 암호화 폴더 속에 숨겨져 남아 있을 터였다.

바스락, 바스락.

노트북 모니터의 푸르스름한 빛이 윤재의 굳어버린 얼굴을 비추었다. 비밀 폴더의 암호를 알아내기 위해 도식의 예전 습관들을 떠올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도식이 흘리듯 말했던 옛 주술 자료 백업용 암호명.

딸칵.

폴더가 열렸다. 화면에는 도식이 정리해둔 정오 보관실의 상세한 방위도가 나타났다. 보관실의 가장 깊은 곳, 이 모든 이적의 원천이자 균열의 중심인 ‘금기의 심장’의 위치가 붉은 주술적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어둠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연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야간 순찰을 돌던 중 문헌 조사실의 불빛을 보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선배, 기어이 밤중에 남의 컴퓨터나 뒤적이고 다니는 도둑이 된 거예요? 당장 나가요. 경비 아저씨 부르기 전에.”

서연의 눈에 서린 멸시와 경계는 윤재의 심장에 가시처럼 박혔다. 윤재는 억지로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며 USB 드라이브와 노트북 화면을 황급히 가렸다.

“이서연. 넌 날 기억 못 하겠지만… 난 널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걸 끝내야 해.”

“무슨 헛소리야, 정말 미쳤어요? 선배가 날 왜 구해? 당장 나와요!”

서연이 경비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려 하자, 윤재는 USB 드라이브를 챙겨 창문을 열고 그대로 밤의 캠퍼스로 뛰어내렸다. 화단 위로 구르며 생긴 찰과상으로 무릎에서 피가 흘렀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다.

등 뒤에서 서연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윤재는 멈추지 않았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그의 손에는 도식이 남긴 최후의 보관실 좌표가 쥐어져 있었다.

비록 아무도 그를 지지해주지 않고, 미치광이 도둑으로 취급받을지라도, 그는 이 외롭고 참담한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잃어버린 ‘진짜 오늘’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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