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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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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대가의 정체

도서관을 빠져나와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은행나무 아래 서 있던 서연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윤재는 숨을 헐떡이며 서연에게 달려갔다.

“서연아… 서연아, 제발. 형이 이상해. 내가 알던 형이 아니야. 장부가 형의 기억을….”

윤재가 다급하게 서연의 양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서연의 반응은 이전의 걱정 섞인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차가운 표정으로 윤재의 팔을 강하게 쳐내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저기요, 학생회장 선배. 아무리 회장이라도 갑자기 이러시는 건 좀 무례한 것 같은데요.”

서연의 눈동자에는 낯선 타인을 경계하는 차가운 적대감만이 서려 있었다.

쿵.

윤재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회장이라니? 내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바뀌어버린 세계선의 새로운 기억들이 강제로 윤재의 뇌리에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이 역사 속에서 그는 도서관 지하를 헤매는 탈주자가 아니라, 학생회 예산을 관리하느라 바쁜 평범한 학과 학생회장이었다. 하지만 그 신분 변화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서연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학생회장 선배…? 서연아, 나잖아. 강윤재야. 같이 보관실에 가고, 내 팔의 검은 선을 보며 눈물 흘렸던….”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선배랑 저는 그냥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일 뿐이잖아요. 말 섞은 것도 이번 학기 들어 서너 번이 전부고요. 장부니 보관실이니 하는 건 또 뭐예요? 기분 나쁘니까 다신 아는 척하지 마세요.”

서연은 혐오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전공 서적을 품에 안고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가 버렸다.

“서연아! 이서연!”

아무리 불러도 서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윤재는 비틀거리며 학생회관 뒤편의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평소 고문서와 장부를 보던 도식을 찾아야 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과연 도식이 책상 앞에 앉아 컵라면을 먹으며 노트북 화면으로 민속학 자료 텍스트 파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도식아! 민도식!”

도식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의아한 눈으로 윤재를 보았다.

“아, 윤재 선배님? 회장님이 동아리방엔 웬일이십니까? 학생회 예산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라도…?”

도식의 말투는 너무나 예의 발랐고, 또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도식의 뇌리에 저장된 강윤재는 그저 학기 초 대면식 때 악수나 몇 번 나눈 바쁜 학생회장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도식아… 너마저 날 모르는 거야? 우리 같이 장부 내부로 들어갔잖아. 네가 금기를 해제하고, 장부의 봉인 진언을 실행하면서 네 존재가 깨질 뻔했을 때 내가 내 팔을 밀어 넣어서 널….”

도식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선배님, 요새 과로하셨습니까? 기이한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읽으신 것 같은데요. 저랑 선배님이 장부의 금기를 깨뜨리다니요. 전 그냥 얌전한 신입생이고, 선배님이랑은 학기 초에 밥 한 번 먹은 게 다예요.”

도식마저 윤재를 완전히 타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맑고 의심 없는 눈동자가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윤재는 정말로 ‘그저 몇 번 마주친 학과 선배’에 불과했다.

“말했을 텐데.”

동아리방 그늘진 구석에서 차이준이 걸어 나왔다. 그의 검은 코트는 여전히 먼지에 싸여 있었고 한쪽 눈은 여전히 칠흑 같았다.

“이것이 인과율의 법칙이자, 네가 형을 살린 대가다.”

차이준은 충격을 받아 바닥에 주저앉은 윤재를 내려다보며 잔인할 정도로 덤덤하게 말했다.

“도현이 살아 있는 이 겹쳐진 시간선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의 균형’이 필요했다.

세계는 강도현을 지키기 위해, 그를 구해내는 데 관여한 너의 흔적을 주변 인물들의 인과관계에서 깨끗이 지워버린 거다. 이 세계에서 넌 완전히 고립되었다.”

차이준은 윤재의 눈앞에 가죽 장부의 찢어진 마지막 장을 던졌다.

“그들은 더 이상 네 동료가 아니다. 네가 겪었던 모든 슬픔과 고통, 그리고 형을 구하기 위해 버텨온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이 우주에서 너 하나뿐이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는 세계.

형은 감정을 잃은 차가운 껍데기가 되었고, 가장 믿었던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는 자신을 낯선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윤재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텅 빈 벽을 향해 소리 없는 절규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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