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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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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적과의 동침

스르륵-!

아스팔트 바닥에서 피어오른 검은 잉크가 덩굴처럼 자라나 도현의 다리를 옭아맸다. 동시에 피 흘리며 누워 있던 도현의 몸이 조금씩 반투명하게 변하며 붉은 진언의 연기로 흩어지려 했다.

“형!”

윤재는 다급히 도현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의 손가락은 도현의 몸을 통과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붙잡지 못했다. 과거의 물질에 개입할 수 없는 한계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시간선의 하늘이 그릇 깨지듯 미세하게 균열을 일으키며 쩍쩍 갈라졌다. 폭우가 쏟아지던 도로 한복판에 기괴할 정도로 밝은 흰색 불빛들이 떨어졌다. 장부의 파편이자, 이 시간 굴레를 복원하려는 거대한 금기의 방어벽의 흐름이었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강윤재.”

등 뒤에서 낮고 냉소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윤재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빗방울이 그를 피해 비껴가는 듯한 기묘한 공간 속에서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차이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윤재의 눈앞에 서 있는 차이준은 7년 전 과거의 차이준이 아니었다. 그의 한쪽 눈은 현실의 차이준처럼 완전히 검은색이었고, 그의 손에는 낡은 가죽 장부의 잔해가 쥐어져 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정오의 제단이 봉인되었을 때, 나 역시 그 인과율의 반동을 직격으로 맞았다. 하지만 장부의 ‘계약의 권능’ 일부가 여전히 내게 남아 있었지. 너희 신입생 꼬맹이가 의식의 동조를 시도했을 때, 나도 그 흐름에 내 영혼의 끈을 얹었을 뿐이다.”

차이준은 쓰러진 도현과 그를 뒤덮고 있는 검은 잉크 더미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장부의 복원력은 상상 이상이다. 강도현을 현실로 돌려보내면 이 시간선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세계는 또 다른 희생자를 지정할 거다. 그리고 그 대상은 100% 확률로 너, 강윤재가 된다.”

“상관없어. 형은 나 때문에 7년 동안 갇혀 있었어. 이번엔 내가 대가를 치러도 좋아.”

윤재의 말에 차이준이 코웃음을 쳤다.

“감상적인 소리 하지 마라. 네가 사라지면, 내 오랜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다. 장부의 불완전한 폭주를 멈추고 이 지옥 같은 굴레의 속박을 영원히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결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너와 나, 그리고 강도현의 서약이 모두 필요해.”

하늘의 균열에서 붉은빛을 띠는 주언의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취하며 윤재와 도현을 향해 울부짖었다. 장부의 금기가 보낸 마지막 ‘수호자들’이었다.

“이곳은 일종의 가상 영역이다. 장부의 결계를 통제하는 건 나지만, 이 안에서 실질적인 인과율의 힘을 방출해 저것들을 막을 그릇은 네 가슴속에 남은 검은 점뿐이다.”

차이준이 가죽 장부 잔해를 치켜들며 윤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살고 싶다면, 그리고 형을 구하고 싶다면 나와 협력해라. 내가 장부의 잔해로 저 수호자들의 주술적 흐름을 왜곡시키는 동안, 너는 네 인과의 힘을 폭발시켜 저놈들의 주술적 근원을 타격해. 어설픈 주저함은 둘 다 소멸하는 지름길이다.”

원수이자 감시자였던 차이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형을 구하고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선 그의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었다.

윤재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차이준의 입꼬리가 엷게 올라갔다.

“간단하다. 내 명령에 맞춰 네 손바닥에 쥔 시계 파편의 힘을 해방해라.”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다가오는 붉은 저주의 폭풍을 마주했다. 적과의 기묘한 공조가, 7년 전 비 내리는 도로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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