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26화: 닿지 않는 손
“형!”
윤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 트럭의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지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윤재는 횡단보도 중앙에 멍하니 서 있는 형, 강도현을 향해 빗속을 뚫고 질주했다.
불과 몇 걸음. 손만 뻗으면 형의 어깨를 잡아채서 인도로 밀쳐낼 수 있는 거리였다.
윤재가 손을 뻗어 도현의 옷자락을 움켜쥐려 한 순간.
파스스.
마치 허공에 투명한 벽이라도 가로막힌 것처럼, 윤재의 손가락이 도현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손을 스쳐 지나간 것은 차가운 빗방울과 서늘한 공기뿐이었다.
도현은 윤재가 바로 옆에 서서 자신을 잡으려 분투하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도현의 시선은 먼 허공을 향해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형! 내 목소리 안 들려? 제발 옆을 봐! 피하라고!”
윤재는 도현의 눈앞에서 양손을 흔들고 그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다. 하지만 마치 환영을 대하듯 그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도현의 머리카락 한 올, 우산 끝자락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시간의 절대적인 장벽.
지금 윤재가 발을 들인 12분은 ‘과거’라는 흘러가 버린 기록을 강제로 엿보고 있을 뿐, 아직 과거의 실질적인 물리 법칙에 간섭할 수 있는 권능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즉, 윤재는 이 공간의 철저한 ‘관찰자’에 불과했다.
쿠구구구!
미끄러지는 덤프트럭의 육중한 차체가 수막현상을 일으키며 도현을 향해 사정없이 돌진해 왔다. 전조등의 강렬한 노란빛이 도현의 얼굴을 하얗게 비추었다.
“안 돼…!”
윤재는 본능적으로 도현의 몸을 껴안아 가로막으려 했다.
쾅-!
귀를 찢는 충돌음과 함께 트럭의 범퍼가 도현의 몸을 덮쳤고, 그와 동시에 윤재의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트럭은 윤재의 유령 같은 신체를 아무런 저항 없이 지나쳐 아스팔트 도로 위로 거칠게 미끄러졌다.
도현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가 빗물 고인 바닥으로 차갑게 추락했다. 붉은 피가 빗물과 섞여 도로 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아아아악! 형! 형!”
윤재는 바닥으로 기어가 쓰러진 도현을 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쓰러진 도현의 얼굴을 만질 수조차 없었다. 도현의 뺨 위를 빗물처럼 지나치는 손가락을 보며 윤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절망감에 울부짖었다.
바로 눈앞에서 형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형벌. 말을 걸 수도, 만질 수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는 잔인한 세계였다.
그때, 윤재의 가슴속 검은 점이 불타오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두근, 두근.
동시에 윤재가 쥐고 있던 깨진 시계 파편이 붉은 광채를 뿜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던 도로 위의 도현이 미세하게 눈을 떴다. 놀랍게도 도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허공에서 울부짖는 윤재의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도현의 시선이 마침내 윤재의 눈과 마주쳤다.
말을 걸 수도 없었고 만질 수도 없었지만, 도현은 윤재를 ‘보고’ 있었다. 도현의 입술이 희미하게 달싹였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윤재는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윤재야….’
형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시간의 벽을 넘어, 이 잔인한 굴레의 절망 속에서 두 형제의 시선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