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12:12 (열두 시 십이 분)25화

12:12

12:12

25화: 7년 전 그날

삐------.

고요한 병실 안, 규칙적이고 건조한 기계음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윤재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소독약 냄새와 하얀 천장이 그가 현실로 돌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스러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윤재야! 정신이 들어?”

침대 곁에서 밤을 새운 듯 초췌한 얼굴의 서연이 윤재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서 있었다. 윤재는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속삭였다.

“도식이는… 형은…?”

“도식이는 무사해. 장부의 주술적 흔적이 사라지면서 도식이의 인과율도 제자리로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 중이야. 그리고 도현 오빠는….”

서연이 말을 흐리며 옆 침대를 가리켰다. 커튼 너머로 산소호흡기를 낀 채 누워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윤재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 전체를 감싸고 있던 검은 선들은 기적처럼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가슴 정중앙, 심장이 박동하는 그 바로 위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 자국처럼 검고 작은 점 하나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걷었다.

거기 강도현이 누워 있었다. 7년 동안 정오 보관실의 붉은 관 속에서 늙지 않은 채, 사고 당시 스물둘의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형. 하지만 형의 뺨은 온기 없이 차가웠고, 감긴 눈꺼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뇌파는 정상인데, 의식이 전혀 돌아오지 않는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도식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도식의 손등 역시 깨끗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와 자책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보관실의 금기는 분명히 봉인됐잖아.”

윤재의 물음에 도식이 형의 유품에서 챙겨온 낡은 노트북을 열며 다가왔다.

“금기는 멈췄어요. 하지만 봉인 직전에 보관실이 붕괴하면서, 형님이 가지고 있던 파수꾼의 권능과 정신의 끈이 비정상적으로 끊겨버린 거예요. 쉽게 말하면, 육체는 현실로 소환됐는데 정신은 7년 전 보관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바로 그 ‘굴레의 시발점’에 갇혀버린 겁니다.”

“굴레의 시발점…?”

“형님이 처음으로 시간을 돌렸던 날. 즉, 7년 전 그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의 12분요.”

도식은 노트북 화면에 복구된 텍스트 파일을 띄워 윤재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정오 보관실의 잔해에서 추출해 낸 불완전한 핏빛 주언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장부의 핵심 흔적은 소멸했지만, 선배님 가슴에 남은 그 검은 점… 그리고 우리가 가져온 깨진 시계 파편에 미량의 인과율의 힘이 남아 있어요. 이걸 이용해 형님이 갇혀 있는 시간선으로 ‘마지막 12분’ 동안 그 시간으로 들어설 수 있어요.”

서연이 윤재의 어깨를 짚었다.

“하지만 윤재야, 이건 정오의 제단이 없는 상태에서 맨몸으로 시간의 균열에 뛰어드는 거야. 만약 12분 안에 도현 오빠를 데리고 나오지 못하면… 너도 영원히 그 시간 속에 갇히거나 소멸할 수도 있어.”

위험은 굳이 설명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재는 망설이지 않았다. 형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7년 동안 그 어두운 제단의 제물이 되어 스스로를 가두었다. 이제는 자신이 형을 구하러 갈 차례였다.

“도식아, 준비해 줘.”

윤재는 주머니에서 깨진 12:12 시계 파편을 꺼내 쥐었다.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신기하게도 피가 유리 파편에 닿자, 멈춰 있던 초침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도식은 침통하지만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각 12시 12분에 의식의 동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선의 불안정성 때문에 정확히 12분 뒤에는 무조건 경계가 닫힙니다. 그 전에 형님의 의식을 찾아 현실로 연결되는 ‘통로’로 끌고 나오셔야 해요.”

시계 바늘이 정오를 향해 달려갔다.

12시 11분.

윤재는 침대에 누워 있는 도현의 차가운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의 상처를 통해 형의 메마른 피부로 붉은 피가 스며들었다.

가슴 위의 검은 점이 마치 심장박동처럼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12시 12분.

“의식 동조 시작합니다!”

도식의 외침과 함께, 병실의 하얀 형광등이 미친 듯이 깜박였다. 공간이 왜곡되며 사방에서 요란한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스르륵, 윤재의 시야가 흑백으로 바래가며 육체의 감각이 멀어졌다. 차가운 빗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윤재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며 생각했다.

기다려, 형. 이번엔 내가 갈게.

폭우가 쏟아지는 아스팔트 바닥의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눈을 뜨자, 7년 전 그 비 내리던 차가운 도로 한복판에 자신이 서 있었다.

저 멀리 헤드라이트를 켠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지며 굉음을 내고 있었고, 그 앞에는 우산을 쓴 채 횡단보도에 서 있는 젊은 날의 강도현이 보였다.

마지막 12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