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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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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잠식

“도식아! 정신 차려!”

윤재의 외침이 무색하게, 도식의 몸은 발끝부터 붉은 주언의 연기로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도식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여전히 주술을 풀려는 듯 손가락을 휘저었다.

장부의 심장이 내뿜는 붉은 빛이 도식을 집어삼키려 했다. 도식은 이 금기를 분석하려다 역으로 금기의 ‘침입자’로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안 돼… 이대로 두면 도식이가 정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돼버려!”

서연이 파이프를 타고 내려와 도식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그녀의 손은 허무하게 도식의 몸을 통과했다. 그는 이미 물리적인 실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윤재는 비석을 내려다보았다. 형이 남긴 봉인의 서약이 실행되기 직전, 장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도식을 먼저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대신 들어갈게.”

윤재의 말에 서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무슨 소리야!”

“도식이가 소멸되는 건 금기의 역류를 감당하지 못해서야. 이 장부의 인과율을 받아낼 그릇이 부족한 거라고. 내가 공동 계약자로 서약되어 있으니까, 내가 그 역류를 대신 받으면 도식이는 풀려날 거야.”

윤재는 주저 없이 자신의 오른팔을 의식의 심장에 서린 검은 실타래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악!”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수만 명의 후회와 탄식, 그리고 차가운 죽은 자들의 원념들이 한꺼번에 혈관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팔뚝에 있던 검은 선들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어깨를 넘어 쇄골까지 뻗어 나갔다.

심장 근처까지 도달한 검은 잉크가 윤재의 폐를 압박했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도식의 몸을 갉아먹던 붉은 주언의 연기가 멈췄다. 잉크가 번지듯 흐려져 가던 도식의 형체가 다시 단단하게 굳어졌다.

“선배님…?”

도식이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의 팔을 만져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들어 윤재를 보았다.

“안 돼요! 선배님 심장까지 가면 끝장이에요! 장부가 선배님의 존재를 영구적으로 ‘후회’의 그릇으로 묶어버릴 거라고요!”

윤재는 이를 악물었다. 잇새로 검은 잉크가 섞인 침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어서… 어서 종료해!”

도식은 눈물을 닦으며 다시 제단 앞으로 달려갔다.

“금기 해제… 인과의 맥을 짚었습니다! 형님이 남긴 마지막 서약을 집행합니다!”

도식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 순간, 캡슐 속에 잠들어 있던 도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현의 정신이 금기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다시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장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동굴 전체가 거대한 심장박동처럼 요동쳤고, 천장에서 검은 잉크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잠식 속도가 너무 빨라요!”

서연이 비명을 질렀다. 윤재의 목덜미까지 검은 선이 올라와 있었다. 그의 눈동자 중 하나가 차이준처럼 완전히 검게 변해버렸다.

윤재의 의식 속에서 수천 개의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형을 잃지 않은 세계, 부모님이 웃고 있는 세계, 서연과 평범하게 연애하는 세계….
장부는 윤재에게 끊임없이 유혹의 장을 넘겨주며 그를 이 안락한 지옥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여기 남아라, 윤재야. 그럼 네가 원하는 모든 현재를 줄게.’

장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윤재는 멀어져 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주머니 속의 깨진 시계 파편을 손바닥으로 꽉 쥐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며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왔다. 손을 타고 흐르는 선혈이 마침내 심장으로 향하던 검은 선의 경로를 강제로 덮어쓰며 인과의 흐름을 끊어놓았다.

“싫어… 가짜는 필요 없어.”

윤재의 외침과 함께 도식이 비석에 혈인을 찍었다.

동굴 전체의 불이 꺼졌다.
모든 톱니바퀴가 멈췄고, 흐르던 잉크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정적 속에서 캡슐의 문이 열렸다.
7년간 잠들어 있던 강도현의 몸이 윤재의 품 위로 쓰러졌다.

“형….”

윤재는 형을 안은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온몸을 덮었던 검은 선들이 서서히 흐려졌지만, 심장 바로 위에는 여전히 씻기지 않는 작은 점 하나가 남았다.

그것은 이 거대한 비극이 남긴 흉터이자,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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