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12:12 (열두 시 십이 분)22화

12:12

12:12

22화: 차이준의 과거

붉은 빛의 틈새를 통과하자,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기괴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곳은 2016년의 캠퍼스 옥상이었다. 정오의 뜨거운 햇살이 일렁이며 검붉은 노을빛처럼 사방으로 흩어졌고, 기괴한 냉기를 품은 저녁 바람 같은 공기가 뺨을 스쳤다. 하지만 발밑의 콘크리트는 잉크처럼 출렁이고 있었고, 난간 너머의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여기가… 금기의 심장인가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여긴 내 기억의 마지막 장이야.”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남자가 대답했다. 차이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늘한 파수꾼이 아닌, 22살의 앳된 차이준이었다. 그의 눈 앞에는 한 여학생이 난간 위에 서 있었다. 선아였다.

“이준아,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용감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선아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젊은 차이준은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나비처럼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세상이 정지했다.

“그때였어.”

현재의 목소리를 지닌 차이준이 윤재 일행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떨어지던 12시 12분. 내 절망이 너무나 깊어서, 세상의 시간이 잠시 찢어졌지. 그리고 그 틈새로 검은 장부 한 권이 떨어졌어.”

차이준은 허공에 나타난 검은 장부를 응시했다.

“장부는 내게 제안했지. 그녀를 살릴 수 있는 12분을 주겠다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계약했어. 하지만 대가가 필요했지. 그 대가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이었어.”

서연이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당신이 아무도 모르는 도서관 지하에 숨어 지냈던 거군요.”

“그래. 하지만 선아는 살아났어. 다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도 나는 사라졌지. 나는 그녀의 곁을 맴돌며 매일 12시 12분마다 그녀의 불행을 대신 막아줬어. 그러다 도현이를 만난 거야.”

차이준은 옥상 구석에 서 있는 고등학생 강도현을 가리켰다. 도현은 차이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도현이는 우연히 내 장부를 주웠고, 내가 누군지 알아봤어. ‘형, 왜 혼자 여기서 울고 있어요?’라고 묻더군. 우리는 친구가 됐고, 그는 내 고통을 나누겠다고 했어. 그는 천재였지. 이 장부가 단순히 마법이 아니라, 인과율을 속박하는 거대한 금기라는 걸 가장 먼저 깨달았어.”

차이준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하지만 도현이는 너무 소중한 것을 지키려 했어. 내 장부의 인과를 수정하려 파헤치던 중, 인과율의 역류 현상으로 동생인 네가 7년 전 트럭 사고로 죽을 위기에 직면했지. 도현이는 너를 살려내는 대가로 트럭 사고를 자신이 대신 짊어지는 최종 계약을 수락했어. 그 결과가 7년 전의 그 비극이야. 그는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 장부의 중심인 금기의 심장에 갇혀버린 거다.”

윤재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형은 차이준을 구하려다 금기에 삼켜진 것이었다.

“이제 장부는 더 큰 제물의 심장을 원해. 도현이의 낡은 심장 대신, 너희 셋의 신선한 현재를.”

젊은 차이준의 손이 선아의 옷자락에 닿으려는 찰나, 옥상의 풍경이 거칠게 흔들리며 무너져 내렸다.

“기억의 상영시간이 끝났군. 장부의 본체가 우리를 부르고 있어.”

차이준의 몸이 다시 검은 연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윤재야, 도현이를 만나면 전해줘.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세상은 다시 잉크의 소용돌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