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12:12 (열두 시 십이 분)20화

12:12

12:12

20화: 사라진 정오

거울 파편들이 소용돌이치며 시야를 가렸다. 깨진 유리 조각마다 비친 수천 개의 현실이 비명을 지르듯 번쩍였고, 윤재는 서연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게 무슨 일이야, 차이준!”

윤재의 외침에 차이준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시계의 바늘은 오전 11시 59분에서 멈춘 채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장부가 너희의 평화를 거부하고 있어.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이 폭주하기 시작한 거다.”

그 순간, 거울의 방 전체가 거대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붕괴했다. 윤재와 서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다시 캠퍼스 광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알던 캠퍼스가 아니었다.

하늘은 짙은 잿빛이었고, 태양은 정수리 바로 위에서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무엇보다 소리가 없었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던 학생들의 웅성거림도 모두 지워진 침묵의 세계였다.

윤재는 본능적으로 손목을 확인했다. 시계는 12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 12분이야. 정오가 오면… 다시 굴레가 열리겠지.”

윤재는 그 12분 동안 장부의 제물의 심장으로 들어가 도식의 잠식을 멈추고 싶었다. 서연도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12시 11분 50초.
12시 11분 55초.

두 사람은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평소라면 귓가를 때려야 할 거대한 시계탑의 종소리, 그리고 세상이 멈추는 그 특유의 정전기 같은 감각을.

하지만 12시 12분이 되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태양도 그대로였고, 잿빛 하늘의 구름 한 점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굴레의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왜… 왜 안 열려?”

윤재가 당황하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12시 12분 12초를 지나 13초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미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튕겨 나갔거나, 적어도 세상이 정지했어야 했다.

차이준이 비틀거리며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등에 있던 검은 선들이 이제는 실핏줄처럼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정오가 사라졌어.”

차이준의 목소리엔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장부를 공유하면서 인과율의 축이 뒤틀린 거야. 이제 12:12는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야. 장부가 스스로 문을 닫고, 우리를 이 ‘버려진 시간’ 속에 가둬버린 거다.”

서연이 시계탑을 올려다보았다. 시계탑의 바늘은 12시 12분에서 멈춘 채, 마치 누군가 뒤에서 붙잡고 있는 듯 기괴하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 다시는 과거로 갈 수 없다는 거야? 도식이를 구할 방법도 없는 거고?”

차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법은 하나 더 있어. 하지만 그건 ‘회귀’가 아니야. ‘침투’지.”

그는 광장 한복판, 잉크 웅덩이가 고여 있는 바닥을 가리켰다.

“장부가 문을 닫았다는 건, 내부의 기록들이 응고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정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장부의 잉크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해. 그곳엔 우리가 바꾼 수많은 실패한 현재들이 늪처럼 쌓여 있을 거다.”

윤재는 잉크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검은 액체 속에서 도식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도식뿐만이 아니었다. 형 도현의 목소리, 선아의 울음소리, 그리고 지워진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탄식이 그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가자.”

윤재가 먼저 잉크 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잉크가 발목을 감싸는 순간, 그의 몸이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서연아, 무서우면 남겨져도 돼. 이건 내가 시작한 일이니까.”

서연은 대답 대신 윤재의 손을 꽉 잡고 함께 웅덩이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혼자 안 간다고 했잖아. 우리 공범이라며.”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잉크 속으로 잠겨 들었다.

세상이 암전되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째깍, 째깍.

그것은 시계 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잉크에 젖은 펜으로 장부의 다음 장을 거칠게 써 내려가는 소리였다.

정오는 그렇게 소멸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리는 주권자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헤집어 놓은 무덤 같은 기억의 소용돌이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침입자일 뿐이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