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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열두 시 십이 분)17화

12:12

12:12

17화: 비틀린 캠퍼스

시계가 박살 나며 뿜어져 나온 빛은 단순한 광채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록되지 말았어야 할 시간을 지우는 지우개였고, 억지로 봉합된 현실을 뜯어내는 칼날이었다.

원형 도서관의 천장이 거울처럼 깨져 내렸다. 파편 너머로 보인 것은 밤하늘도, 지하의 흙벽도 아니었다.

그것은 밝은 대낮의 캠퍼스 풍경이었다. 도서관 지하와 지상의 연못, 학생회관의 복도와 2016년의 축제 무대가 입체파 회화처럼 기괴하게 뒤섞여 쏟아져 들어왔다.

“으아악!”

도식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가 딛고 있던 대리석 바닥이 순식간에 2016년의 잔디밭으로 변했다가, 다시 2026년의 아스팔트로 바뀌기를 반복했다.

“윤재야, 정신 차려!”

서연이 윤재의 팔을 꽉 잡았다. 윤재는 깨진 시계 파편을 손에 쥔 채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았다.

잿빛 눈의 윤재는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지만, 그가 남긴 잉크의 잔해들이 캠퍼스 곳곳으로 스며들어 현실의 사물들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차이준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완전히 검게 물들어 있었다.

“보관실이…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어. 도현이가 막고 있던 둑이 무너진 거야.”

그의 말대로였다. 깨진 모래시계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모래가 아니라, 형 강도현의 파편화된 기억들이었다.

그 기억들이 현실과 충돌할 때마다 캠퍼스의 물리 법칙이 붕괴했다.

나무들이 거꾸로 자라 하늘을 찌르고, 시계탑의 종소리가 비명이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갑자기 나타난 2016년의 축제 인파와 겹쳐져 기괴한 잔상을 남기며 비명을 질렀다.

“형!”

윤재는 갈라지는 지면을 가로질러 형이 있던 모래시계의 잔해로 달려갔다. 그곳엔 형이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서 형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윤재야, 아직 늦지 않았어. 기록을 고정해. 네가 믿는 현재로.’

“어떻게? 시계는 깨졌는데!”

그때, 윤재의 손등에 남은 숫자가 미친 듯이 점멸했다.

00:12

남은 시간 12초. 굴레의 기점이자 끝인 숫자가 운명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윤재 선배! 저기 보세요!”

도식이 가리킨 곳은 시계탑이었다. 캠퍼스의 모든 시공간이 뒤틀리는 와중에도, 시계탑만은 굳건히 서 있었다.

하지만 시계탑의 바늘은 제멋대로 회전하며 현실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저기가 금기의 심장이야.”

차이준이 각혈하며 말했다.

“저 시계탑의 바늘을 멈춰야 해. 12시 12분에. 그래야 붕괴가 멈추고 현실이 고정돼. 하지만 그러려면 누군가 저 안으로 들어가서 태엽이 되어야 해. 도현이가 그랬던 것처럼.”

서연이 차이준의 멱살을 잡았다.

“또 희생이야? 그 방법밖에 없어?”

차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몸도 이미 잉크로 변해 하반신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윤재는 깨진 시계 파편을 주머니에 넣고 시계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틀린 캠퍼스는 지뢰밭과 같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수년의 시간이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윤재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가, 늙어버린 자신의 환영이 비치기도 했다.

00:05

시계탑 입구에 도달했을 때, 잉크 괴물들이 윤재를 가로막았다.

그것들은 지워진 사람들의 원념이 뭉쳐진 것이었다.

“비켜!”

윤재가 몸을 날리려 할 때, 옆에서 누군가 괴물들을 밀쳐냈다.

서연과 도식이었다.

“가, 윤재야! 여긴 우리가 맡을게!”

서연의 손등에도, 도식의 손등에도 검은 선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공동 계약자들.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를 대가로 지불하며 윤재의 길을 열고 있었다.

“약속했잖아, 혼자 안 누르겠다고!”

도식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윤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계탑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 도달하자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빛으로 된 장부가 공중에 떠 있었다.

윤재는 장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00:01

손가락 끝이 장부에 닿는 순간, 전 세계의 소음이 사라졌다.

정적 속에서 윤재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누군가의 온기를 느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이었다.

“도와줘, 형.”

윤재는 형의 손과 자신의 손을 겹쳐 장부를 덮었다.

00:00

세상이 멈췄다.

비틀린 캠퍼스도, 잉크 괴물들도, 무너진 하늘도 모두 정지된 순간 속에 갇혔다.

그리고 윤재의 눈앞에, 단 한 문장의 질문이 떠올랐다.

어떤 현재를 명부에 남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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