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13화: 추격
07:12
숫자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07:11로 줄어들었다.
윤재는 자신의 손등을 문질러 보았다. 피부 속에 불로 지진 낙인이 박힌 것처럼 붉은 글씨가 명확하게 빛나고 있었다.
2016년의 축제 한복판에서 보낸 4분 48초. 그리고 남은 시간 7분 12초.
능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실은 여전히 12시 12분이라는 멈춰진 시간 안에 갇혀 있었다.
“어디까지 봤지?”
머리 위에서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세 사람은 동시에 굳어버렸다.
도서관 입구의 대리석 기둥 그림자 속에서 현재의 차이준이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마치 투명한 유리막에 부딪히는 것처럼 허공에서 튕겨 나갔다. 이 비틀린 공간의 파수꾼다운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차이준의 시선이 윤재의 손등에 머물렀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비틀렸다.
“공동 계약이라. 선아가 가르쳐 줬나 보군. 내 장부의 인과율을 셋이서 나눠 짊어지면서까지 첫 장을 보러 가다니.”
서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당신이 시작한 게 아니었어! 강도현 선배가, 윤재 형이 당신 장부의 대가로 희생된 거잖아. 당신은 그걸 알고도 윤재에게 똑같은 짓을 시키려고 했고!”
차이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희생? 강도현은 희생된 게 아니야. 스스로 그 자리를 선택한 거지.”
차이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도서관 앞을 지나가던 이름 모를 학생들의 형체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구멍이 뚫린 존재들. 그것들은 차이준의 ‘후회’가 만들어낸 파수꾼들이었다.
“도현이가 훔쳐 간 내 시간을 돌려받기 전까진, 너희 중 아무도 현재로 돌아가지 못해.”
차이준의 선고와 함께 검은 형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윤재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뛰어!”
윤재가 도식의 팔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세 사람은 젖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학생회관 쪽으로 내달렸다.
빗물에 젖은 운동화가 미끄러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그림자 괴물들이 네 발로 짐승처럼 바닥을 기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선배님! 저것들 뭡니까! 좀비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도식이 비명을 지르며 뛰었다.
“저건 차이준의 죄책감 같은 거야! 잡히면 장부 안에 갇혀 영원히 후회만 씹어먹게 될지도 몰라!”
학생회관의 회전문이 보였다. 평소라면 천천히 밀고 들어가야 할 문이었지만, 서연이 옆에 놓인 비상용 철문을 발로 차 열어젖혔다.
세 사람이 건물 안으로 굴러 들어오자마자 서연이 철문을 쾅 닫고 등을 대고 막아섰다.
쾅! 쾅! 쾅!
문 반대편에서 무언가 맹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철문이 찌그러지며 기괴한 손자국이 남았다.
윤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등을 확인했다.
05:45
“5분 45초 남았어. 이 시간이 0이 될 때까지 도망쳐야 해.”
서연이 문에 등을 기댄 채 물었다.
“0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12분이 다 지나가면?”
“능력이 끝나. 다시 2026년의 원래 시간선인 12시 24분으로 강제 복귀될 거야. 그럼 차이준도 우리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 이 공간은 그의 통제하에 있지만, 원래의 현실은 아니니까.”
“그렇다는 건, 저 괴물들이 5분만 버티면 사라진다는 뜻이네요!”
도식이 안경을 고쳐 쓰며 희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곧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건물 안쪽 복도 끝에서, 학생회관의 벽면이 녹아내리듯 허물어지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이 검은 잉크로 변해 바닥을 적셨고, 그 잉크 웅덩이 속에서 차이준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공간의 물리적 거리는 내게 무의미해, 윤재야.”
차이준이 손을 뻗자, 윤재의 몸이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랐다.
숨이 막혀왔다.
“너는 도현이의 동생이니까 특별히 대우해 주려 했어. 하지만 금기를 깨뜨린 건 너다. 너희 셋의 시간을 찢어서 도현이가 낸 빚을 갚아 줘야겠어.”
서연이 주변에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어 차이준을 향해 던졌지만, 소화기는 그의 몸을 관통해 벽에 부딪혔다.
물리적인 타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윤재는 허공에서 발버둥 치며 손등의 숫자를 보았다.
03:20
점점 시야가 흐려지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차이준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그때, 윤재의 머릿속에 형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이 장부의 첫 장에 내 이름이 있는 건… 내가 이 장부의 첫 번째 대가였기 때문이야.’
윤재는 억눌린 목소리로 피를 토하듯 외쳤다.
“차이준! 형이… 켁… 형이 스스로 대가를 치른 거라면… 장부의 소유권 절반은… 형한테 있는 거잖아!”
차이준의 손짓이 멈칫했다.
윤재의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윤재는 기침을 하며 바닥을 기어 차이준을 올려다보았다.
“장부의 금기를 만든 게 당신이라면, 그 속박을 유지하는 힘은 형의 목숨에서 나오는 거겠지. 그러니까 당신 마음대로 우리를 죽일 수 없어. 형이, 첫 번째 대가인 강도현이 그걸 원하지 않으니까!”
마치 윤재의 말을 증명하듯, 손등의 붉은 숫자가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차이준의 검은 잉크를 찢고 건물 복도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차이준이 눈을 가리며 뒤로 물러섰고, 잉크로 변했던 벽면이 다시 콘크리트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01:15
“서연아, 도식아! 일어서!”
윤재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빛이 만들어낸 틈새로 복도 끝의 출구가 보였다.
세 사람은 다시 한번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00:10
00:09
뒤에서 차이준의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출구 문을 향해 몸을 던지는 순간, 시야가 새하얗게 점멸했다.
거대한 종소리가 세상의 끝을 알리듯 고막을 때렸다.
댕—
00:00
그리고, 차가운 빗방울이 윤재의 뺨에 닿았다.
비릿한 흙냄새,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우산을 쓴 사람들의 웅성거림.
정상적인 속도로 흐르는 현실.
윤재가 눈을 떴을 때, 그의 손등은 깨끗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2:24
그들은 무사히 현재로 생환했다. 하지만 안도할 틈은 없었다.
도식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창백하게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이거 보세요. 제 연락처 목록에서… 저희 어머니 번호가 사라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