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

6화: 10층까지는 산책이지
붉은 이정표는 숲 안쪽으로 이어졌다.
강현우는 그 빛을 따라 걸었다. 품 안에는 임시 예외 통행증이 대충 꽂혀 있었고 손에는 박하린이 준 추가 식권이 접혀 있었다. 통행증보다 식권 쪽이 더 반듯했다.
이성진은 뒤에서 거의 뛰다시피 따라왔다.
"강현우 님. 3층 문 앞에서는 관리국 재심사가 있습니다."
"아까 들었어."
"철왕길드 검문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들었는데."
"류태건 지부장이 그냥 물러났을 리가 없어서요."
현우는 숲길 끝을 보았다.
나무 사이에 붉은 빛이 모여 있었다. 이정표의 끝이었다. 낮은 석문 하나가 그곳에 서 있었고 문 앞에는 철왕길드 인장을 단 도전자 다섯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 뒤에는 관리국 심사관 둘이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한도윤의 투영창도 흐릿하게 떠 있었다.
"빠르네."
이성진이 숨을 삼켰다.
"저분들 최소 7층 이상입니다."
"그럼 위층 가는 길은 알겠네."
철왕길드 검문조장이 앞으로 나왔다. 턱에는 짧은 검은 수염이 있었고 손에는 문양이 박힌 장봉을 들고 있었다.
"강현우. 상위 길드망 기록 확인했다. 지부장을 공격한 비등록 도전자는 검문 대상이다."
"공격한 적 없는데."
"기록에는 제압으로 남았다."
"혼자 넘어진 것도 제압으로 치나."
검문조장의 눈매가 굳었다. 장봉 끝이 바닥을 찍었다. 석문 앞 바닥에 검은 선들이 떠올랐다.
[길드 검문 문양 작동]
[비등록 도전자 임시 정지]
[통행 권한 확인 전 이동 제한]
한도윤의 투영창이 바로 끼어들었다.
"철왕길드 검문조. 관리국 재심사 대상입니다. 현장 구속은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길드 지부장 위해 가능성이 있는 대상입니다. 통행 전에 신원 보증을 요구합니다."
현우는 바닥의 선을 내려다봤다.
복잡해 보였지만 본질은 문고리였다. 들어오는 사람을 세우고 안쪽에서 확인한 뒤 여는 구조. 1층 목책문에 달린 고블린식 나무 걸쇠보다 장식이 많을 뿐이었다.
현우는 발끝으로 선 하나를 밀었다.
딱.
석문 앞의 검은 문양이 반으로 접혔다. 장봉 끝에서 흘러나오던 마력은 자기 주인을 잃고 바닥으로 꺼졌다.
[검문 문양 작동 실패]
[대상자의 통행 판정 우선]
검문조장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무슨 짓을..."
"문 열어."
현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밥 먹고 기분 좋을 때 말로 해."
한도윤은 기록판을 빠르게 넘겼다.
"강현우 씨. 절차를 줄이겠습니다. 3층부터는 각 층마다 관문 조건이 있습니다. 보통 신입은 며칠씩 걸립니다. 무리하게 단독 등반하면 기록 관리가 어렵습니다."
"위로 가면 되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조건이 문이면 열면 되고 몹이면 잡으면 되고 길이면 걸으면 되겠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심사관 하나가 석문 중앙에 손을 올렸다. 문 위에 흰 문장이 떠올랐다.
[3층 입장 심사]
[대상자: 강현우]
[측정 불가 신입]
[관리국 재심사 필요]
현우는 심사관 옆으로 다가갔다.
"오래 걸려?"
"최소 삼십 분은 필요합니다."
현우가 문에 손을 댔다.
석문 안쪽에서 오래된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1층 보스방 문이 루프가 끝날 때마다 열리던 감각과 비슷했다. 조건을 확인하는 선이 손바닥 밑에서 움직였다.
현우는 그 선을 조금 당겼다.
문이 열렸다.
[3층 입장 조건 확인]
[오류]
[상위 조건 자동 충족]
심사관의 입이 벌어졌다.
이성진은 반사적으로 따라가려다 멈췄다. 현우가 돌아봤다.
"너는 안 와?"
"가고 싶습니다."
이성진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런데 제가 지금 따라가면 발목만 잡습니다."
"그럼 밥집 위치나 알아둬."
"예?"
"다음에 내려오면 물어볼 거니까."
이성진의 얼굴이 이상하게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알아두겠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의 3층은 돌길이었다.
절벽 사이에 둥근 바위들이 박혀 있었고 바위마다 발판 문양이 빛났다. 도전자 셋이 바위 앞에서 순서를 외우고 있었다.
"왼쪽 둘. 오른쪽 하나. 가운데는 밟으면 회전."
"제한 시간 전에 건너야 해."
현우는 그들 옆을 지나갔다.
"잠깐! 순서 틀리면 떨어집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현우는 첫 발판을 밟았다. 바위가 회전하려 했다. 그는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발판 아래 마력 결을 눌렀다.
회전이 멈췄다.
그는 두 번째 바위도 밟았다. 세 번째도 밟았다. 돌길 전체가 그의 걸음에 맞춰 조용해졌다. 사람을 굴려 떨어뜨려야 할 장치가 밟힌 자리마다 대기 상태로 접혔다.
[3층 회전 바위 길 통과]
[소요 시간 산정 불가]
[발판 장치 비정상 정지]
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길이 너무 느리네."
4층은 숲이었다.
2층 숲보다 어둡고 잎사귀마다 독침이 달려 있었다. 넝쿨은 숨을 쉬듯 움직였다. 입구에 있던 도전자들이 손목과 목덜미에 해독제를 바르고 있었다.
"침 맞으면 열 걸음도 못 갑니다."
"바람 방향 보고 지나가야 돼요."
현우는 넝쿨을 보았다.
첫 움직임. 두 번째 떨림. 독침이 튀어나오는 각도.
1층 고블린 투창이 숨어 있다가 던지는 버릇과 같았다.
현우는 걸었다.
쉬익.
독침이 날았다. 현우는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독침이 머리카락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두 번째 독침이 옆구리를 노렸고 현우의 녹슨 단검이 그보다 먼저 넝쿨의 마력 줄기를 잘랐다.
숲이 길을 열었다.
[4층 독침 넝쿨 숲 통과]
[피격 횟수 0]
[독성 판정 미적용]
입구에 있던 도전자 하나가 멍하니 말했다.
"저 장비 1층 거 아니야?"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5층 늪지는 냄새부터 낯익었다.
발을 묶고 중심을 빼앗는 물. 겉은 진흙이고 속은 마력 사슬이었다. 1층 늪지 함정이 조금 더 성의 있게 자란 꼴이었다.
늪 가장자리에는 도전자 둘이 허리까지 빠져 있었다. 한 명은 밧줄을 잡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다리에 감긴 진흙을 칼로 긁어내고 있었다.
"도와..."
말이 끝나기 전에 현우가 늪에 발을 넣었다.
늪이 그의 발목을 잡으려 했다.
현우는 발목을 돌렸다. 잡아당기는 힘이 반대로 꼬였다. 늪지 전체가 거품을 내며 가라앉았다. 땅속에 숨어 있던 감속 문양이 하나씩 꺼졌다.
허리까지 빠져 있던 도전자들이 툭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5층 감속 늪지 판정 역류]
[지형 효과 적용 실패]
[구속 대상 해방]
"뭐야. 늪이 꺼졌어?"
현우는 이미 반대편으로 걷고 있었다.
6층의 환영 늑대 무리는 더 시끄러웠다.
수십 마리의 늑대가 그림자처럼 튀어나왔다. 울음소리가 벽과 천장에서 겹쳐졌다. 입구의 도전자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검을 들었다.
현우는 코끝을 찡그렸다.
냄새가 없었다.
숨도 없고 발소리도 없었다.
그는 늑대들 사이를 그냥 걸었다. 환영의 이빨이 어깨를 통과했다. 검을 든 도전자 하나가 비명을 삼켰다.
진짜 한 마리가 뒤늦게 숨어 있다가 목덜미를 노렸다.
현우는 팔꿈치로 턱을 쳤다.
늑대가 벽에 박혔다.
[6층 환영 늑대 굴 통과]
[환영 판정 무시]
[실체 마수 제압]
7층은 거울 복도였다.
벽마다 현우의 모습이 비쳤다. 낡은 가죽 아머와 녹슨 단검을 든 수십 명의 현우가 동시에 걸었다. 거울 속 하나가 먼저 움직였다.
반사 공격이었다.
현우는 단검을 들었다.
"흉내는 느리면 안 되지."
기본 찌르기.
직선 하나가 거울 복도 중앙을 꿰뚫었다. 반사 판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거울의 핵이 갈라졌다. 복도 끝 문이 허무하게 열렸다.
[7층 거울 복도 핵 손상]
[반사 판정 성립 실패]
현우는 문을 지나며 중얼거렸다.
"밥 먹고 걷기 딱 좋네."
8층 입구에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신입이 아니었다. 장비에 길드 인장이 여럿 붙어 있었다. 견습 랭커라 불릴 만한 도전자들이 계단을 막고 섰다. 그들은 이미 기록망을 보고 기다린 얼굴이었다.
"강현우."
가장 앞의 여자가 검집을 두드렸다.
"3층부터 7층까지 단독 연속 돌파. 설명이 필요해."
"걷다 보니 됐는데."
"우리는 네가 어떤 권능을 쓰는지 알아야겠다."
"왜."
"하층 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니까."
현우는 주변을 보았다. 계단 옆에는 막 상처를 치료받는 도전자들이 앉아 있었다. 견습 랭커들은 그들 앞에서 길을 막고 있었다.
"질서라는 게 길 막는 거냐?"
여자의 얼굴이 굳었다.
"말조심해. 여긴 8층이다."
"그래도 아직 1층보다 시끄럽기만 하네."
현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견습 랭커들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살기가 아니었다. 현우의 걸음이 그들의 첫 동작을 전부 밟고 지나간 것이다. 검을 뽑을 각도도 마력 올릴 호흡도 이미 늦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현우는 그 사이를 지나갔다.
"비켜줘서 고맙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9층 문 앞에는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었다.
문지기 골렘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돌로 된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다.
[9층 관문 대기실]
[의무 대기 시간: 6시간]
[체력 회복 및 다음 층 준비 권장]
현우는 모래시계를 보았다.
"왜 기다려."
골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층 관문 규칙. 대기 시간 종료 후 통과 가능."
"난 괜찮은데."
"규칙."
현우는 모래시계 아래 문양을 봤다. 대기실 문양. 1층에도 있었다. 첫날에는 쉬라고 만들어진 줄 알았다. 나중에는 루프가 끝날 때까지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잠금이라는 걸 알았다.
현우의 눈이 차가워졌다.
"기다리는 건 충분히 했어."
그는 모래시계의 유리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딱.
모래가 한꺼번에 아래로 떨어졌다. 대기 시간 문양이 접혔다.
[의무 대기 시간 종료]
[9층 통과]
[하층 규칙 손상 가능성 기록]
골렘이 처음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비정상."
"자주 듣네."
현우는 열린 문으로 걸어갔다.
문 너머에는 넓은 원형 광장이 있었다. 중앙에는 10층을 가리키는 검은 문이 세워져 있었다. 문 위에는 붉은 글씨가 떠올랐다.
[10층 입구]
[하층 첫 관문 보스 대기 중]
[입장 전 파티 구성 권장]
광장에 있던 도전자들이 모두 현우를 보았다. 누군가는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떨어뜨렸다. 누군가는 기록판을 확인하다가 그대로 굳었다.
[강현우]
[3층부터 9층까지 연속 단독 돌파]
[총 소요 시간 산정 불가]
[10층 입구 도달]
그 알림은 2층보다 높고 5층보다 높고 9층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현우는 보지 못했다.
그는 문 너머에서 들리는 낮은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짐승의 울음이었다. 숨결에 불이 섞여 있었고 발톱이 돌을 긁는 소리도 났다.
현우의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이번엔 좀 큰가."
그는 녹슨 단검을 고쳐 쥐었다.
"그래도 10층까지는 산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