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

14화: 썩은 불씨는 물을 싫어한다
검푸른 심장이 다시 뛰었다.
불씨갈비수의 갈비뼈 안쪽에서 재가 거꾸로 빨려 올라갔다. 바닥에 내려앉았던 붉은 불씨들은 꺼지는 대신 색을 잃었다. 붉은빛은 검푸른 심장 쪽으로 흘러들었고 전장에는 젖은 뼈 냄새와 식은 쇠 냄새가 함께 퍼졌다.
도율이 창을 세웠다. 창끝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손등의 힘줄은 굳어 있었다.
"전열 재정비. 방패는 뒤로 빠지고 창대가 갈비 틈을 연다."
적요길드 공략대가 움직였다. 방패 담당 둘은 아직 숨을 골랐고 마법사는 손등을 감싸 쥐고 있었다. 그래도 대형 길드 공략대답게 무너지는 속도보다 다시 서는 속도가 빨랐다.
다서연은 기록판을 내려다봤다. 붉은 문장 위로 검푸른 문장이 덧씌워지고 있었다.
[불씨갈비수 2차 핵 노출]
[썩은 불씨]
[회복 판정 오염]
[보호 문양 역연소]
"치유 문양 쓰지 마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적요길드의 보조 마법사가 손을 들었다. 방패 담당의 손목에 푸른 치유 문양이 닿았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상처 가장자리에서 검푸른 재가 솟았다. 재는 치유 문양을 타고 마법사의 손가락으로 돌아왔다. 손톱 밑이 검게 물들었다.
"끊어!"
도율이 창대로 치유 문양을 찍었다. 문양은 끊어졌지만 마법사의 손가락 끝에서 검푸른 불씨가 살아났다.
현우는 코를 찡그렸다.
"냄새가 더 나빠졌네."
도율이 이를 악물었다.
"네가 아는 거면 말해라."
"썩은 불씨."
"그건 방금 네가 붙인 이름이다."
"이름 맞잖아."
불씨갈비수가 앞발을 내딛었다. 갈비뼈 끝이 바닥을 긁자 재가 파도처럼 밀렸다. 재가 닿은 우선권 선들은 검푸른 빛으로 바뀌었다.
선이 다시 조이기 시작했다.
첫 기믹 때 느슨해졌던 발목의 압박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뜨거운 불이 아니었다. 오래 물에 잠겨 있던 뼈가 살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차가운 열기였다.
다서연이 검을 바닥에 꽂았다.
"우선권 선을 다시 먹고 있다. 이번에는 생존 판정도 같이 물린다."
"그럼 더 귀찮네."
현우는 바닥의 재를 발끝으로 밀었다. 재는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고 젖은 밀가루처럼 뭉쳤다.
재 아래에는 물기가 있었다. 전장은 뜨거웠지만 재 밑은 눅눅했다. 불씨갈비수는 불을 키우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꺼진 불을 다시 더럽게 살리는 쪽이었다.
1층 보급 창고에도 그런 날이 있었다.
비가 새던 날에는 장작이 타지 않았다. 그런데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젖은 재 밑에서 며칠을 버텼다. 그 불씨를 그냥 파헤치면 연기가 보급막 안으로 퍼지고 말린 식량까지 눅눅해졌다.
살리는 것도 어렵고 죽이는 것도 귀찮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불씨가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젖은 재를 따로 버리는 것이었다.
현우가 주머니를 뒤졌다.
다서연이 그를 보았다.
"금화인가?"
"아니. 이번엔 물."
현우는 낡은 물통을 꺼냈다. 튜토리얼 지급품 주머니 바닥에 눌려 있던 작은 물통이었다. 겉가죽은 닳았고 뚜껑은 비뚤어져 있었다.
도율의 얼굴이 굳었다.
"그걸로 레이드 보스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젖은 불씨는 물 싫어해."
"불은 원래 물을 싫어한다."
"저건 불이 아니라 썩은 거야."
불씨갈비수가 숨을 뱉었다.
검푸른 숨이 전장 바닥을 깔았다. 방패 담당의 갑옷 틈에 묻은 재가 끓었다. 마법사의 손가락에서 돋은 불씨가 손목으로 번지려 했다.
현우는 물통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물통 안쪽에는 오래된 판정이 남아 있었다. 1층에서 가장 처음 지급됐던 생존 보급품. 마실 수 있음. 불을 끌 수 있음. 상처를 씻을 수 있음. 너무 많이 쓰여 닳아 버렸지만 기능의 이름은 남아 있었다.
현우는 물통을 바닥에 기울였다.
두 방울이 떨어졌다.
검푸른 재가 그쪽으로 꿈틀거렸다.
[1층 튜토리얼 지급품 감지]
[기초 생존 보급품]
[정화 가능 대상 탐색]
다서연의 눈이 흔들렸다.
"정화 판정이 살아 있다."
"물통이니까."
"저 정도 물로는 전장을 씻을 수 없다."
"전장을 씻는 게 아니야."
현우는 발끝으로 물방울 옆 재를 긁었다. 재가 작게 뭉쳤다. 썩은 불씨는 그 뭉친 재를 먼저 물었다. 검푸른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도율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창대 전원 심장 견제!"
"하지 마."
현우의 말은 짧았다.
하지만 도율은 멈췄다. 창대 셋도 창끝을 내린 채 숨을 삼켰다. 방금 전 현우를 외부 변수라 부르던 공략대가 이제는 그의 한마디에 대형을 고정했다.
현우는 재를 한 번 더 밀었다.
젖은 재 뭉치가 전장 가장자리로 굴러갔다. 검푸른 불씨가 그 뒤를 따라갔다. 불씨갈비수의 갈비뼈 안쪽 심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썩은 불씨는 새 먹이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자기가 원래 숨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꺼진 불씨가 살아났다고 믿게 만든 자리. 젖은 재와 오래된 뼈 냄새가 섞인 가장 낮은 자리.
현우는 낡은 물통을 재 뭉치 위에 거꾸로 엎었다.
[기초 생존 보급품 사용]
[오염 불씨 보관 판정 충돌]
[썩은 불씨 귀속 대상 재탐색]
불씨갈비수가 몸을 뒤틀었다.
갈비뼈 기둥들이 일제히 울렸다. 검푸른 심장에서 실처럼 뻗은 불씨들이 적요길드 공략대의 발목을 다시 물려 했다.
도율이 이를 악물고 공략대 앞에 섰다.
"건드리지 마라. 선을 치면 더 붙는다."
그 말은 현우가 했던 말과 같았다.
도율의 부하들이 잠깐 그를 보았다. 도율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선택은 했다.
다서연은 기록판을 접었다. 검을 든 손이 한층 낮아졌다. 그녀는 현우가 만든 빈틈에 맞춰 전장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재 파도를 잘라 냈다. 직접 보스를 베지는 않았다. 재가 공략대의 발목에 닿기 전에 방향만 틀었다.
현우는 녹슨 단검을 뽑았다.
단검은 여전히 낡았다. 20층 레이드 보스 앞에서도 1층에서 막 받은 장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검푸른 심장은 그 단검을 읽지 못했다.
불씨갈비수의 규칙은 불과 먹이줄과 회복 오염을 읽었다. 낡은 단검의 기본 찌르기는 화려한 공격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반복되어 판정 이름만 남은 기본 동작이었다.
현우는 앞으로 걸었다.
검푸른 숨이 그의 발목을 덮었다. 우선권 선이 다시 감기려 했다. 현우는 발을 빼지 않았다. 대신 첫 매듭을 밟았다.
[우선 공략권 잔류 선 접촉]
[생존 판정 우선]
[외부 변수 분리 실패]
"왜 안 타지?"
적요길드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 년 동안 너무 많은 불을 피웠다. 불이 붙는 냄새와 꺼지는 냄새와 썩는 냄새를 다 외웠다. 이건 타는 불이 아니었다. 버린 불씨가 자기가 아직 쓸모 있다고 우기는 냄새였다.
그런 건 밟아 꺼야 했다.
현우는 갈비뼈 사이로 들어갔다.
불씨갈비수가 앞발을 내려쳤다. 발톱이 바닥을 갈랐다. 재와 검푸른 불씨가 폭발하듯 솟았다.
현우는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
발톱은 그가 있던 자리를 찍었다. 그는 단검을 가볍게 쥐고 갈비뼈 안쪽의 매듭을 보았다.
심장이 아니었다.
심장과 갈비뼈를 이어 붙인 젖은 힘줄 같은 선. 그 선이 썩은 불씨를 계속 되살리고 있었다.
1층 늙은 홉고블린이 들고 다니던 곰팡이 횃불과 같았다. 횃불의 불을 때려 봐야 다시 살아났다. 나무와 곰팡이가 붙은 첫 틈을 찔러야 꺼졌다.
현우는 단검을 찔렀다.
깊게 찌르지도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
[기본 찌르기]
[오염 불씨 연결부 접촉]
[썩은 불씨 재점화 판정 실패]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불씨갈비수의 몸 전체가 멈췄다.
갈비뼈 안쪽의 검푸른 심장이 한 번 더 뛰려다 접혔다. 젖은 재 뭉치에 엎어 둔 물통이 툭 하고 넘어졌다. 물통 안쪽에서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졌다.
검푸른 빛이 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씨갈비수의 갈비뼈가 하나씩 무너졌다. 불길한 열기는 사라졌고 남은 것은 식은 뼈와 재뿐이었다.
[20층 중간 레이드 보스 처치]
[불씨갈비수]
[처치 방식: 오염 불씨 연결부 붕괴]
[공격 기여 판정 재산정]
전장이 조용해졌다.
적요길드 공략대 중 누구도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방패 담당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검푸른 자국은 숯가루처럼 털렸다.
도율은 창을 내렸다.
"보스를 빼앗겼다고 기록할 생각은 없다."
현우가 단검을 털었다.
"가져가."
"그런 뜻이 아니다."
"고기는 없네."
도율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었다. 화를 내야 할지 숨을 돌려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다서연은 기록판을 다시 펼쳤다.
[적요길드 20층 레이드 문 선점 기록 유지]
[독점 통제 기능 실패]
[비등록 예외 대상 강현우 생존 판정 우선 적용]
[레이드 기여도 재산정 대기]
그녀가 낮게 말했다.
"기록이 복잡해진다."
"또?"
"적요길드는 선점 기록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 처치의 결정 판정은 네 쪽으로 넘어왔다."
"그럼 밥은?"
다서연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20층 이후에는 바로 쉼터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레이드 정산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
현우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나빠졌다.
"정산?"
도율이 말했다.
"20층 레이드 보상과 공략권 정리는 정산 회랑에서 처리한다. 길드 우선권이 걸린 레이드는 더 그렇다."
"또 줄 서는 거야?"
대답은 기록석이 대신했다.
전장 끝의 문이 열리며 검은 돌기둥 하나가 솟았다. 돌기둥 위에 흰 글자가 켜졌다.
[21층 이동 조건 충족]
[20층 레이드 정산 회랑 개방]
[공략권 이의 제기 가능]
[기여도 1위: 강현우]
적요길드 공략대가 동시에 숨을 멈췄다.
도율의 손이 창대를 다시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현우를 겨누지 않았다. 그는 자기 길드 문양이 떠 있는 기록석을 노려보았다.
다서연은 곧장 기록판을 눌렀다. 기록이 늦으면 누군가 먼저 해석을 씌울 수 있었다.
"아르페우스 현장 보고. 강제 충돌 금지 유지. 20층 보스 처치 확인. 정산 회랑 진입 예정."
기록판 너머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묻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여도 1위가 누구라고 떴습니까?"
다서연은 현우를 보았다.
현우는 돌기둥의 글자보다 열린 문 안쪽을 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신 종이와 쇠와 오래된 잉크 냄새가 났다.
현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밥 먹기 전에 계산부터 하라는 곳이네."
정산 회랑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