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1층만 만 년째, 드디어 올라갑니다

11화: 돌종은 발로 울린다
17층 문 앞의 바람은 차가웠다.
강현우는 문 너머에서 나는 돌 냄새를 맡고 윤서아를 봤다. 윤서아는 카일에게 후송 지시를 마친 뒤 검집 끈을 조였다.
"식당 위치부터."
윤서아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17층 휴게소는 시험 뒤에 있다. 돌종 회랑을 지나면 바로 나온다."
"가깝네."
"가깝다고 쉬운 건 아니다. 돌종 회랑은 발소리와 마력 진동을 감지한다. 종이 울리면 석상 파수병이 깨어난다."
현우는 문 위에 떠오른 글자를 보았다.
[17층 이동 가능]
[돌종 회랑]
[권장: 무음 장비, 진동 차단 부적, 정찰 담당 1명]
"종 치면 혼나는 곳이네."
"혼나는 정도가 아니다. 17층 석상 파수병은 하급 랭커 셋이 붙어야 안정적으로 처리한다."
"그럼 안 치면 되잖아."
윤서아는 그 당연하다는 말투에 대답을 삼켰다.
그녀가 원래 하려던 설명은 더 길었다. 20층부터 레이드 문이 열리고 대형 길드 우선권이 본격적으로 붙는다는 것. 철왕길드만이 아니라 흑철길드도 현우의 기록을 보고 있다는 것. 아틀라스가 스카우트가 아니라 정보 협조 형태를 택하려 한다는 것.
하지만 현우의 관심은 길과 밥이었다.
"강현우."
"왜."
"나는 너를 길드 밑에 두러 온 게 아니다. 네가 위로 올라가면 충돌이 늘어난다. 길드 검문을 피하는 우회로와 휴게소 위치를 알려줄 수 있다. 대신 네가 지나가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면 알려주고 싶다."
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일 시키는 거야?"
"강제는 아니다."
윤서아는 16층 숲에 쓰러진 대원들을 떠올렸다. 현우는 위험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해치지 않았다. 누군가 길을 막지만 않으면 그는 가장 짧은 곳을 보고 움직였다.
그 방향을 조금만 알려주면 피해가 줄어든다.
그게 윤서아의 판단이었다.
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밥집 알려주고 길 막는 놈 줄여주면 따라와도 돼."
윤서아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이 열렸다.
17층 돌종 회랑은 긴 지하 사원 같았다. 양쪽 벽에는 검은 석상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석상의 손에는 돌로 만든 종이 들려 있었다.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졌지만 바닥에 닿기 전에 사라졌다.
소리도 시험의 일부였다.
입구 기록석이 켜졌다.
[17층 돌종 회랑]
[발소리 누적 금지]
[마력 진동 감지 시 경보]
[석상 파수병 대기]
윤서아가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여기서는 말도 줄이는 게 좋다."
현우는 첫 발을 바닥에 올렸다.
돌바닥이 아주 작게 울렸다. 일반 도전자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벽의 돌종 하나가 희미하게 떨었다.
현우는 발을 멈췄다.
"이거."
윤서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왜 그러지?"
"1층에도 있었어. 고블린들이 홉고블린 깨우려고 매달아 놓은 깡통."
"깡통?"
"잘못 밟으면 다 깨어나서 귀찮아지는 거."
윤서아는 그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때 회랑 뒤쪽에서 아주 낮은 떨림이 들어왔다.
현우가 고개를 돌렸다.
윤서아도 즉시 검을 뽑았다.
"외부 진동이다."
벽 틈 사이로 검은 문양이 번졌다. 누군가 회랑 밖에서 기록 문양을 밀어 넣고 있었다. 돌종을 직접 치는 게 아니라 바닥의 진동선을 흔들어 현우 일행이 소리를 낸 것처럼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원거리 기록 문양 침투]
[경보 진동 위조]
[대상자 시험 실패 유도]
윤서아의 붉은 검기가 문양을 향했다.
"막겠다."
"베면 종 울려."
윤서아의 검이 멈췄다.
현우는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돌바닥의 선들은 복잡해 보였지만 첫 매듭은 하나였다. 종을 울리는 건 큰 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흔들린 진동이 누구의 것인지 정하는 판정이었다.
1층 늙은 홉고블린 굴 앞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깡통을 치는 고블린을 잡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었다. 줄을 잡아당긴 놈에게 소리를 돌려보내면 된다.
현우는 발뒤꿈치로 바닥 한 점을 눌렀다.
둥.
종소리가 났다.
그런데 회랑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였다.
벽 틈에 번지던 검은 문양이 거꾸로 접혔다.
[경보 진동 소유권 역전]
[원거리 문양 발신자 판정]
[돌종 회랑 내부 발소리 누적 0]
회랑 밖에서 누군가 짓눌리는 소리가 났다.
윤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흑철길드 문양이다."
"또 길드야?"
"철왕길드와 다르다. 20층대 레이드 우선권을 많이 쥔 길드다. 아틀라스가 너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왜."
"네가 어느 쪽에도 묶이지 않으면 그들의 우선권 장사가 무너진다."
현우는 짧게 생각했다.
"밥 먹는 것도 우선권 있어?"
"휴게소 식당은 보통 없다."
"그럼 됐어."
검은 문양이 완전히 접히자 회랑 중간의 석상 하나가 눈을 떴다. 종소리가 바깥에서 났는데도 시험은 침입자를 찾기 위해 깨어나려 했다.
윤서아가 몸을 낮췄다.
현우는 손을 들었다.
"잠깐."
그는 석상 앞까지 걸어갔다. 석상의 손에 든 돌종은 아직 흔들리고 있었다. 현우는 녹슨 단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종 아래 줄을 톡 건드렸다.
딱.
돌종이 멈췄다.
[석상 파수병 기동 조건 미충족]
[경보 대상 회랑 외부로 재지정]
[시험 지속]
석상의 눈빛이 꺼졌다.
윤서아는 이번에는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파괴하지 않았군."
"깨면 시끄럽잖아."
"그게 더 어렵다."
"그런가."
현우는 다시 걸었다.
회랑 끝에 도착할 때까지 종은 울리지 않았다. 돌바닥은 그의 발밑에서 소리를 삼켰고 윤서아는 그의 뒤를 따라 정확히 같은 발자국을 밟았다.
출구 앞 기록석이 켜졌다.
[17층 돌종 회랑 통과]
[발소리 누적 0]
[석상 파수병 전투 미발생]
[원거리 방해 문양 역류]
문이 열리자 짧은 계단과 작은 휴게소가 보였다.
계단 옆 바닥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도전자 셋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의 기록판에는 흑철길드 인장이 떠 있었다. 방해 문양의 무게가 되돌아와 그들을 바닥에 고정한 상태였다.
가장 앞의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아틀라스가 먼저 손대게 둘 것 같나."
윤서아가 차갑게 답했다.
"손댄 적 없다. 대화 중이다."
남자는 현우를 노려봤다.
"20층 레이드 문은 이미 흑철길드 우선권으로 잠긴다. 네가 아무리 이상한 신입이어도 레이드 문은 개인 통과가 안 된다."
현우는 고개를 기울였다.
"레이드면 큰 몹 나오는 거지?"
"..."
"문이나 열어놔."
남자는 웃으려 했지만 인장 압박에 얼굴만 일그러졌다.
윤서아가 기록판을 꺼냈다.
"카일. 현장 보고 갱신. 흑철길드 원거리 방해 확인. 강제 구속 금지 유지. 강현우와 정보 협조 접촉 진행."
기록판에서 카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님. 아틀라스 본부에서 협조 조건 확인을 요청합니다."
"조건은 단순하다. 길을 막지 않는다. 필요한 정보를 준다. 휴게소 위치를 공유한다."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카일은 잠시 침묵했다.
"휴게소 위치도 공식 조건에 넣습니까?"
윤서아는 현우를 한번 보고 말했다.
"넣어."
흑철길드 관찰조는 아직 바닥에 눌린 채였다. 현우가 조금만 힘을 더 돌려보냈다면 그들의 인장은 갑옷째로 으스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밥을 흔들거나 길을 막은 놈들은 무릎을 꿇었다. 숨을 끊을 필요는 없었다. 윤서아는 그 선을 똑똑히 봤다.
"하나만 더 묻지."
"또?"
"네가 굳이 죽이지 않는 이유가 있나."
현우는 계단 위 휴게소 문을 보며 대답했다.
"죽이면 치우는 사람 생기잖아."
윤서아는 잠깐 침묵했다.
대답은 가벼웠지만 뜻은 가볍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귀찮다는 이유로도 살인을 피했다. 그 기준은 이상했지만 기준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휴게소 문이 열렸다.
17층 휴게소는 15층보다 작았다. 대신 식당 냄새가 확실했다. 구운 감자와 고기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현우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벽 기록석은 그를 보자마자 글자를 쏟아냈다.
[강현우 17층 돌종 회랑 통과]
[발소리 누적 0]
[흑철길드 방해 문양 역류]
[아틀라스 윤서아와 동행 상태]
휴게소 안의 도전자들이 숟가락을 들고 굳었다.
현우는 접수대 앞으로 갔다.
"밥 돼?"
접수원이 기록석과 현우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종 회랑 통과자 기본 식사가 제공됩니다."
"좋네."
윤서아는 그의 옆에 섰다.
"18층과 19층은 우회로가 있다. 네 속도면 곧 20층에 닿는다."
"거기서 큰 몹?"
"20층은 하층 중간 레이드 문이다. 보통은 다섯 파티 이상이 함께 들어간다. 지금 흑철길드가 우선권을 잡고 있다면 문 앞에서 널 묶으려 할 거다."
현우는 접수원이 내민 식판을 받았다.
"또 길 막네."
"이번에는 길드 인장보다 큰 문이다."
현우는 구운 감자를 하나 집었다.
"문이면 열면 되지."
윤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휴게소 기록석 맨 아래에 새 문장이 떠올랐다.
[20층 레이드 문 선점 완료]
[흑철길드 우선 공략대 대기]
[비등록 예외 대상 강현우 접근 시 통행 거부]
현우는 그 문장을 힐끗 봤다.
그리고 감자를 씹었다.
"식기 전에 먹고 가자."
윤서아는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