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기엔 늙었고 은퇴하기엔 너무 강함

2화: 노장의 짬밥
눈앞의 글자가 사라지기도 전에 검은 들개가 이빨을 드러냈다.
놈의 앞발이 아스팔트를 찍을 때마다 갈라진 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는 공터 출구 쪽 바닥에 엎어진 채 울음도 못 터뜨리고 있었다.
마두식은 아이와 들개 사이에 섰다. 낡은 표지판 지지대를 두 손으로 쥐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을 밀어내던 손수레는 등 뒤에 있었다.
[특수 권능 ‘노장의 짬밥(S)’이 발동합니다.]
그 순간 공터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들개의 오른쪽 앞다리 관절에만 누렇게 번진 선이 떠올랐다. 목덜미 털 아래에는 동전만 한 검은 점이 느리게 맥박쳤다. 놈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펜스 기둥은 밑동이 반쯤 빠져 있었고 배수로의 낮은 턱은 돌진한 짐승의 발목을 꺾기에 알맞았다.
눈으로 본 것도 아니었다. 평생 몸에 밴 감각이 머릿속에서 도면처럼 펼쳐진 느낌이었다.
‘저 기둥은 한 번 더 치면 넘어간다. 저 턱에서 발목이 돌아간다. 목덜미를 치려면 털을 젖혀야 한다.’
두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귀신이 붙었든 천벌이 내렸든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위험을 발견한 사람이 먼저 손을 움직여야 했다. 보고서 쓰느라 한 박자 늦으면 사람 하나가 다쳤다.
“꼬마야. 내 말 들리냐?”
아이가 떨리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저 배수로 옆으로 기어가. 고개 숙이고 절대 일어서지 마.”
“할아버지는요?”
“나는 길 좀 치울 거다.”
두식은 아이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지지대를 비스듬히 세웠다. 들개가 낮게 몸을 웅크렸다. 노란 선으로 보이던 앞다리가 한 번 움찔했다.
놈이 튀었다.
쾅!
지지대 끝이 들개의 주둥이를 막았다. 충격이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곧장 올라왔다. 두식의 손바닥이 찢어지며 미끄러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 지나가는 데서 이빨부터 들이밀면 안 되지.”
들개가 머리를 비틀었다. 지지대가 삐걱이며 휘었다. 두식은 놈의 힘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반 걸음 비켰다. 건설 현장에서도 넘어지는 판넬은 붙들지 않았다. 떨어질 방향을 바꾸는 게 먼저였다.
놈의 몸이 비켜 나간 틈으로 두식은 손수레를 발로 찼다. 눌러 묶어 둔 폐지 더미가 들개의 앞발 밑으로 밀려갔다.
들개가 재차 땅을 박찼다. 앞발이 종이 묶음을 밟으며 어긋났다.
“이런 데선 발밑부터 봐야지.”
두식은 기다렸다는 듯 펜스 기둥을 잡아당겼다. 기울어져 있던 철망이 아래로 쏟아졌다. 들개의 오른쪽 다리가 철망에 걸렸고 놈은 거칠게 몸을 굴렸다.
쿵.
검은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목덜미의 검은 점이 털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두식의 손끝에 그곳만은 반드시 깨야 한다는 감각이 찔러 들어왔다.
그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망치를 꺼냈다. 손잡이는 오래 써서 반질반질했다. 벽돌 하나를 고정할 때도 쓰던 물건이었다.
“미안한데 네 놈은 보수할 데가 없구나.”
망치가 내리꽂혔다.
철퍽.
검은 점이 움푹 패였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마치 고무를 친 것처럼 망치가 튕겨 나왔다.
들개의 꼬리가 바닥을 쳤다. 철망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식은 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무릎이 한 번 꺾였다. 칠십 년 묵은 관절은 머리보다 정직했다. 괜찮다는 말로 속일 수는 있어도 충격까지 없애 주지는 않았다.
“할아버지!”
배수로 옆에서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고개 숙여!”
두식의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아이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들개는 철망을 떨쳐 내고 일어났다. 목덜미 털이 꿈틀거리더니 검은 점을 다시 덮었다. 놈은 다친 앞다리를 끌면서도 두식과 아이 사이를 막아섰다.
[위험 요소: 좌측 보도블록 파손.]
[활용 가능: 손수레 바퀴 고정. 철제 손잡이 버팀.]
두식은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보여 주는 놈이 정답까지 대신해 주는 건 아니었다. 어디가 약한지와 무엇을 쓸 수 있는지만 알려 줄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엮을지는 자기 몫이었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평생 남이 내준 답안지로 현장을 굴린 적은 없었다.
두식은 손수레를 배수로 앞까지 밀었다. 바퀴 하나를 깨진 보도블록 틈에 억지로 끼우고 철제 손잡이를 낮게 뉘었다. 손잡이 끝이 흔들리는 펜스 기둥을 받쳤다.
바퀴와 블록과 철망이 한 덩어리로 버텼다. 엉성해 보여도 하중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게 잡아 둔 모양이었다.
“꼬마야. 내가 셋 세면 저 골목으로 뛰어.”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무서워요.”
“무서운 게 맞아. 그래서 더 빨리 가야 한다.”
두식은 아이를 보지 않은 채 손수레 손잡이를 꽉 잡았다.
“넘어져도 일어나. 뒤는 내가 본다.”
그 말은 아이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수아가 열이 오른 밤마다 했던 말이기도 했다. 약을 먹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할아버지가 옆에 있다고.
들개가 숨을 낮췄다. 검은 연기가 주둥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하나.”
놈의 발톱이 아스팔트를 긁었다.
“둘.”
두식은 무릎의 떨림을 발바닥으로 눌렀다.
“셋!”
아이가 골목을 향해 튀어나갔다.
들개도 동시에 몸을 날렸다.
두식은 정면에서 막지 않았다. 철제 손잡이를 왼쪽으로 비틀며 몸을 반 걸음 옆으로 흘렸다. 들개의 어깨가 손잡이에 걸리고 다친 앞발이 배수로 턱을 밟았다.
쩍.
노란 선이 번져 있던 관절이 기묘하게 꺾였다. 들개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고정해 둔 손수레 바퀴가 충격을 버텼고 펜스 기둥이 놈의 목덜미 털을 긁어 올렸다.
검은 점이 다시 드러났다.
망치는 조금 전 충격으로 손에서 멀리 굴러가 있었다.
두식은 망설이지 않았다. 발치의 깨진 보도블록을 양손으로 들었다. 허리가 뻐근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공구함을 메고 계단을 수십 번 오르내리던 몸이었다. 그때도 손을 놓으면 아래 사람이 다쳤다.
“사람 다니는 길을 막았으면 철거는 해야지.”
그는 블록을 내리꽂았다.
쨍!
검은 점이 산산이 갈라졌다.
들개가 짧고 굵은 비명을 뱉었다.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지더니 거대한 몸은 젖은 재처럼 주저앉았다. 잠시 뒤 바닥에는 손톱만 한 회색 돌 하나만 남았다.
공터가 조용해졌다.
두식은 손수레 손잡이에 기대 한참 숨을 골랐다. 팔은 떨리고 무릎은 뜨거웠다. 손바닥에서 흐른 피가 손잡이의 녹 위로 번졌다.
공터 바깥에서는 누군가 대피 방송을 다시 틀었다. 조금 전까지 귀를 찢던 비명은 잦아들었지만 주민들은 쉽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두식은 빈 공터와 무너진 펜스를 한번 훑었다. 더 튀어나올 놈이 없는지 확인하는 버릇은 은퇴하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던 자리에는 회색 돌 하나와 찢어진 철망뿐이었다. 그는 아이가 완전히 골목 밖으로 빠져나간 것을 본 뒤에야 어깨 힘을 풀었다.
그래도 아이가 골목 끝에서 제 엄마 품에 안기는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마 반장님!”
김 사장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아까 대피시킨 주민들도 골목 모퉁이 너머에서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다친 데 없어요? 아니 그걸 혼자 어떻게….”
“애부터 봐. 놀랐을 거야.”
두식은 손을 내저었다. 아이 엄마가 연신 고개를 숙이려 하자 그는 괜히 안전모를 만지작거렸다.
“애가 잘 뛰었어. 내가 한 건 길만 좀 비킨 거고.”
그때 공터 입구로 검은 조끼를 입은 헌터 둘이 들어섰다. 한 명은 짧은 창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손목 단말기를 켜 둔 채 주변을 훑었다.
“게이트 브레이크 초동 대응팀입니다. 잔존 개체는?”
“저기요.”
김 사장이 회색 돌을 가리켰다.
단말기를 든 헌터가 돌과 두식을 번갈아 봤다. 놀란 기색이 얼굴을 스쳤다.
“처치자는 어르신입니까?”
“어르신은 무슨. 마 반장님이야.”
김 사장이 먼저 대꾸했다.
두식은 쭈그러든 손수레를 세웠다. 마석이란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헌터들이 게이트에서 들고 나와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돌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다.
저 작은 것이 수아의 약값에는 얼마나 보탬이 될까.
“미등록 각성자이십니까?”
헌터의 질문에 두식은 잠시 멈췄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까 눈앞에 글자가 뜨긴 했어.”
두 헌터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각성 알림을 받으셨다면 맞습니다. 지금은 현장 이탈하시면 안 됩니다. 임시 보호와 신분 확인을 먼저 진행해야 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닙니다. 방금 각성한 분은 마력 폭주 여부와 등급 측정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석은 처치 기여가 확인되면 정산 대상으로 등록됩니다.”
정산.
두식의 귀가 그 말에서 멈췄다.
“정산은 언제 나오는데?”
“게이트 봉쇄와 기록 확인이 끝나야 합니다. 오늘 바로 드린다고 장담은 못 합니다.”
역시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굴러갈 리 없었다. 두식은 회색 돌을 보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폐지 한 손수레보다 가능성이 큰 물건이었다.
그때 게이트 안쪽의 검은 빛이 한 번 더 꿈틀거렸다. 초동 헌터들이 즉시 자세를 낮췄다.
[긴급 등록 대상자를 확인합니다.]
낡은 휴대전화가 바지 주머니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수아의 이름이 떠 있었다.
두식은 검게 일렁이는 게이트와 전화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피 묻은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