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기엔 늙었고 은퇴하기엔 너무 강함

3화: 일흔 살 F급
마두식은 검게 일렁이는 게이트와 휴대전화 화면을 번갈아 봤다.
수아의 이름이 떠 있는 화면 위로 피 묻은 엄지가 망설였다. 초동 대응팀 헌터 둘은 창끝을 게이트 쪽으로 겨눈 채 움직이지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 했다.
“할아버지?”
수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두식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렸다. 공터의 검은 연기와 찢어진 철망이 시야에서 조금 가려졌다.
“그래. 왜.”
“어디예요? 병원에서 문자 왔어요. 약값 오늘까지라고….”
수아는 끝을 흐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낼 얼굴이 눈에 선했다.
두식은 찢어진 손바닥을 작업복 바지에 문질렀다. 피가 묻은 손을 감추는 버릇은 현장에서도 썩 좋은 버릇이 아니었다. 다친 걸 늦게 알면 공정이 더 꼬였다.
하지만 손녀한테까지 걱정을 얹고 싶지는 않았다.
“문자는 내가 봤다.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그래도요. 아침에 어디 간다고 했잖아요. 목소리가 이상해요.”
공터 안쪽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였다. 창을 든 헌터가 손을 들어 두식에게 고개를 숙여 달라고 신호했다.
두식은 낮게 말했다.
“동네에 작은 소동이 있어서 그렇지. 밥은 먹었냐?”
“아직요.”
“그럼 죽이라도 데워 먹어. 약은 내가 알아본다. 오늘 안으로 연락할 테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할아버지.”
수아가 그를 불렀다. 짧은 두 글자 안에 불안이 다 들어 있었다.
두식은 무너진 펜스와 손수레를 훑었다. 조금 전 아이가 빠져나간 골목에는 구경꾼 대신 노란 통제선이 쳐지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굶어 죽을 사람으로 보이냐. 일단 밥부터 먹어.”
그는 수아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마 반장님.”
김 사장이 통제선 바깥에서 손을 흔들었다. 두식이 고개를 들자 김 사장은 종이컵과 수건을 든 채 한 발 다가왔다가 대응팀의 제지에 멈췄다.
“그 손 좀 닦아요. 내가 병원도 같이….”
“이따가. 가게나 봐. 문 닫아 놓으면 손님들 갈 데 없잖아.”
두식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시선은 회색 마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톱만 한 돌이었다. 그 작은 것이 약값에 보탬이 된다면 몇 번이고 들개 앞에 섰을 것이다.
단말기를 든 헌터가 마석 위에 투명한 봉투를 씌웠다.
“처치 기여물은 봉인하고 기록하겠습니다. 처치 과정은 현장 카메라와 목격 진술로 확인할 겁니다.”
“그럼 저 돌값은 언제 나오는데?”
헌터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 이름표에는 서은채라고 적혀 있었다.
“게이트 봉쇄 확인 뒤에 기여도를 산정해야 합니다. 빠르면 며칠입니다.”
“며칠.”
두식은 혀를 찼다. 독촉장은 오늘까지였고 약값도 오늘까지였다. 며칠은 현장에선 짧은 말이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는 긴 말이었다.
창을 든 헌터 이주형이 게이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긴급 등록 검사가 끝나면 지원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저희랑 이동하시죠. 게이트가 완전히 닫힌 게 아닙니다.”
“집에 손녀가 혼자 있는데.”
“보호자 연락처를 남기시면 됩니다. 각성 직후에는 마력 폭주 여부부터 확인해야 해요. 이건 미루면 안 됩니다.”
두식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방금 전 눈앞에 글자가 떴고 검은 들개가 사람을 물어뜯을 뻔했다. 모르는 걸 억지로 우기다 더 큰일을 낼 수는 없었다.
그는 김 사장에게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수아가 밥 안 먹고 있으면 죽 좀 데워 줘. 내가 연락할 때까지 혼자 두지 말고.”
“알겠어요. 마 반장님도 병원부터 가요.”
“검사 끝나면.”
두식은 마지막으로 공터를 돌아봤다. 무너진 철망 아래에는 그가 고정해 둔 손수레가 아직 버티고 있었다. 엉성해도 사람 다니는 길을 열어 둔 모양새였다.
협회 차량은 생각보다 좁았다. 두식은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려다 손바닥이 욱신거리는 바람에 얼굴을 찌푸렸다.
서은채가 구급함을 내밀었다.
“손부터 소독할게요.”
“이 정도면 됐어.”
“각성자라고 상처가 안 곪는 건 아닙니다.”
말투는 단호했지만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두식은 더 말하지 않고 손을 내줬다. 약 냄새가 피 냄새를 덮자 그제야 지친 기운이 팔꿈치까지 내려앉았다.
창밖으로 스치는 거리에는 평소처럼 버스가 다니고 배달 오토바이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터 한쪽이 뒤집힌 것뿐인데 세상은 너무 멀쩡해서 이상했다.
구로 헌터 협회의 긴급 등록실은 구청 민원실과 비슷했다. 플라스틱 의자와 번호표 기계가 있었고 벽면 전광판에는 붉은 글씨가 떠 있었다.
[각성 직후 24시간 이내 검사를 권고합니다.]
두식은 그 글자를 한참 보다가 번호표를 뽑았다. 종이에는 017번이 찍혔다.
“마두식 씨 맞으십니까?”
안경을 쓴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명찰에는 한도윤 측정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따라오시죠. 우선 폭주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검사실 중앙에는 사람 키만 한 투명 원통이 서 있었다. 원통 안에는 흐린 물 같은 빛이 천천히 돌고 있었다.
“손을 대시면 됩니다. 어지럽거나 열이 오르면 바로 말씀하시고요.”
두식은 손바닥의 붕대를 내려다봤다.
“피 묻은 손이어도 되나?”
“괜찮습니다.”
그는 원통에 손을 댔다. 차가운 기운이 손등을 타고 팔 안쪽으로 들어왔다. 폐 속까지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목이 뻣뻣해졌다.
잠시 뒤 원통의 빛이 옅은 회색으로 변했다.
“폭주 소견 없습니다.”
한도윤은 안도한 듯 태블릿에 기록했다.
“다음은 마력량입니다. 측정석을 두 손으로 잡고 집중해 보세요.”
손바닥만 한 푸른 돌이 책상 위에 놓였다. 두식이 돌을 쥐자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괜히 힘을 줬다. 벽돌을 쥐는 것도 아닌데 손등 핏줄만 불거졌다.
잠시 후 돌 안쪽에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켜졌다. 눈금은 바닥에서 조금 올라간 뒤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도윤의 표정이 조심스러워졌다.
“F급 기준은 넘었습니다.”
“그게 좋은 건가?”
“등록은 가능합니다.”
그 다음 말이 늦게 나왔다.
“다만 F급 최저선에 가깝습니다. 단독 게이트 입장은 불가능하고 정식 공략팀 배정도 당분간 어렵습니다.”
두식은 측정석을 내려놓았다. 듣고 보니 반가운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예 안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늘 잡은 짐승은 그럼 뭔데.”
“현장 대응 보고를 봤습니다. 지형을 이용하셨다고요.”
“눈앞에 이상한 글자가 떠. 약한 데랑 쓸 만한 물건을 보여 주더군.”
한도윤의 손가락이 태블릿 위에서 멈췄다.
“능력명이 있습니까?”
“노장의 짬밥. 그런 이름이었어.”
측정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확답하지 않았다.
“보조 계열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공식 스킬 판정은 별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마력량이 낮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체력 부담이 더 클 수도 있고요.”
“몸이야 원래 부담이 많았어.”
두식은 의자 등받이에서 허리를 뗐다.
“쓸 수 있는지부터 보자고.”
한도윤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 옆문을 가리켰다.
“간단한 상황 판단 검증만 하겠습니다. 통증이 심하면 즉시 중단입니다.”
안전훈련실에는 노란 안전모를 쓴 마네킹과 철제 선반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선반 위에는 모래주머니와 플라스틱 상자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두식은 문턱을 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선반 왼쪽 다리 아래에 합판 조각이 받쳐져 있었다. 오른쪽 벽의 표적 장치는 느슨한 케이블에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마네킹이 서 있었다.
[위험 요소: 선반 좌측 하중 편심.]
[활용 가능: 벽체 고정 고리. 모래주머니 하중 분산.]
글자가 떠오르는 순간 두식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걸 훈련이라고 해 놓고 사람 머리 위에다 선반을 세워?”
한도윤이 당황했다.
“아직 작동은 안 했습니다.”
“안 했으니까 지금 고쳐.”
두식은 마네킹부터 밀어 냈다. 붕대 감은 손으로 선반을 잡자 팔이 찌릿했지만 그는 하중이 걸린 방향을 따라 천천히 밀었다.
“저 모래주머니 세 개를 이쪽으로 옮겨. 아니 한꺼번에 들지 말고 하나씩. 그 케이블은 당기면 표적이 떨어진다.”
서은채가 얼른 들어와 모래주머니를 옮겼다. 이주형은 벽체 고리에 끼울 고정줄을 찾았다.
두식은 선반 다리 밑의 합판을 발끝으로 걷어 냈다. 선반이 아주 조금 기울었다.
“봤지? 이게 버틴 게 아니라 버티는 척한 거야.”
그는 벽체 고리에 고정줄을 묶고 선반 뒤쪽을 당겼다. 이주형이 반대쪽을 잡아 주자 기울어진 선반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제 모래주머니는 낮은 칸에 넣어. 무거운 건 아래로 내려야지.”
작업이 끝나자 훈련실은 처음보다 훨씬 멀쩡해 보였다. 두식은 손바닥을 털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손이 아니라 허리가 먼저 신호를 보냈다.
한도윤은 선반과 태블릿을 번갈아 보았다.
“권능이 위험 요소와 활용 가능한 물자를 표시한 겁니까?”
“그렇다고 다 해 주는 건 아니야. 어디가 문제인지 보여 줄 뿐이지.”
두식은 마네킹을 힐끗 봤다.
“사람이 밑에 서 있으면 먼저 빼야 하고. 무거운 게 넘어지면 받지 말고 길을 바꿔야 하고. 그런 건 글자가 아니라 내가 아는 거고.”
한도윤은 한참 기록을 적었다.
“비전투 보조 계열로 임시 등록하겠습니다. 정식 공략팀은 불가합니다. 대신 F급 공개 의뢰에는 신청할 수 있습니다.”
“돈은 되나?”
“위험도에 따라 다릅니다. F급 의뢰는 보통 하루 일당 수준입니다.”
두식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하루 일당으로 사천팔백만 원을 갚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셀 필요도 없었다.
그때 한도윤이 작은 카드와 접힌 안내문을 내밀었다.
“오늘 처치한 마석은 기여 확인이 끝나면 별도로 정산됩니다. 그리고 이건 임시 헌터증입니다.”
카드에는 낯선 사진과 이름이 박혀 있었다.
마두식. F급 헌터.
두식은 카드의 F자를 엄지로 문질렀다. 평생 반장 소리는 들었어도 헌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첫 줄이 F급이라니 영 마뜩잖았다.
등록실 밖 게시판에는 얇은 종이들이 빼곡했다. 대부분은 운반 보조, 방호벽 청소, 마력 잔재 수거였다.
두식은 그중 맨 아래의 사진 한 장에서 멈췄다.
[동림물류 창고 게이트 주변 안전 정비 보조 / 새벽 5시 집결 / F급 가능]
사진에는 낡은 창고 벽과 비스듬히 기운 철제 지지대가 찍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녹슨 고철처럼 보일 물건이었다.
그러나 두식의 눈에는 지지대 아래로 길게 난 균열이 먼저 들어왔다.
저걸 저대로 건드리면 벽이 안쪽으로 무너진다.
오늘 공터에서 본 검은 연기와는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그래도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점은 같았다.
두식은 의뢰지를 뜯어 들었다.
“이거 신청하면 되는 거지?”
한도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첫날부터요? 손도 다치셨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교육은 받지. 그런데 저 지지대는 내일까지 두면 안 돼.”
그는 임시 헌터증을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F급이면 어떤가. 사람 다니는 길이 무너지는데 등급표부터 볼 수는 없었다.
두식은 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아야. 약값은 조금만 기다려라.”
그는 사진 속 균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내일부터 새 일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