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기들이 나한테만 말을 걸어

9화: 반사된 습격
시우가 현장에 가겠다고 말하자 가장 먼저 반대한 것은 의료 대원이었다.
"절대 안 됩니다."
대답이 너무 빨라서 시우는 잠깐 입만 벌렸다. 붕대 밑 어깨가 아직 뜨거웠고 손바닥은 새 거즈로 감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침대 난간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당겼다.
"걷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이 더 위험하게 들립니다."
아스칼론이 검집 안에서 낮게 웃었다.
"꼬맹이. 네가 일어나면 내가 무거워져서 손목을 바닥에 붙인다."
"협박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시면 안 되죠."
"보호다. 효과가 빠르다."
에제키엘은 깨끗한 천 위에 누운 채 반사면을 살짝 밝혔다.
"저도 이동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반사면 오염 금지. 충격 금지. 부주의한 손 금지. 그리고 가능하면 품격 있는 거치대."
시우는 한숨을 쉬었다.
"품격 있는 거치대까지는 지금 힘들 것 같습니다."
"상황이 열악하다는 점은 이해하겠습니다. 다만 이해와 만족은 별개입니다."
윤채아는 침대 발치에서 구 국립 신화 박물관 창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 7번 밀폐함 뒤쪽 벽에 생긴 푸른 균열은 아까보다 넓어져 있었다. 수치상으로는 C급 게이트 잔류 균열이었다. 그런데 균열 주변의 마력 흐름이 이상했다.
보통 게이트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힘을 밀어 낸다. 저 균열은 반대로 밀폐함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함 안의 봉인의 사슬에서 새어 나오는 약한 울림을 먹고 있었다.
윤채아가 단말기를 닫았다.
"강시우 씨는 이동 보조 의자 사용. 보호 결계 상시 유지. 현장 도착 후 밀폐함과 직접 접촉 금지. 통증 수치가 기준을 넘으면 즉시 철수합니다."
의료 대원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분석관님. 봉합 직후입니다."
"그래서 걷게 하지 않습니다."
"게이트 균열 근처입니다."
"그래서 결계를 붙입니다."
측정 담당자도 끼어들었다.
"부상자를 현장 판단에 투입했다는 기록은 중앙 심사에서 문제가 됩니다."
윤채아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현장 판단은 제가 합니다. 강시우 씨는 감응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감응 정보가 없으면 7번 밀폐함 안의 유물을 보호할 방법이 없습니다."
시우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기쁘지 않았다.
보호해야 할 방법.
그 말이 어깨의 통증보다 무겁게 눌렀다. 자신은 아직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그런데 상자 안쪽의 낡은 사슬은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잊히지 않으면 묶을 수 있다.
목소리는 쇠가 문고리에 닿는 소리 같았다. 오래 버틴 물건의 울림이었다.
"가겠습니다."
시우가 말했다.
"무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저 사슬이 말하는 건 제가 듣고 있습니다."
아스칼론이 투덜거렸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놈들이 대개 제일 무리한다."
"그러면 어르신이 막아 주세요."
"이미 막고 있다."
에제키엘이 조용히 말했다.
"그보다 제 보호 케이스 표식은 바깥쪽에 붙이십시오. 제 몸에 붙이면 오늘의 협조는 매우 불쾌해집니다."
윤채아가 바로 기록했다.
"황금 거울 에제키엘. 보호 케이스 바깥 표식. 반사면 접촉은 강시우 씨 허가 후에만."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희미한 금빛이 돌았다.
"그 문장은 적절합니다."
시우는 이동 보조 의자에 앉은 채 병원 지하 연결 통로를 지나갔다. 보호 결계가 의자 양옆에서 얇은 막처럼 따라붙었다. 한 번 바퀴가 문턱을 넘을 때마다 어깨가 아팠지만 그는 소리를 삼켰다.
구 창고는 병원보다 훨씬 오래된 냄새가 났다. 묵은 종이와 녹슨 철, 오래 닫힌 문 뒤의 먼지가 섞여 있었다. 선반마다 봉인 상자와 낡은 유물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그 끝에 흑철 밀폐함이 있었다.
마도윤은 함 앞에 서 있었다. 팔에는 임시 압박대가 감겨 있었고 금 간 보호 팔찌는 목걸이처럼 걸려 있었다. 그는 시우를 보자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강시우 씨."
이번에는 이름을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 온 이상 지시는 짧게 부탁합니다. 균열 수치가 계속 오릅니다."
아스칼론이 바로 중얼거렸다.
"사과는 아직 멀었군."
에제키엘도 낮게 말했다.
"감사 표현 역시 품격 미달입니다."
시우는 둘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밀폐함을 보았다.
뚜껑은 다시 닫혀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 아래의 검은 매듭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숫자 7 아래에 덧칠된 흔적은 에제키엘의 반사면에서 더 뚜렷하게 보였다.
그 뒤쪽 벽에는 푸른 균열이 벌어져 있었다. 장비 화면으로 보면 균열 안쪽은 빈 복도처럼 보였다. 너무 깨끗했다. 너무 조용했다.
시우는 그 조용함이 싫었다.
"에제키엘. 안쪽을 비춰 주세요. 비어 보이는 곳 말고요. 너무 조용한 곳을요."
"좋은 요청입니다. 빈자리처럼 보이는 거짓은 대개 반사면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깊어졌다.
창고의 벽과 균열 안쪽이 거울에 겹쳐졌다. 장비에는 아무것도 없는 통로가 보였지만 거울 속에서는 바닥선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같은 풍경을 여러 장 베껴 붙인 것처럼 모서리마다 얇은 틈이 생겼다.
아스칼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숨을 참고 있다."
마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후방 결계 보강. 출입구 봉쇄. 탐지 수치 말고 그림자 변화도 같이 봐."
팀원들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무도 시우를 쳐다보며 비웃지 않았다. 그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
밀폐함 안에서 사슬이 울렸다.
문을 지켰다.
이름은 잠겼다.
시우는 숨을 골랐다.
"글레니."
사슬이 아주 작게 떨었다.
검은 매듭 하나가 느슨해졌다. 하지만 마지막 마디는 여전히 어두웠다. 이름이 맞는지 틀린지 사슬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소리는 조금 덜 겁먹은 것처럼 들렸다.
"아직 완전한 이름은 아닙니다."
시우가 말했다.
"그래도 반응합니다. 사슬은 문을 열려고 있는 게 아니라 문을 막으려고 있었어요. 균열이 이 사슬의 봉인 파형을 먹고 커지는 것 같습니다."
측정 담당자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렸다.
"수치상으로도 맞습니다. 밀폐함 근처에서 파형 감소. 균열 주변에서 동일 파형 증가."
마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균열을 먼저 닫아야 합니다."
"사슬을 건드리면 반대로 열릴 수 있습니다."
시우가 바로 말했다.
"사슬은 지키는 쪽입니다. 공격 대상이 아니에요."
마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팀원들에게 손짓했다.
"절삭 장비 대기. 단 사슬 접촉 금지."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했다.
그때 후방 결계가 소리 없이 찌그러졌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수치도 크게 튀지 않았다. 하지만 에제키엘의 반사면 한쪽에서 C급 대원 하나의 그림자가 둘로 갈라졌다. 사람의 그림자 뒤에 얇고 긴 그림자가 엎드려 있었다.
"뒤쪽."
시우가 말했다.
"대원 뒤에 하나 더 있습니다."
마도윤이 즉시 돌아섰다.
창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후방 결계도 멀쩡해 보였다. 대원 하나가 당황한 얼굴로 자기 등 뒤를 확인했다.
"안 보입니다."
"보이는 척을 안 하는 겁니다."
에제키엘이 차갑게 말했다.
"저 표피는 주변 풍경을 베낍니다. 품격 없는 위장입니다. 자기 모습을 남의 배경으로 덮고 있습니다."
시우는 거울 테두리에 손끝을 댔다.
"돌려보내 주세요. 저쪽이 가린 만큼보다 더 선명하게요."
"명령이라기보다 부탁에 가깝군요. 수락하겠습니다."
반사면이 금빛으로 열렸다.
빈 창고 바닥에 금빛 선이 한 번 지나갔다.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납작한 마수가 드러났다. 도마뱀처럼 긴 몸이었다. 표피는 창고 벽 색과 먼지 무늬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고 머리 양쪽에는 검은 가시 같은 더듬이가 돋아 있었다.
더듬이는 밀폐함 쪽으로 뻗어 사슬의 글자를 핥듯 건드리고 있었다.
"가면 도마뱀 계열로 보입니다!"
마도윤이 외쳤다.
"목 뒤를 노려!"
현장대의 마력탄이 동시에 날아갔다. 마수는 피하지 않았다. 목 뒤에 탄환이 꽂히는 순간 껍질만 툭 떨어졌다. 진짜 몸은 이미 한 뼘 아래로 미끄러져 있었다.
아스칼론이 으르렁거렸다.
"목을 내준 척한 거다. 숨구멍은 왼쪽 뒷발목 안쪽이다."
"왼쪽 뒷발목 안쪽!"
시우가 외쳤다.
마도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수도 빨랐다. 벽을 흉내 낸 표피가 한 번 더 번지더니 밀폐함 앞까지 몸을 낮춰 돌진했다.
검은 더듬이가 뚜껑 틈으로 파고들었다.
사슬의 목소리가 찢어지듯 울렸다.
이름을 먹는다.
문이 열린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보호 결계가 따라 흔들렸고 어깨에서 불이 번졌다. 의료 대원이 통신 너머로 뭐라 외쳤지만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채아가 낮게 말했다.
"강시우 씨. 손만입니다."
그 목소리가 시우를 붙잡았다.
시우는 에제키엘의 테두리를 놓치지 않으려 손끝에만 힘을 주었다. 그리고 밀폐함 안쪽을 향해 말했다.
"글레니. 당신은 폐철이 아닙니다."
사슬이 떨었다.
"당신은 문을 지키던 봉인의 사슬입니다. 묶을 곳을 정해 주세요. 당신이 지키던 문을 저놈에게 주지 마세요."
사슬의 울림이 낮아졌다.
왼쪽.
발목.
숨.
마도윤이 이번에는 시우를 보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그는 낮게 몸을 굽히고 단검을 던지듯 찔렀다.
칼끝이 마수의 왼쪽 뒷발목 안쪽에 박혔다.
마수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짐승의 울음만이 아니었다. 검은 명령 파형이 비명에 섞여 창고 전체로 퍼졌다.
주인 없는 것을 묶어라.
이름 없는 것을 잠재워라.
대원들의 무기가 순간적으로 무거워졌다. 마력 회로가 잠기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마도윤의 단검도 발목에 꽂힌 채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이 금빛으로 치솟았다.
"남의 이름을 훔치는 명령은 반사 가치가 높습니다."
"에제키엘!"
시우가 외쳤다.
"보낸 쪽으로 돌려보내요. 당한 것보다 더 무겁게요."
"그 표현은 다소 거칠지만 오늘 상황에는 적절합니다."
검은 파형이 꺾였다.
에제키엘의 반사면에 닿은 명령은 그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금빛을 먹고 두 배로 무거워졌다. 되돌아간 파형이 마수의 위장 표피를 눌렀다. 벽과 바닥을 흉내 내던 껍질이 종잇장처럼 벗겨졌다.
회색 살이 드러났다.
"지금!"
마도윤이 외쳤다.
현장대가 일제히 사격했다. 이번에는 빗나가지 않았다. 마력탄이 마수의 옆구리와 다리를 때렸다. 마수는 밀폐함에서 떨어져 균열 쪽으로 뒹굴었다.
아스칼론이 짧게 말했다.
"끝내려면 더 깊이 찔러야 한다."
시우는 숨을 삼켰다. 마도윤도 그 말을 들은 것처럼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균열 안쪽에서 또 다른 검은 실이 뻗어 나와 마수의 몸을 잡아당겼다.
마수는 찢어진 비명을 남기고 균열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완전히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듬이 하나가 밀폐함 앞에 떨어졌다. 검은 가시처럼 꿈틀거리던 더듬이는 곧 재가 되어 흩어졌다.
창고 경보가 뒤늦게 울렸다.
마도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의 압박대는 거의 풀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잠깐 밀폐함을 보다가 시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강시우 씨."
"네."
"현장 판단을 무시했습니다. 사과합니다. 그리고 도움에 감사합니다."
아스칼론이 코웃음을 쳤다.
"이제야 사람 말 비슷하게 하는군."
에제키엘도 조용히 말했다.
"주어와 목적어가 있는 사과였습니다. 미흡하지만 인정하겠습니다."
시우는 지친 얼굴로 웃었다.
"살아 계시면 됐습니다. 사슬만 다시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마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물 보호 우선으로 전환합니다."
윤채아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이어졌다.
"현장대는 밀폐함 주변 방어선 유지. 사슬 직접 접촉 금지. 균열 안쪽 추격은 보류합니다."
밀폐함 안에서 사슬이 약하게 울렸다.
검은 매듭은 하나 더 풀려 있었다. 사슬 마디의 글자는 조금 더 드러났지만 마지막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문 너머에서 내 이름을 잡고 있다.
시우는 균열 안쪽을 보았다.
마수가 끌려간 자리 너머로 더 깊은 어둠이 있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 사슬의 마지막 글자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을 부르면 문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의 끝이 잡혀 있으면 사슬은 끝까지 묶을 수 없었다.
아스칼론이 낮게 말했다.
"이건 끝난 게 아니다."
"알아요."
에제키엘의 반사면도 어두워졌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다음 조사 전에는 제 반사면을 반드시 닦아 주십시오. 저 안쪽은 매우 불결합니다."
"끝나면 제일 먼저 닦아 드릴게요."
"그 약속은 이미 여러 차례 기록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이행 가치도 있기를 바랍니다."
시우는 붕대 감긴 손을 내려다보았다.
몸은 아직 싸울 수 없었다. 칼을 제대로 들 수도 없고 한 걸음만 잘못 움직여도 봉합한 상처가 벌어질지 몰랐다.
그래도 싸움이 꼭 칼을 휘두르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름을 듣는 것.
틀린 기록을 바로잡는 것.
무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힘을 쓰게 도와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다시 문을 지킬 수 있었다.
균열 안쪽에서 희미한 쇠 울림이 이어졌다.
글레니...
그 뒤의 이름은 아직 문 너머에 남아 있었다.